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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Oct 15. 2021

바다 내음과 소리까지 담고 싶다.

여행지에서 아침 글쓰기



에너지 넘치는 초등학생 두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어찌 보면 뻔한 여정일 수 있다. 혼자만의 여행이라면 목적지를 두지 않고 어디든 발 닿는 곳으로 훌쩍 가서 내가 머물고 싶을 만큼 여유를 누리며 부러 공백을 만들고 오겠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이들이 오감으로 느끼며 즐거워할 수 있는 오락거리 꼭 하나씩은 일정에 끼워넣기식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스누피 가든, 무민 랜드, 신화 월드, 아쿠아플라넷 등. 헉 소리 나게 비싼 입장료에 혀를 내두르지만 요맘때 아이들이 제주에서만 가볼 수 있는 곳이라니 부모 입장에서 욕심을 내서 보여주고 싶다. 부모의 취향은 저 멀리 던져두고서.


그저 바다 가까운 곳을 거점으로 삼고 싶은 마음에  이번에는 애정하는 협재 해수욕장 근처로 숙소를 삼았다. 서쪽에 위치한 우리 숙소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관광지는 주로 동쪽이라 한참을 차로 이동하는 일이 잦았다.  


오줌주머니가 작은 둘째 아이는 출발지에서 볼일을 보게 했음에도 가는 중간에 꼭 화장실 타령을 한다. 잠시도 참을 수 없다고 보채는 꼴에 결국 제주에 가장 흔하디 흔한 카페에 들려 급한일을 해결하는 경우 종종 발생한다. 어디 공짜로 이용할 수 있겠는가. 그럴 때마다 사 먹는 통에 하루에 커피몇 잔을 마시기도 한다.  그런 예기치 않은 순간에 들른 카페에서 의외의 멋과 맛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여유는 아직은 내게 사치인가 하는 현타가 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제주 협재



그럼에도 여행지에서 나만의 사색을 포기할 수 없다면, 결국 답은 새벽 시간이다. 고된 일정에 굳이 지켜야 하는 루틴도 없는 여행 중에도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이유다.


오늘 아침에도 혼자서 조용히 숙소에서 나왔다.

여행 첫날부터 양껏 취하고 있지만 새 아침이 밝아오면 또다시 고프다. 바다 내음과 소리를 맘껏 들이키고  싶었다. 이른 시간에 나오면서 일부러 이어폰도 귀에 꽂지 않았다. 한걸음에 바다까지 내달리며 낯선 곳의 향을 킁킁거리고 이내 잡힐듯한 파도 소리에 귀를 한껏 열어본다.  곧 죽어도 모닝커피는 포기할 수 없기에 이른 아침에 열려있는 파리바게트가 반갑다. 따뜻한 아메리노 한잔이면 족한 이 아침.


너울지어 끊임없이 떠밀려왔다가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와 느리지만 열심을 내어 제 길을 가는 구름보는 재미는 나이 마흔이 돼서야 깨달을 수 있는 것이었나 보다. 이 여행을 떠나야 하는 거냐고 누군가 묻거늘 단호히 답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이다. 이 내음과 소리까지 글 안에 담기게 할 수 있는 글솜씨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아침이다.


협재 해수욕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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