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지 않은 부부

by 세리

"엄마 있잖아.. 모든 부부들은 가만히 보면 다 닮았거든! 근데 엄마랑 아빠는 아무리 봐도 닮은 데가 없어."


그날도 어김없이 둘째 아이의 돌직구 토크가 시작됐다. 8살 둘째는 나름 통찰력 있게 사람들을 관찰하고 정확히 평가하는 말에 깜짝 놀라게 하는 묘한 능력을 갖고 있는 아이다. 물론 그녀의 직구를 맞고 상처도 여러 번 받았다.


"엄마는 화장 안 하면 솔직히 그렇게 예쁘진 않아"

"엄마는 친구들 왔을 때랑 우리끼리 있을 때랑 목소리가 바뀌잖아. 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친절한 척해?"

대략 이런 식이다.


이번에는 또 무슨 괴짜 논리를 늘어놓으려나 싶었다.

"그래? 엄마, 아빠는 안 닮았어?"

자연스레 아이들도 함께 만나고 교제하는 지인들 부부를 떠올리게 됐다.


"하진이네 엄마 아빠도 닮았어?"

"응. 이모 삼촌은 웃을 때 닮았어"


"그럼 진서 언니네 엄마 아빠도 닮았어?"

"응. 딱 보면 이미지가 비슷하잖아"


아이의 설명을 듣고 그들을 떠올려보니 아이의 표현대로 묘하게 닮은 구석이 겹쳐졌다.


"그럼 엄마 아빠는 어떤데?"

"음.. 엄마는 샤랄라 하고 아빠는 따라라(?)해.. 그리고 엄마는 늘 영혼이 있고 아빠는 늘 영혼이 없어. 엄마는 안된다고 할 때가 많은데 아빠는 다 된다고 해."

아이가 묘사하는 것이 우리 부부의 어떤 모습을 말하는 것인지 단숨에 떠올라서 다시 한번 빵 터지고야 말았다.


우리 부부 캐리커쳐


엄마는 샤랄라 하고 아빠는 따라라 해.

우리 둘의 외모 비교를 '샤랄라'와 '따라라'로 표현한 것은 둘의 피부색 차이가 현저한 이유가 클 것이다. 나는 완전 깡시골 출신이고 신랑은 본디 서울 출신인데 서로 출신지를 밝히면 주변에서 영 이미지가 바뀐 것 같다는 말을 왕왕 듣곤 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휴양지에서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찍은 사진들을 보니 그 피부색 차이가 극명해서 이렇게나 대비가 심한 커플이었구나를 실감했다. 그리고 나는 꾸미고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데 신랑은 외모 가꾸는 데는 영 관심이 없다. 내게 첫 고백하는 날도 회색 추리닝을 입고 왔다면 더 추가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다. 결혼 후에 나름 꾸며주고자 노력했지만 이젠 자존감 높은 그의 취향을 존중해주고 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둘의 다름은 피부색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차이들을 아이는 나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엄마는 영혼이 있고, 아빠는 영혼이 없어.

이 표현도 참 기가 막히다. 매사에 진지하고 걱정이 많은 나와 달리 신랑은 늘 긍정적이고 순간에만 집중하는 사람이다. 나에게 제일 어려운 일이 가만히 앉아서 그냥 멍 때리는 일인데 신랑은 그것이 특기이자 취미 일정도로 즐겨한다.


문학과 공학의 학문의 차이만큼 각각 그것을 전공한 우리 둘의 성격 차이도 상당히 극명했다.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신혼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자 내가 진짜로 결혼을 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신혼여행까지는 그저 들떠서 구름 위를 걷는 것 마냥 붕 떠 있다가 현실에 땅을 딛으면서 그 단단한 충격에 휩싸인 듯했다. 설명할 수 없는 우울감이 밀려들었다. 명확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내 감정을 그에게 납득시키기 어려워서 그저 울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갑작스레 우는 아내에 당황하며 그는 허둥지둥 이유를 물어보고 달래 보려 애썼지만 도저히 말로는 풀어낼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런 내가 얼마나 이해가 안 됐을까 싶다. 그런 일은 12년을 살면서 종종 발생했다. 나는 늘 무거웠고, 그는 늘 참을 수 없이 가볍게만 느껴졌다. 그 무게감의 차이를 아이는 영혼이 있고 없음으로 표현한 것 같다.


