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되고 신랑에게 자랑하듯 말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을 공유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쓴 글을 보여주는 것은 또 달랐다. 일기장에 적을 정도의 내밀한 이야기는 아닐지언정 내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토로하는 창구로 쓰는 브런치를 공개하는 게 왜인지 쑥스러웠다.
신랑은 한 번씩 내 글을 읽고는 무심한 듯 소감을 툭 던져놨다. " 자기 글 잘 쓰더라. 한 번에 쭉 읽혔어." 대략 이런 식으로 두리뭉실한 칭찬들이었다. 그도 굳이 내용까지 언급하는 것은 내가 민망하리라는 걸 알았으리라.
글을 쓰면서 나보다도 신랑의 스토리를 올리기에 브런치는 더 최적화된 플랫폼이라 판단됐다. 가지각색 다양한 주제의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곳이지만, 직장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콘셉트가 원래 브런치의 주목적이 아니었을까 했기 때문이다.
신랑은 자신이 대한민국의 아주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자신을 정의하지만, 내가 볼 땐 절대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다. 본인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그 지점부터가 웃음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소위 스펙이라고 말하는 그의 히스토리를 굳이 자랑할 것도 없지만, 필요하다면 자신만의 스토리로 잘 엮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명문대라 불리는 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해서 S사에서 전문 연구요원으로 일했다. 군대 대신 회사 생활을 시작했고, 지금은 그곳에서 다른 대기업으로 이직해서 10년 차 책임연구원이다.
공대를 졸업한 직장인이 대기업 연구소에서 겪는 애환을 담은 스토리라면 꽤 흥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에게 브런치를 도전해보라고 부추긴 가장 직접적인 사건은 최근에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읽고 난 후였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책은 결코 수려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가독성 좋게 술술 읽혔다. 대기업에 다니는 신랑의 반응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과연 김 부장에 공감이 될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래서 읽어보라고 건네었더니 초반에 몇 페이지만 읽어보더니,
"나는 전혀 공감 안 되는데!"
왜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일단, 책 속에 김 부장은 본사 소속이라 우리 연구소 분위기랑은 전혀 달라. 그리고 명품은 고사하고 옷, 구두, 신발에 관심이 있는 회사 동료들을 본 적이 없어."라고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는 이 책에서 김 부장은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서 다른 팀 부장이 입은 옷과 구두, 그리고 명품 가방을 보고 자신도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구색을 갖추려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무튼 전혀 공감이 안된다고 하니 더 읽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다 퍼뜩 "그럼 자기 이야기를 써보는 건 어때?"라고 했다. 평소에도 신랑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나 주변 동료들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는데 퍽 재미있다. 그래서 종종 이런 이야기들을 글로 엮으면 대박일 것 같은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신랑은 자신이 읊을 테니 나보고 대신 써보라고 했지만, 이왕지사 본인이 작성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평소에는 별 반응이 없던 신랑이 반색을 표하며 관심을 나타냈다. 김 부장 이야기도 베스트셀러가 됐다는데 자신의 이야기라고 안될 것 없지 않다는 의욕이 샘솟는 듯했다.
"일단 브런치 작가부터 돼야 하는 거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내가 진짜 써봐야겠다!"
"일단, 자기가 쓰고 싶은 글 목차부터 정리해봐. 책 한 권 내려면 최소 30꼭지는 돼야 하거든. 30개 소제목으로 만들 수 있어?"
"30개? 나 대학원 졸업하고 전문 연구요원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야기들 엮어보면 그보다 더 나올 것 같은데!!"
"오, 좋네! 일단 목차 적고, 작가 응모하려면 최소 3편은 먼저 써야 하니깐 글을 써. 내가 어색한 것은 봐줄게."
평소 멍 때리기를 특기로 삼는 신랑이 벌떡 일어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최단 시간에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집중력은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하더니 역시 글 쓰는 속도도 빨랐다. 그날 바로 카페에 가서 2시간 만에 목차를 정리하고 글 3편을 다 썼다. 크게 손보지 않고 바로 브런치 작가 신청에 응모했다.
결과는 하루 만에 나왔다.
이럴 수가, 나도 3일은 기다린 것 같은데 말이다.
"나 합격했다는데!"
"진짜? 말도 안 돼..."
브런치 작가를 응모하면서 신랑에게 몇 차례 겁을 줬었다. 보통 2번은 낙방한다고 하니깐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은근히 한 번에 붙은 나의 전적을 자랑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도 덜컥 한 번에 붙었다니 민망했다.
역시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은 글 실력보다 확실한 콘텐츠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호기롭게 써낸 30개의 목차가 브런치 심사 위원들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 뒤로도 신랑은 몇 개의 글을 신나게 쓰더니 "아, 완전 꼬인다. 내용이 자꾸 산으로 가는데!" 하면서 잠정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에 새로운 열풍에 불게 했다는(?) 김 부장을 잇는 또 하나의 걸작이 우리 신랑 손에서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과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