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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Nov 18. 2021

수능 보러 가는 길, 라디오와 접선했다.

시험 본 모든 이들을 응원하며!!

수능 시험. 언제부턴가 나와는 한참 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였는데 아이가 커가면서 또다시 내 인생 속으로 서서히 침투해오는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주변에 그 누구도 수능을 보는 이들이 없어 직접 응원을 해줄 수 없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진심을 담아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수능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수능 한파가 어김없이 몰아쳤다. 시험이란 것이 진정 최선을 다한 이들에게 떨리고 두려운 D-day가 되는 것이리라. 당시 나는 최선을 다했노라 고백할 수 없었던 수험기간을 보냈다. 아빠의 우울증을 핑계로 대기에는 나약함과 주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시간을 살았다.  


수능 당일, 엄마는 따뜻한 밥과 국, 그리고 소화가 잘되는 반찬을 골라 정성스레 보온도시락에 싸주셨다. 당연히 시험장까지 같이 가고자 하셨지만, 굳이 엄마 손을 잡고 가야 할 만큼 긴장한 수험생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함께 독서실을 다니며 엎드려 자기 만렙을 터득했던 친구와 택시를 타고 가기로 한 터였다. 엄마는 서운해하셨지만, 그럼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겠다고 하셨다.


수능 당일 가방에 무엇을 넣어가야 할지 요즘 수험생들은 고민하지 않으려나. 당시 친구와 나는 수능 전날, 하릴없이 독서실 앞 공원 앞을 서성이며 수능에 대한 소회를 털어놨다.


"야, 하루 전날 공부 열심히 한다고 뭐 달라지겠냐!"


"인생에 수능이 전부는 아니잖아!!"


이런 무의미한 말들만 서로 나열하며 억지스레 용기를 쥐어짜 보기도 했다. 어차피 주력 과목은 정해져 있었고, 암기를 위해 정리한 노트와 영어 단어장만 챙겨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가벼운 가방에 도시락만 고이 모셔 넣고, 수험표도 잊지 않고 챙겨 친구와 일찍 만났다. 하필 집에서 제일 먼 고사장으로 정해져서 비싼 택시비가 염려됐지만, 이날은 우리의 날 아니냐며 당당히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를 타고 시험장인 여고 이름을 말했다.


"어이쿠, 시험 보러 가는 학생들이네?! 왜 부모님이랑 안 가고...?"


"아... 저희 다 컸는데요. 기사님, 안전하게 데려다주세요"


나와는 다르게 붙임성이 좋고, 입담이 살아있던 친구가 대꾸했다.


그때 라디오에서는 유명한 앵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오늘은 수능 날이죠. 지금껏 수고한 수험생들의 결실의 날입니다. 지금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수험생들의 마음이 얼마나 긴장될까요. 혹 지금 시험 보러 들어가는 수험생 중에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곳으로 전화해주세요. 직접 응원하고 싶네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앵커의 말을 듣자마자 택시 기사님은 우리에게 빨리 전화를 해보라고 하셨다. 우리는 당혹스러웠지만, 도착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밑져야 본전이다 싶은 마음으로 라디오에서 안내하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진짜로 작가님이 받아서 "Mbc 손석희의 시선 집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수험생인걸 확인한 후, 바로 앵커와 연결할 테니 준비해달라고 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나와 친구는 서로 네가 말하라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결국은 한  마디씩 하기로 합의를 하고 연결하기로 했다. 시험 보러 가는 날, 아무런 떨림도 없던 나는 라디오에 목소리가 나온다는 사실에 극도의 긴장감이 몰려왔다.


진짜로 우리는 앵커와 연결이 됐고, 우리가 어디에 살고, 고사장은 어디인지, 느낌이 어떤지 등에 관해 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시험 볼 수험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셨다. 친구와 나는 눈빛으로 서로를 구해달라고 애원했고, 결국 핸드폰은 내 손으로 넘어왔다.


"오늘 시험 보는 모든 친구들! 긴장하지 말고 파이팅하세요. 우리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옆에서 친구는 웃겨 죽겠다는 듯 입을 틀어막고 끅끅거렸다. 눈빛으로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하듯이 쳐다보면서 말이다.


고사장에 가는 길에 그 소동을 겪고 우리는 무사히 시험을 치렀다. 그날의 운은 라디오와 접선한 것으로 다 썼던 것일까. 보기 좋게 시험은 망치고 말았다. 물론 친구도 언제나 그랬듯 나와 동지가 돼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라디오에서 외쳤던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라디오를 통해 세상에 널리 퍼졌던 그 말이 돌고 돌아 나에게로 다시 깊이 박혀 강력한 힘을 줄 것만 같았다.


오늘 시험 본 모든 수험생에게도 허공 어딘가로 퍼진 내 외침이 그들에게 와닿는 날이 되었길 바라본다.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노라고, 그 용기만큼은  저버리지 않는 하루가 되었길 다시금 두 손을 모아 보는 밤이다.





커버사진: © nittygritty_phot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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