비는 맞아야 제 맛이지!
요즘 필라테스와 번지 피트니스란 운동에 푹 빠져 있지만 그 전에는 줄곧 신랑과의 저녁 산책을 즐겼다. 정확히 말하면 파워워킹을 하면서 가빠오는 숨소리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대화를 했던 그 시간이 둘에게 소중했다. 아이 둘이 이제 어느 정도 커서 저녁나절에 잠시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동네에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면서 나는 예약해둔 필라테스를 취소하고 오랜만에 그에게 산책을 권했다.
"자기야, 오랜만에 산책 가자!! 저녁도 배불리 먹었고 말이지. "
"비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괜찮겠지?"
"일기예보 계속 바뀌던데 뭐.. 오늘도 안 올 것 같은데..."
변덕스러운 장마철 비 소식은 시시때때로 변해서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호기롭게 우산도 없이 나섰다.
후텁지근한 공기에 끈적한 바람이 피부에 닿는 감촉이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럴수록 더 팔을 힘차게 휘두르며 파워 산책을 시작했다.
늘 가는 코스대로 천을 따라 탄천이 끝나는 지점까지 걸어갔다가 다리를 건너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왕복으로 갔다 오면 걸음 측정기에 만 오천보 가량 찍히는 거리다. 턴을 돌아 돌아오는데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몇 방울 내리다가 말겠지 했는데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졌다. 피할 곳은 없었다.
그나마 나는 야구 모자라도 쓰고 있어서 쫄딱 젖은 불쌍한 생쥐꼴은 면하고 있었지만 신랑은 그야말로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어떻게든 비를 맞는 시간과 총량을 줄여볼 셈으로 신랑은 뛰기 시작했다. 덩달아 나도 함께 뛰었다. 비를 맞고 뛰어본 것이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올드한 영화에서는 종종 등장하는 장면이었지만 로맨스 영화를 안 본 지 오래돼서 요즘도 클리셰로 쓰이는 장면인지는 모르겠다.
“자기야, 비 맞고 뛰어본 적 있어?”
“아니, 없는데!”
“진짜? 고등학생 때나 대학생 때도 일부러 비 맞아 본 적 없다고?”
“어, 굳이 비를 왜 맞아?”
참나, 태어날 때부터 머리에 ‘공대생’이라고 박혀서 태어난 것인가. 어쩜 이리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란 말인가.
고3, 입시 준비에 한창이던 나는 친구들과 비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유는 광녀(狂女)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험생의 울분과 화를 꾹꾹 눌러 담고 있었고, 그 용량이 차기 전에 하루빨리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비가 오는 날은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언덕 배기에 위치해 있던 학교 교문에서부터 학교 실내화를 그대로 신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우리는 가히 미친년처럼 발광하는 소리를 분출했다.
“으악!!!!!!!!!!!!!!!!!!!”
깊은 곳에서부터 들끓으며 나오는 묵직한 신음소리였다. 누가 더 기괴한 소리를 만드는지 내기를 하는 것마냥 우리는 굉음을 냈다. 지나가는 몇몇 행인들이 쯧쯧 혀를 차며 쳐다보기도 했겠지만 모두들 쏟아지는 비에 우산을 가림막 삼고 있었다. 그들은 비와 분절된 세계 속에 있었지만 우리는 비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그 세계에서는 우리가 주인공이었고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이 펼쳐졌다.
미세 먼지란 용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 우리는 입을 크게 벌려 쏟아지는 비를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핥았다. 그렇게 혀와 잇몸에 꽂히는 청량함에 벌겋게 달아올랐던 화들이 누그러졌고, 우리는 안에 채워져 있던 울분들을 게워냈다. 그때 맞았던 비는 수험생의 애환을 세상 밖으로 분출해주는 거센 '분화구'였다.
중학생 때도 비 오는 날은 어김없이 친구들과 교복 아래 체육복 바지를 입고 실내화만 신은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더 철이 없었던 우리는 집으로 오는 길에 구비구비 이어진 골목길에 줄 서 있던 단층 주택 초인종을 차례로 누르면서 달렸다. ‘띵동 띵동” “땡 그르르” "삐익" 초인종 소리는 가지각색으로 불협화음을 만들며 울려댔다. 어떤 집은 바로 “누구세요?”라는 응답이 들리기도 했고 어떤 집은 응답이 없었다. 우리는 응답하는 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쫄깃해졌고, 주인이 곧바로 뛰어나와 우리를 쫓아올 것이란 환영에 사로잡혀 부리나케 도망치며 낄낄거렸다. 중학교 때 맞았던 비는 '재미'이고 '사춘기의 반항'이었다.
대학교 때 맞았던 비는 실로 ‘청춘의 낭만’이고 ‘로맨스’였다. 안타깝게도 로맨스를 모르는, 현재 함께 동거하는 분과는 비를 맞아본 적이 없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부터는 비 오는 날은 세상에서 제일 싫은 날이 돼버리고 말았다. 나와 세상의 소통창구였던 비는 그저 번거로운 퇴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아기띠를 하거나 유모차를 무기 삼아 한창 육아의 최전선을 달리고 있던 내게 하루 중 산책은 가장 소중한 일과였다. 그런데 비는 그 잠시의 해방감을 앗아가 버렸다. 아이가 뽈뽈거리며 걸어 다니기 시작할 때는 집에서 놀 수 있는 온갖 장난감을 갖고 놀다 지겨워질 즈음, 현관 앞으로 나가 신발 신는 시늉을 하곤 했다. 그때는 하고 있던 모든 것을 중지하고 아이 손을 잡고 함께 나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는 없었다. 그런데 비가 오면 떼쓰는 아이를 좀처럼 달랠 길이 막혀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 엄마가 된 내게 비 오는 날은 그저 나와 아이의 숨 쉴 통로를 막아버리는 방해물일 될 뿐이었다.
이제 아이 둘이 어느 정도 커서 신랑과 둘만의 산책이 가능해진 때가 왔다. 실로 오랜만에 맞아 본 비는 내게 세상과 소통의 길을 열어줬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아이들은 컸지만 살림하는 주부에게 비 오는 날은 썩 달갑지 않은 날이다. 빨래하기에도 석연찮고, 아무리 집안을 청소해도 말끔함과 보송함이 보상으로 주어지지 않음에 짜증스러움이 솟구친다.
그런데 어쩌다 온몸으로 맞이한 비는 꽤 상쾌했다. 숨이 차도록 달음박질을 하면서 비를 피해보려 했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빗방울이 내 몸을 적시는 것을 받아들였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맞는 고비들을 피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이제는 온몸으로 기꺼이 맞을 근육이 조금은 만들어진 것일까.
지난하고 긴 육아의 터널을 아직도 지나고 있는 중이지만 다시금 비를 사랑할 수 있는 때가 온 모양이다.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지고 체력이 길러지면 삶의 어떤 순간에서도 씩씩하게 문제 안으로 들어가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워가는 중이다. 용기 있게 비의 세계에 성큼성큼 들어갔던 학창 시절의 나처럼 이 시기에 낼 수 있는 나만의 용기를 발산하고 싶다. 내 앞에 어떤 것이 다가올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