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불쑥 화가 솟구쳤다. 수도권 코로나 4단계로 격상된다는 소식을 들은 후여서 그랬는지, 이미 차오를 때로 차오른 분노의 끓는점 직전에 1도가 더 얹어져 끓어 넘친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자는 가만히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지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래도 그동안 쌓아 올린 독서와 아침마다 쓰는 모닝 페이지에서 얻은 방법들을 총동원해서 짜낸 자구책이었다.
'자, 네가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봐'라고 스스로에게 요구하며 분노를 삭였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서 내린 한 문장을 그날 밤 피곤에 겨워 침대에 기절하기 직전인 남자에게 강력하게 성토했다.
"나 매일 뭐 해먹을지 고민하는 게 너무 화가 나."
그래, 아주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여자의 속마음을 뒤집어까서 누구도 납득할 수 있는 쉬운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바로 이거였다. 그녀는 매일 매 끼니의 고민에 인간으로서 존재론적 회의감마저 들었다. 엄마와 주부의 책임과 의미로 지어진 이 밥하는 역할에 싫증이 나버린 것이다. 잠시 여자의 변명을 하자면, 여자는 철마다 신선한 재료들로 매끼 다채로운 음식을 할 수 있는 살림의 고수는 결코 아니었지만, 배달과 외식을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하며 초라하지만 심플한 집밥으로 최소한의 방어막은 가족들에게 쳐주려는 건강 지킴이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녀의 지인들 중 다수는 진심 어린 충고를 하기도 했다.
"그냥 뭐든 먹이면 되는 거 아냐? 배달도 자주 해먹이고, 반찬도 그냥 사서 먹여." 현명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자가 지친 이유는 요리를 직접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아니라, 진짜 매 끼니를 어떻게 채워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자체에 관한 것이었다. 배달을 시켜먹든 반찬을 사 먹든 결국 여자가 결정해서 준비해야 한다는 그것이 싫었다.
착한 남자는 여자의 묵직한 신음소리 같은 한 문장에 기가 팍 죽어서는 "토요일에는 내가 밥 다 할게."라고 그답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펜더믹에 끼니 걱정으로 인한 여자의 우울과 짜증은 내내 현재 진행형이었기에 남자는 그동안에도 주말에는 자처에서 뭐든 요리를 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여자는 이번에는 좀 더 강력한 요구를 말했다.
"자기나 애들 먹고 싶은 거 말고 내가 먹고 싶은 걸 해줘."
"아, 그래. 뭐가 먹고 싶어?"
여자는 곰곰이 생각했다.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을 때 너무 오래 고민하면 오히려 행운의 여신은 다른 곳으로 떠나는 법.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을 바로 외쳤다.
"묵은지 고등어조림!!"
남자는 생선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여자는 결혼 후 한참 후에 알게 됐다. 결혼을 하고 처음 얻은 빌라 전셋집은 계단으로 이어진 현관문을 바로 열면 주방이 맞닿았다. 2인용 식탁 중에도 제일 작은 것을 놓아도 주방에서 화장실로 가는 통로가 좁게 느껴지던 곳이었다. 그 좁다란 주방에서도 여자는 소꿉놀이마냥 식사 준비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대학원 공부 중에 뭔가에 씐 듯 남자와 결혼을 하는 통에 요리의 달인인 친정엄마에게 신부 수업을 받을 겨를이 없었다. 여자는 그저 인터넷에 적혀 있는 레시피 그대로 심혈을 기울여 측량해서 요리를 만들었다. 짐짓 놀이인지 실험인지 헷갈릴만한 식사 준비는 여자에게는 다시 소녀 시절 진흙과 나뭇잎, 잔가지들을 짓이겨 만들었던 소꿉놀이의 즐거움을 다시금 갖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었다.
온갖 조림류를 좋아했던 여자는 호기롭게 생선 조림에 계속 도전을 했다. 참치 조림, 갈치조림, 그리고 고등어조림. 당시 살았던 서울 문정동은 가락동이 가까워서 그런지 중형 마트만 가도 신선한 생선을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여자는 그날그날 장을 보러 가서 신선해 보이고 저렴한 생선들을 사서 하루는 간장에 감자를 넣고 조림을 하고, 하루는 무만 넣고 조림을 하고, 또 하루는 묵은지를 잔뜩 넣은 생선 조림을 해봤다. 남자는 처음에는 맛있다고 잘 먹어줬다. 그런데 몇 달을 관찰해본 결과 남자는 메인 반찬으로 육류가 나왔을 때와 생선이 나왔을 때의 밥 공기량이 확연히 달랐다. 분명 "맛있다"라고 했지만 생선 조림을 해줬을 때는 한 공기 이상은 먹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김없이 "정말 맛있다"라고 했다. 여자는 곧 남자가 늘 똑같이 "정말 맛있다"라고 하지만 그 톤과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실토하고 말았다.
"솔직히 생선 조림은 별로 안 좋아해. 어릴 때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통은 어릴 때 많이 먹은 음식들을 추억하며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 뒤로 자연스레 저녁상에 생선 조림이 올라가는 횟수는 조금씩 줄어들면서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식탁에 다시 생선이 올라온 것은 조림이 아닌 담백한 생선구이였는데 아이들이 이유식을 떼고 본격적으로 밥다운 식사를 함께 하면서부터였다. 아이들에게 한 끼 반찬으로 가장 손쉬운 것은 생선구이였다. 짭조름한 고등어나 참치를 구워주면 한 공기 뚝딱하는 매직이 일었다. 물론 남자는 생선구이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가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대뜸 "묵은지 고등어조림"이 떠오른 것이다.
10년 가까이 남자 때문에 생선 조림을 일 년에 한두 번도 먹지 못했던 것 같아 갑자기 억울했다. 밥을 하는 사람은 본인이 먹고 싶은 것보다 상대방이 먹고 싶은 음식을 하게 된다. 이왕 요리하는 수고를 하기로 결심했으니 그 요리를 먹을 대상이 좋아하는 메뉴를 선정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랴. 그런데 보통 요리는 여자들의 담당이다 보니 결혼한 주부들은 자신의 취향과 선호는 뒷전으로 치우고 남자나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 먹는 메뉴 위주로 구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도 안 하고 요리를 했던 세월이 여자는 야속했다. 남자가 요리를 하겠다고 주방에 서는 날만큼은 기필코 여자가 먹고 싶은 메뉴를 해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자 힘이 솟았다.
"응, 묵은지 고등어조림이 먹고 싶어. 할 수 있어?"
"뭐, 하면 하겠지. 근데 꼭 고등어조림?"
"응, 꼭!!'
그렇게 남자는 토요일 아침 드디어 고등어조림을 요리했다
그럴듯했다. 맛도 일품이었다. 이번에도 이 시대 요리의 혁명가 백 선생님께 백번이고 천번이고 감사인사를 올려야 했다.
이제부터는 남자도 여자의 식성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 하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