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만난 베트남 음식

여행지에서 먹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란

by 세리


"먹기 위해 사는 거지!" 하면서 많은 이들이 먹는 것에 큰 기쁨을 누린다고들 하던데 나는 그쪽 부류는 확실히 아니다. 그저 배고픔이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음식이든 족하는 편이다. 미래에 각종 영양소를 채우고 배고픔을 사라지게 해주는 캡슐이 발명된다면 우리네 삶이 훨씬 편리 해질 텐데 하는 요망한 상상도 해보곤 한다.


반면에 신랑은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쪽이다. 줄곧 보는 유튜브에도 먹방과 맛집 소개 채널이 상위 목록을 차지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하면 그 순간부터 계속 여행지 맛집을 검색해서 내게 카톡으로 공유를 한다. 이번 제주 여행을 결정하고 난 후에도 하루에 몇 개씩 줄기차게 맛집 목록이 카톡 채팅방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종류도 가지각색이었고 위치도 제각각 퍼져 있었다. 그에게 여행에서 제1순위는 맛집에 가서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꼭 맛보는 것이다.


나에게 여행 먹는 것보단 보고 느끼는 것이 더 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미식 세계를 존중해주려고 노력한다. 내가 가고 싶은 곳과 그가 가고 싶은 맛집을 동선에 맞게 최대한 배치하는 노력을 한다. 이번에 9박 10일간의 제주 여행 일정 중에도 그러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가 가고 싶어 하는 맛집을 열심히 쫓아다녔다. 물론 소문처럼 풍성한 먹거리를 선사해주는 곳도 있었고, 말만 무성한 초라한 잔칫집 음식도 있었다. 그럼에도 맛집을 향한 신랑의 기대감과 그런 그를 관찰하는 나의 재미는 여행 중에 함께 누리는 꽤 큰 즐거움이 돼주곤 했다.



그가 찾은 곳 중에서 단연 기억에 남는 곳은 협재 해수욕장 근처에 있었던, 주인장이 혼자 운영하는 베트남 음식 식당이었다. 평소 나의 소신에 따라 외식을 그리 즐기지 않지만, 외식이 필요한 때에 우리 가족의 입맛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는 식당은 베트남 음식점이다. 아이들은 쌀국수나 볶음밥, 신랑은 팟타이, 나는 월남쌈을 좋아한다.


신랑이 제주에서 '베트남 음식점'이라고 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 꽤 유명한 쌀국수 맛집이 있다. 쌀국수라기보단 도가니탕이라 할법한 깊은 국물에 심히 부담스럽기까지 한 갈빗대가 통째로 들어가 있어서 국수보다 먼저 고기 뜯는 기쁨을 주는 곳이다. 워낙 유명해서 긴 웨이팅이 부담스러운 곳이지만, 그곳 쌀국수를 한번 맛보면 다른 곳 쌀국수는 너무 얕은 맛으로 느껴져 버린다. 그래도 아이들은 '쌀국수'라고 하니 좋다면서 가자고 했다.


큰 기대 없이 도착한 곳에 홀로 우두커니 하얀 집에 핑크 색 지붕과 문으로 포인트를 준 어여쁜 식당이 나타났다. 평일 낮 시간이었는데 사람이 꽤 많았다. 모두 신랑처럼 미식의 세계를 탐하는 이들인지 맛집에서 웨이팅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두 아이들이 징징 거리기도 했고, 여행지에서 이렇게 웨이팅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게 아깝다는 마음이 솟아서 짜증이 불쑥 일었다. 이런 웨이팅쯤은 기본이지 하는 마음으로 꿋꿋이 기다리는 신랑의 기대감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아서 기꺼이 오랜 시간을 기다린 후 드디어 들어갈 수 있었다.


왜 그리도 시간이 오래 걸리나 했더니 주인 혼자서 모든 것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아르바이트생 하나 없이 홀로 음식, 서빙, 뒷정리, 계산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진작에 홀에 빈자리가 있었으나 음식 준비로 뒷정리를 할 손이 부족해 손님을 더 받지 못하고 있었 것이다.


"아니 어떻게 혼자서 일을 하시지? 서빙하는 직원은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신랑한테 짜증스러움을 넌지시 비치며 기어이 한 소리를 했다.


"주문은 카운터로 와서 해주세요."


직접 손님 주문을 받으러 올 수 없는 주인의 요구였다. 우리는 메뉴를 고민하다 '쌀국수, 껌승, 반쎄오'를 주문했다. 껌승은 소고기 덮밥이었고, 반쎄오는 예전 베트남 다낭을 여행했을 때 맛본 기억에 즉흥적으로 구미가 당겨서 주문했다. 주문 후에도 한참을 기다려야 함을 각오했다. 지루해하는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양보하고 자리에서 요리하는 주인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분주하게 불 앞에서 혼자 움직이는 모습에 절로 눈이 떠지면서 한참을 그의 요리하는 모습에 빠져 보게 됐다. 뜨거운 불 위에는 동시에 4개의 음식이 조리되고 있었다. 쌀국수 국물을 끓이는 큰 드럼통, 국수를 삶는 냄비, 볶음류를 볶는 넓은 프라이팬, 반세오를 올리는 계란 지짐을 하는 팬까지. 그 모든 것을 마치 지휘를 하듯 날렵하게 동시에 조리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 수하가 있다면 오히려 방해가 될 법해 보였다. 그는 정확히 계산을 해서 빠르게 볶은 후 먼저 덜어냈고, 면을 삶아내고 오버 쿡되지 않도록 지체하지 않고 건져냈다. 사용하는 식재료도 얼핏 보니 모두 싱싱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의 요리하는 모습을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빠져서 보고 있자니 절로 허기가 밀려왔다. 그저 아무거나 빠르게 채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음식은 보기에도 양이 풍성했고, 불에 볶아낸 고기 향이 먼저 감칠맛을 돋우었다. 주인장의 요리 솜씨를 엿본 나는 보나 마나 음식 맛도 최고 이리라 짐작했다. 껌승이라 일컬은 소고기 덮밥을 맛본 큰 아이에게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와, 엄마 진짜 맛있어요. 이런 덮밥은 처음인데요!!" 하는 찬사를 했다.





반쎄오


나와 신랑은 반쎄오를 입안에 욱여넣고는 서로 마주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씹어댔다. "너무 맛있어"를 서로 눈으로 말하면서 격한 감동의 몸짓이었다. 얇게 부친 계란물에 잘 덮여 있던 알맹이는 풍성한 숙주와 고기, 그리고 새우까지 완벽한 조화로움의 극치였다. 라이스페이퍼를 날것 그대로 상추와 깻잎을 더해 반쎄오를 싸 먹으면 그 맛은, 실로 놀라웠다. 껌승과 반쎄오의 강력한 맛에 비하면 쌀국수는 평범하다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고수를 곁들여 이국적인 맛에 잔뜩 취할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먹는 기쁨'을 누리는 것, 이것은 단순히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순수하게 맛집으로 소문이 나기까지는 주인장이 홀로 애써온 시간들이 켜켜이 쌓였을 것이고, 그것을 인정해준 많은 방문객들의 감동이 뒤섞였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보고자 가족들을 대동해서 함께 맛보자 하는 신랑의 강렬한 의지도 거기에 한몫했다. 식당 이름처럼 여행지에서 또 하나의 '빛남'을 발견한 듯했다. 앞으로도 여행지에서 불타오를 그의 미식 탐구생활을 더 존중해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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