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표 인생 호박죽

그놈의 코로나 결과를 기다리며..

by 세리

시부모님을 모시고 제주 여행을 다녀온 후 호되게 앓았다.

갑자기 열이 39도까지 치솟으며 온몸이 구타 맞은 듯 눕지도 앉지도 못할 고통에 쭈그려 꿇어앉아있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 목이 잔뜩 부어서 침 한 톨도 삼키기 고통스러운걸 보니 한해 걸러 앓았던 편도염 같았지만 시국이 이런지라 고열로 바로 병원을 가지도 못하는 게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더구나 혹여 코로나 확진을 받으면 제주도까지 시부모님을 모시고 가서 들렀던 동선들이 쫙 펼쳐지면서 납량특집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공포가 밀려왔다.


신랑도 회사 방침에 따라 와이프가 열이 나면 일단 출근은 보류하고 함께 코로나 검사를 하고 결과를 받고 갈 수 있었다. 우린 바로 그다음 날 보건소에 가서 콧 속으로 훅 들어오는 난데없는 고통을 경험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병원에 가지 못해 임시방편으로 신랑이 약국에서 약을 지어왔지만 그 효과는 미비했다. 계속 고열과 근육통으로 끙끙대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 신랑은 먹고 싶은 게 뭐냐고 자꾸 물어왔다.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판에 먹고 싶은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이 온 마디가 부서지는듯한 고통에서만 부디 해방되길 바라며 누워있다가 문득 먹고 싶은 게 생각났다.


호박죽


어릴 때부터 옹골찬 골격의 소유자 치고는 잔병치례를 자주 했다. 호흡기가 약해서 간절기 때마다 감기몸살을 꼭 호되게 앓고 지나가곤 했다. 며칠씩 끙끙 앓을 때 엄마가 가끔 호박죽이나 야채죽을 끓여주셨다. 아주 어릴 때는 호박죽이 맛있는지 잘 모르고 그냥 설탕을 잔뜩 넣어서 후루룩 마셨던 것 같다. 가끔 엄마가 신경 써 만들어 넣어주셨던 새알을 골라먹는 재미로 먹기도 했지.


둘째를 출산하고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본색을 드러낸 신생아는 밤낮으로 자지 않고 칭얼댔다. 1시간 이상을 뒤로 누워 자지 않아서 낮에는 종일 내가 안고 있고 밤에는 신랑이 교대를 해주곤 했다. 도우미 이모님이 계셨지만 도통 아이 돌보는 데는 재능은 없는 분이셨다. 그럼에도 이모님을 매몰차게 교체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호박죽 때문이었다. 오신 첫날, 아주 자신만만하게 본인은 음식은 정말 잘하니깐 먹고 싶은 것은 뭐든 말하라 하셨다. 그때도 난 아이 돌보는 것에 모든 에너지가 빼앗겼던지라 식욕 따위에 마음을 줄 여유가 없었다. 음식에 관해선 아무 생각이 안 났는데 불현듯 엄마가 해줬던 호박죽이 생각났다. 바로 호박죽을 주문했다. 이모님은 재빠르게 장을 봐오셔서 유명 셰프 저리 가라 할만한 빠른 손놀림으로 뜨끈하고 찐득한 호박죽을 대령해주셨다.


내가 호박죽을 잠시 먹는 사이에도 둘째는 이모님 손에서 계속 칭얼거렸지만 그 진하고 걸쭉한 호박죽 맛에 난 고된 육아의 피로가 잠시 씻겨졌다. 그것을 볼모로 난 산후도우미가 아닌 식사도우미 이모님과 몇 주를 보내야 했다. 덕분에 먹고 싶었던 음식과 호박죽만큼은 잔뜩 먹며 내 입만 호강하던 시절이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호박죽이 떠올랐다.

신랑은 당장 본죽에 가서 사 온다고 했지만 난 사 온 거 말고 설탕이 첨가되지 않은, 집에서 끓인 호박죽을 먹고 싶다고 했다. 짐짓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이는 "내게는 만능 백 선생님이 계시지..." 하면서 유튜브를 틀어 정독(?)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요리 채널 몇 개를 심도 있게 시청하더니 생각보다 간단하다면서 자신이 해보겠다고 호언장담을 해줬다.


신랑은 마트에 가서 장을 봐서 열심히 밑 준비를 했다. 뉴질랜드산 단호박과 국내산 가격차이가 무려 4배 차이가 난다면서 제법 주부스러운 말도 늘어놓으면서 말이다. 어눌한 솜씨로 호박 껍질을 벗기는 그이 옆에는 이미 든든한 보조 요리사 둘이 함께하고 있었다. 신랑은 호박죽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새알이 아니겠냐면서 찹쌀가루로 반죽까지 해서 새알을 빚겠다고 했다. 그것도 엄청 많이. 아이들은 작품을 빚듯 고운 두 손으로 가지각색 새알을 만들어줬다.


코로나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만큼 초조하고 지리한 시간이 흘러 드디어 호박죽이 완성됐다는 사이렌이 울렸다. 정말 금쪽같이 귀하게 받아 든 호박죽이었다. 무엇보다 시중에서 호박죽을 사면 많아야 고작 서너 개 들어있을 새알이 아주 촘촘히 박혀있는 밀도 높은 호박죽이 말이다. 이것은 새알죽인가 호박죽인가. 이렇게 신랑표 인생 호박죽을 맛볼 날이 올 줄이야.


투박한 요린이인 그의 손에서 이다지도 깊은 풍미의 탐스러운 호박죽이 탄생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잔뜩 부어오른 목구멍에 꿀떡꿀떡 황홀하게 호박죽이 잘도 넘어갔다.




이 맛에 아주 가끔은 죽을 만큼 아프기도 해봐야 하나 보다. 내가 아파하는 동안 그 옆에서 함께 성장통을 겪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걸 이다지도 깊이 깨달을 수 있으니 말이다.


참, 코로나 결과는 다행히도 음성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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