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날에 쉬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다. 남편은 회사에 가지 않으니 근로자이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니 선생님들은 근로자가 아닌 것일까. 주직업은 가정주부이지만 과외로 소소한 소득을 올리며 아득바득 읽고 쓰는 일에 힘쓰고 있는 나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때때로 스스로를 정의하기 어려울 때는 그냥 그대로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그 순간에 누릴 수 있는 것을 비교와 불평으로 멀리 제쳐두게 하는 어리석음에는 지지 않았으면 한다.
선생님들은 쉬지 못하는 것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오늘 하루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리란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하루를 맞이했다.
남편과 둘이 주어진 긴 자유시간을 어떻게 만끽하면 좋을지 며칠 전부터 함께 고심했다. 서울에 가서 유명하다는 베이글 카페를 가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돌고 돌아 동네에서 데이트하기로 했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내가 사는 곳에 가고 싶은 식당이 있었고, 늘 가던 카페를 남편과 함께 가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동네에서 맛있는 것이 먹고 싶은데 막상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를 때는 지역맘 카페에 문의해 보는 것이 제일 빠르고 정확하다. 신도시에 사는 젊은 엄마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공략한 맛집들은 나의 허술한 입맛에는 황홀경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역맘 카페에서 소개받은 이탈리안 요리를 파는 곳을 가기로 했다. 깔조네와 오일 파스타가 굉장한 맛집이라고 했다. 메뉴까지 접수!
차를 타고 가면 10분 이내로 도착하겠지만 우리는 당연히 걷는 것을 택했다. 집에서 식당까지 쭉 뻗어있는 산책로를 일부로도 걷곤 하는데 목적지가 있는 걷기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발걸음이 된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작은 식당이었다. 테이블은 다섯 개 남짓했고, 여사장님은 느긋한 미소로 반겨주셨다. 주방 안쪽에 조리하는 셰프님이 따로 있는 듯했지만,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앉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이미 우리보다 앞서 와서 주문하고 기다리던 부지런한 커플들이 몇 있었다. 짧지 않은 기다림이었지만 지루하거나 보채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드디어 나온 음식.
깔조네를 동네 식당에서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 못 했기에 그 자태가 영롱했다. 알맞은 농도와 빛깔의 토마토 소스 위에 떠 있는 깔조네는 널따란 밤하늘에 유유히 떠 있는 반달의 모습이었다. 그 가운데를 잘랐더니 치즈가 물컹 흘러나왔다. 자른 빵과 토마스 스스를 버무려 먹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맛이라지만 그 맛은 비범함이 있었다.
몇 해 전 남편과 단둘이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먹었던 피자가 떠올랐다. 거의 여행 막바지였는데 현금으로 가지고 있던 여행 경비를 제대로 예측 못 하고 식당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피자를 무턱대고 시켰다. 여행이 끝나가는 것에 절절한 아쉬움이 담겨서인지 더 맛있었던 피자의 마지막 조각을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서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행 경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당장 현금으로 찾기도 어려웠고, 갖고 있는 카드로 결제도 안 되는지라 막막했던 그날의 밤이 떠올랐다. 어찌어찌 방법을 찾아 어렵게 결제하고 레스토랑을 나오면서 둘이 진땀 흘리며 맘 졸였던 가슴을 쓸어내렸던 그 밤, 피자 맛은 잊을지언정 둘이 겪은 그 곤욕스러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 웃으며 말했던 그 기억.
함께 가지고 있는 기억의 아름다움은 그런 것 같다. 아주 구체적이고 자세한 것들은 사라지지만 함께 나눈 시간 속 감각은 그것을 떠올릴 수 있는 순간에 놓이면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 그것이 기억이 가지는 위대한 힘이며, 그렇기에 살아있는 지금 이곳에서 더 많은 감각을 느끼게 해 줄 기억을 쌓아가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순간들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수히 많은 것들에 감사하는 것도 잊지 않으리라. 오늘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 남편에게,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업받을 수 있음에, 봄볕에 산책할 수 있는 건강함에, 그 길을 마련해 준 이 도시에, 그리고 나의 기억을 소환해 주며 생의 또렷한 감각을 느끼게 한 깔조네를 요리해 준 얼굴 모르는 셰프님에게. 덧붙여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어깨도 스스로 토닥여본다.
어딘가에서 묵묵히 제 일을 하고 있을 수많은 근로자에게 감히 생의 격려를 건네고 싶은 날이기도 하다. 설사 자신의 정체성을 뭐라 정의할지 몰라서 나처럼 문득 좌절됨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더 큰 응원을 보내고 싶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각자가 있는 그곳에서 누릴 수 있는 생의 감각을 충만히 누리며 사랑하는 하루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