엄마는 안된다고 할 때가 많은데 아빠는 다 된다고 해.

이것은 아이 둘을 양육을 하는 데 있어 부부의 역할 차이를 드러내는 표현이라 생각하고 싶다. 본디 화를 낼 줄 모르고 딸들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딸바보 신랑이 아이들을 훈육하는 역할을 맡는 것은 무리였다. 자연스레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허락할 수 있는 범위를 설정해서 가능 여부를 안내하는 것은 내가 맡을 수 밖에는 없었다. 주로 나는 "안돼"를 외치고 신랑은 주로 "그럼, 괜찮아"를 맡는 식이었다. 역할의 차이일 뿐, 사랑의 크기가 다른 것이 아니라고 아이에게 항변해봤자 알아줄 리 만무한 법. 그저 아이가 보기에는 엄마 아빠는 완전 다른 꼴이었던 것이다.



아이가 표현한 방법 이외에도 우리 부부는 닮지 않은 모습이 참 많다. 서로 좋아하는 취미도 완전히 다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다. 게임을 좋아하고 음악 듣기와 노래 부르기를 즐겨하는 신랑과는 다르게 아무리 노력해도 게임의 즐거움을 찾을 수 없고, 음악을 듣긴 하지만 신랑이 수없이 반복해서 듣는 음악은 종종 소음으로 들리곤 한다. 노래방 기계까지 들여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신랑의 장단에 맞춰주고 싶지만 박치이자 음치인 나에게 노래 부르기는 그저 고행일뿐이다.


둘이 같은 계정으로 유튜브 프리미엄을 시청하고 있기에 서로가 본 영상 히스토리를 알 수 있다. 그는 주로 먹방과 스포츠, 여행, 다큐멘터리 채널을 시청하고, 나는 주로 영어공부와 책, 홈트, 육아 관련된 채널을 시청한다. 시청하는 채널만 봐도 순간을 즐기는 신랑과 목표지향적으로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 강박을 갖고 있는 나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다. 이렇게 보니 진짜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부부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문제가 될까?




외모, 성격, 취향, 심지어 입맛까지 다른 우리 부부는 12년을 살도록 싸운 횟수는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몇 안된다. 어쩌면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다른 쪽은 일방적으로 받아내서 그럴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분명 둘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다.


처음에 나와 완전히 다른 점에 끌렸고, 그 매력에 빠져서 결혼까지 결심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나와 너무 다른 모습에 당황했고, 앞으로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 적도 있다. 그것은 나만 고민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유 없이 홀로 감상에 빠져 울어대는 아내가 이해가 안 되기는 신랑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보다는 함께 바라봐야 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노력했다. 각자 생긴 것도, 좋아하는 것도 달랐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늘 함께했고, 그 방향을 바르게 잡으려고 애쓰면 살고 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서로 끊임없이 대화한다. 그러다 보니 사실 우리만 아는 공통점도 꽤 많이 발견했다. 우리끼리만 아는 그 은밀하고 신비한 것으로 해두자.


나의 쓸데없는 무거움으로 힘겨워할 때 그는 재치 있는 가벼움으로 중화시켜주고, 내가 아이들에게 높은 기대치를 요구할 때 그는 슬며시 그 기대치를 낮춰주곤 한다. 비록 그의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을지라도 늘 "잘하고 있어, 최고야, 정말 좋은 엄마야, 여전히 너무 예뻐."라는 말로 강박에 가깝게 스스로를 괴롭히는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서로에게 지지대 역할을 해주면서 삶의 균형을 잘 맞춰가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곁길로 빠져서 방황하면 다른 한 사람은 묵묵히 올바른 길을 걸어가며 계속 손잡아 주면서 내비게이터 역할도 해주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닮지 않아도 별문제 없이 함께 씩씩하게 잘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의학적 도움(?) 없이는 피부색을 바꿀 수 없듯이 우리도 계속 닮지 않은 채로 평행선을 걸어가겠지만, 그 다름이 서로가 함께 더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신랑표 인생 호박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