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거점 근무지가 생겼다. 코로나로 인해 바뀐 회사 환경 중 하나인 듯하다. 일주일에 두서 차례 했던 재택근무도 좋았지만, 거점 근무는 더 좋다. 집에서 다섯 정거장쯤 떨어진 곳에 사무실이 있다. 신청하면 그날은 회사로 출근하는 대신 그곳에서 일을 하는 식이다. 내가 사는 이 도시에 지식산업센터란 이름으로 이토록 많은 회사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입주한 회사 덕에 주변 상가가 활기를 띠고 회사원들로 북적였다.
남편은 거점 근무를 하는 날에는 점심시간에 내게 그쪽으로 와서 함께 식사하자고 한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오전에 책 보고 운동하고 혼자 느긋하게 먹는 점심을 즐기는데 나의 잔잔한 일상에 남편이 자그마한 돌멩이를 던졌다. 두 손 넓게 벌려 얼마든지 받고 싶은 사랑스러운 돌멩이였다.
신도시에 살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할 일이 자주 없다. 처음 신도시에 입주했을 때는 버스 노선도 촘촘하지 않았고 버스 배차 간격도 워낙 커서 차마 대중교통이라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지금은 도시의 얼개를 갖추고 아파트마다 사람들이 입주한 만큼 버스 노선은 거미줄처럼 짜였고, 일일이 다 알 수도 없는 다양한 버스 종류가 생겼다. 그럼에도 이 도시 안에서는 버스를 타고 이동할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내 두 다리를 움직이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자동차를 타고 운전하는 것이 편하고, 두 아이와 함께 이동할 때는 자동차의 편리함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혼자서 서울에 볼일이 있거나 친구를 만나러 갈 때 강남에 가는 광역버스를 타는 것이 전부가 되고 말았다.
남편은 거점 근무지까지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다. 차가 한 대뿐이라 내가 차를 쓸 일이 더 많기에 회사는 통근버스로, 거점 근무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는 나에게 점심시간에 올 때는 차를 가지고 오지 말고 버스를 타는 것이 좋을 것이라 했다. 주차 정보를 확실히 모르겠다고 했다. 워낙 많은 회사들이 입주하고 있는 건물이라 주차 인심이 좋을 것 같지 않고, 주차 공간도 넉넉하지 않으면 괜히 더 고생할 것이라고. 그러면서 친절하게도 지도 앱으로 우리 집에서 거점 근무지까지 오는 버스와 타고 내리는 곳까지 캡처해서 보내줬다. 버스를 거의 타지 않을뿐더러 워낙 길치인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늦지 않게 11시 50분까지 와! 정류장 앞에서 기다릴게!”
남편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다시금 당부하고 떠났다. 나는 오전에 할 일을 서둘러 마치고 외출 준비를 했다. 고작 4시간 전에 출근한 남편을 다시 만나러 가는 길인데 갑자기 설렘이 밀려왔다. 마침 미세 먼지 없이 맑게 갠 봄바람이 창문 밖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정성스레 머리를 말리고, 선크림을 바르고 bb크림을 발라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어떤 립스틱을 발라야 조금 더 사랑스러운 여자로 보일까 하는 낯간지러운 고민을 하며 립스틱 색깔도 골랐다.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이 새삼 감사했다.
아직도 남편이 참 좋다. 뭐가 그리 좋냐고 물어온다면(그렇게 묻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냥 좋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도 나를 참 좋아하고 있다는 감각을 수시로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관계는 일방적일 수 없으니 당연할 수도. 도파민이 마구 분비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벌떡이는 불타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이미 끝났겠지만, 분명히, 난 이 남자가 너무 좋다.
김연수 작가님은 소설<사랑이라니, 선영아>에서 상대에게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낸 것이라고, 그것은 사랑의 대상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어쩌면 남편을 이토록 사랑한다고 느끼는 것은 그를 사랑하고 있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남편도 나를 그만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러 그런 마음을 자주 표현한다.
“난 자기가 진짜 너무 좋아, 이렇게 계속 좋은 거면 이상한 거 아냐?!”
근사하게 표현을 하거나 센스가 넘치는 사람이 아닌지라 내가 그렇게 표현을 하면 어찌 받을지 몰라 부끄러워하며 민망해하지만 이제는 함께 반응해 준다.
“나도 자기가 최고야…”
어떤 접착제로 붙었는지 좀처럼 벗겨지지 않는 콩깍지를 쓴 채 남편과 데이트하러 버스를 탔다. 버스 정류장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 시간조차 좋았다. 버스 멀미가 있어서 버스보다는 지하철을 좋아하는 나와 다르게 남편은 연애할 때도 버스를 타고 데이트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자신이 자주 가던 학교 앞이나 살던 동네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손을 잡고 익숙한 풍광을 함께 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시간 관리의 압박에 늘 쫓겨 살았던 나는 지하철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 더 좋다고 여겨지던 때였다. 이 남자와 살면서 순간을 즐기고 누리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지금 당장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으면서도 바로 다음에 할 일을 고민하고 걱정하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늘 그 순간이 전부인 것처럼 여유가 넘친다. 당연히 계획이란 것을 세워본 적도 없고, 미리 앞서서 뭔가를 걱정하고 고민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물론 한 가정을 함께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아이들의 미래나 우리 노후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고 있지만 그것이 남편의 어깨를 크게 짓누르지는 않는 것 같다.
버스는 신호도 걸리지 않고 쭉쭉 달려갔다. 모든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내리고 다시 탔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신도시라지만 버스에는 어르신들도 참 많았다. 모두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버스는 나를 남편이 있는 곳까지 무사히 데려가 줬고, 난 놓치지 않고 야무지게 내렸다. 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남편이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뒤로 봄의 햇살이 바싹 내려앉은 듯 반짝였다.
“이쪽이야!”
“네, 그리로 갈게요!”
남편을 향해 보폭을 서둘렀다. 오늘은 더 많이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고백해야겠다. 두 손 꼭 잡고 우리에게 주어진 한 시간을 온전히 만끽해야지. 그다음을 걱정하지 않고 충만한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고 싶다. 이 사람과 함께라서 그렇게 살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쑥스럽고 민망한 표정으로 ‘나도.. “라고 응답할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완벽한 하루가 있을까.
“우리가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느냐는 미항공우주국의 업무지만, 우리가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느냐는 스스로 대답할 문제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느냐, 혹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사랑은 우리의 평생 교육기관이다”
김연수, <사랑이라니, 선영아>p.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