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말말,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by 세리

명절 시즌이 끝나고 지인들을 만났을 때다.


서로가 앞다투어 시댁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쏟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부분의 하소연은 주로 시어머니의 ‘막말’ 대잔치로 불거진 일들이었다. 당신으로서는 며느리에게 할 수 있는 말이고 당연히 건네야 한다고 한 말들이라지만 그것을 듣는 처지에서는 얼마나 황당무계하고 어이없는 말들인지 호소했다. 시대가 많이 바뀌면서 명절 풍속도도 달라졌다고 하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시대 불문 어려운 관계임은 맞는 듯하다.


사실 요즘은 왕래가 잦지 않기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가 그리 나쁠 이유도 없을 것 같지만 결국 관계를 어그러뜨리는 것은 어김없이 ‘말’이다. 시댁에 가기 전에 다들 며칠 정도야 좋은 며느리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냐 하는 마음을 먹고 갈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단단히 준비하고 온 며느리에게 자기 아들만 두둔하거나, 살림 솜씨를 비난하거나, 케케묵은 옛이야기를 꺼내 잔소리를 하는 등의 ‘말’ 실수를 어김없이 쏟아낸다는 것이다. 그러니 명절이 끝나면 며느리들이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는 것은 우리 윗세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씁쓸한 모습을 목격한다.


뭐, 이런 이야기들은 사실 청자의 입장으로 나열해본 이야기다. 듣기 거북하겠지만, 나는 결혼하고 13년을 살면서 시어머니에게 ‘말’로 공격당해본 일은 한 번도 없다. 시어머니의 막말에 기분 나빠하는 지인들 앞에서 솔직히 공감하면서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렇다고 시어머니를 엄청 사랑하느냐. 그렇게 물어보면 언제나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며느리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결혼했을 때 당황했던 것은 어머니가 말씀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결혼하기 전에 여자 친구로 인사를 드리려 식사했던 자리에서도 당최 나에게 물어본 것이 없으시다. 겨우 이름 석 자와 나이만 알고 계셨을 텐데, 내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무엇을 전공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당신 아들이 왜 좋은지,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전혀 물어보지 않으셨다. 그저 어색한 침묵이 민망하여 옆에서 당시 남자 친구였던 신랑이 몇 마디 하고, 내가 장단 맞춰 또 몇 마디 하는 식이었다. 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면 다음 질문이 나올 법도 한데 어머니는 그 이상 묻지 않으셨다. 그 과묵함은 결혼 후 지금까지도 한결같으시다.


그렇다, 나는 어머니의 그 과묵함이 답답하고 싫었다. 나에게 잔소리도 요구하는 것도 없다는 것에 만족하라고들 했지만 난 도통 그분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선물을 드리면 ‘고맙다’라고 하셨지만 진짜 좋은 것인지 말투와 표정으로는 가늠할 수 없었고, ‘괜찮다’라고 하는 말의 진의도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때로는 너무 답답해서 신랑에게 진짜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알아보라고 하면 나보다 어머니와 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자식이라기에는 성의 없는 말로 “진짜 괜찮다는데 뭐” 하면서 결국 아들다움을 드러내곤 했다.


종종 신랑에게 그런 어머니가 답답하다고 조심스레 말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자기도 한 번은 궁금해서 어머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어머니는 동네 친구분들 만나면 무슨 얘기 하세요? 저랑 누나 이야기는 하세요?”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뭘 굳이 그런 걸 말해. 물어보면 답이야 하지. 난 그냥 듣기만 해.”라고 하셨단다.


건너 듣기로는 아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동네 친구분들이 우연히 알게 되고는 다들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간 그 집 아들이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라나. 학창 시절에 아들이 공부를 잘하면 슬쩍 자랑도 하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일 텐데 그런 기색을 전혀 비치지 않았다는 것에 역시 말수 없는 어머님 에피소드로는 명불허전이다.


이렇게 과묵하시니 친구분들과 자주 어울리는 성정도 아니시다. 그런데 결혼하고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막상 지인들과 자주 보진 않으시지만 그 지인들이 진짜 속상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쪼르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게는 어떤 말을 털어놓아도 그 말이 다른 이에게 새어나갈 일이 없으니 그런 것 아니었을까 싶다. 어머니는 누구에게 전화를 받든 그저 “어… 어.. 그래.. 저런” 정도로만 응수했다. 거기에 당신 말을 보태거나 어떤 충고도 위로도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내가 아이들 걱정에 하소연 비슷한 것을 털어놓아도 그저 “이런” 혹은 “에고, 왜 그랬을까” 정도로만 답해주실 뿐이다.



나도 이제 나이 앞에 4를 붙이고 보니 말은 많은 것보다는 적은 것이 좋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깨닫는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실망과 단절은 대부분 말이 앞서거나 잘못 나가서이지 않은가. 그것을 알면서도 말을 단속하는 것이 어찌나 힘든지. 몸에 있는 기관 중에 가장 작은 축에 속하는 ‘혀’를 놀리는 일을 통제하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는 것은 성경에 나올 만큼 무서운 진리이다. 어머니처럼 타고난 성정이 과묵한 분은 말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지만 요즘은 무조건 과묵하게 조용히 있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에 적절한 지혜와 기지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말말말, 이것이 참 어렵다.



한 번은 신랑이 다 커서 어머니에게 또 물은 적이 있단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신랑이 어렸을 때 날마다 새벽기도를 가셨는데 평소 말수가 없는 어머니가 새벽기도에 가서는 무슨 기도를 드리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교회 가서는 무슨 기도를 하세요? 복 달라고 기도하세요?”라고 물었단다.

“하나님께 복 달라고 기도해본 적 없다.”라고 딱 한 마디 하셨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무슨 기도를 드리셨을까. 자식들이 복 받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다고 하시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 두 자식이 참 잘 컸다. 재력과 명예의 복은 받지 못했을지라도 신랑과 형님의 인품은 탄복할 만큼 훌륭하니 말이다. 지금도 분명 자식들과 손주들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릴 분은 아닐 텐데 무슨 기도를 드리실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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