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잊고 살았다. 아니, 어쩌면 들끓는 열망은 늘 잠재했지만 범속한 일상에 치여서 꼬깃꼬깃해진 그것을 다시 펼치는 수고를 하는 열심을 못 냈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주어진 순리를 따라 공부를 했고, 수능 점수에 맞춰 인문계 중에 그나마 낫지 않겠냐는 영문학을 지원해 떠밀리듯 대학에 갔다. 그 뒤로는 그 죽일 놈의 영어와 어떻게는 친해보려고 고군분투하는 긴긴 세월을 보냈다. 그 사이 나는 결혼을 했고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둘째가 초등학교가 들어가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모든 자기 계발서가 말해주듯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꼭 일치하지 않는다.
잘하지 못하지만 할 때만큼은 온전히 몰입했던 것, 그것이 나에게 과연 있을까. 단박에 떠오른 것은 중학교 시절 몸담았던 <문예반> 시절이었다. 사춘기의 혹한 열병을 앓을 때 나를 도서관으로, 그리고 글쓰기로 안내해줬던 나의 큰 바위 얼굴 선생님이 계셨다. 놀랍게도 지금까지도 선생님은 내가 전화를 드리면 늘 그 자리에 계셔주신다.
예스 24에서 <나도 에세이스트>라는 에세이 공모전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고, 지난달 주제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전환점. 그 세 글자에 나는 오랜만에 나의 선생님, 그리고 그 시절 도서관을 떠올렸다. 덤덤히 글을 써서 올렸는데 '가작'에 당선되었다는 소식까지 듣는 기쁨을 얻었다. 어찌 보면 미비한 상이지만 온몸에 힘이 떨어졌을때 누군가 손수 까서 입 속에 넣어주는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만큼이나 용기와 격려를 받았다.
부끄럽지만 글 전문을 올려본다.
도서관, 그 음습한 냄새에 취한 순간
지옥문이 왜 열렸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모두가 그럴 거라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거라 호기롭게 장담했다. 그러나 결국 나도 중2 때, 들끓는 열기로 가득한 사춘기가 시작됐다. 나의 반항을 반삭으로 만천하에 공표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전교 1등까지는 아니어도 전교 10등 안에 줄곧 들면서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던 우등생 중의 한 명이었다. 그랬던 내가 중학교 2학년 봄, 어깨까지 오던 머리를 짧게 숏컷을 하고 학교에 갔을 때 나를 쳐다보던 담임선생님의 눈빛이 아직도 선연하다. 별명이 큰 바위 얼굴이었던 나의 담임선생님은 큰 얼굴에 다행히도 큰 눈을 갖고 계셨는데 그 큰 눈을 껌뻑거리면서 한참을 나의 변화에 휘둥그레하셨다. 어찌 된 영문인지 스스로 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답을 나 자신도 찾을 수 없었는데 선생님은 이미 알고 계셨을까.
나의 반항은 나와 비슷하게 사춘기의 열병을 앓기 시작한 친구들을 만났을 때 그 시너지가 폭발했다. 나를 포함한 친구 넷과 함께 우리는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모든 반항을 시도했다. 당연히 공부는 안 했고, 당시 최고 아이돌이었던 HOT에 빠져서 시도 때도 없이 교실에 모여 춤을 추고 그들의 이야기에 심취했다. 부모님 몰래 당시 살던 대전에서 버스를 타고 HOT를 본다고 서울 드림 콘서트까지 막무가내로 가기도 했다. 이런 덕질 정도야 엄마도 지나가는 과정이겠거니 하고 눈감아주셨다. 문제는 진짜 못된 범죄도 저질렀다. 우리는 거칠 것 없이 문구점에 들어가 필요도 없는 팬시용품들을 몰래 훔쳐서 당당히 나오기도 했고, 대형 슈퍼 앞에 진열된 과자들을 자연스럽게 훔쳐서 친구네 집에 모여 낄낄대며 먹으며 우리의 무용담을 자축하곤 했다. 매일같이 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도대체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이상하고 괴상한 행동들을 일삼았다. 그렇게 봄을 지나고 여름 방학 전에 보게 된 기말고사. 중학교 2학년에 올라와서 처음 본 중간고사에서도 1학년 때와 비교하면 가파른 속도로 추락한 성적이었지만 기말고사는 차마 믿을 수 없는 등수가 성적표에 새겨져 있었다. 나뭇잎이 짙은 녹색으로 변해가도록 괴상한 반항을 일삼던 나를 참고 지켜만 보시던 담임선생님이 드디어 나를 따로 불러내셨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학교 도서관을 관리하며 동아리 활동인 '문예반' 담당 선생님이셨다. 면담 장소로 오라고 부른 곳은 교무실이 아닌 도서관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사립 재단으로 고등학교와 함께 있던 곳이었고, 도서관은 고등학교 건물이 있는 별관에 있어서 부러 그곳을 갈 일이 없었다. 도서관 사서 실에서 선생님은 나를 앞에 앉혀두고 가만히 바라보셨다. 특별히 나를 혼내거나 성적에 관해 꾸짖지 않으시고 "앞으로 월요일 아침마다 일찍 와서 도서관 봉사를 해줬으면 좋겠구나"라고 말씀하셨다. 매주 월요일에 학교에 일찍 와서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하는 봉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뜬금없이 웬 도서관 봉사?! 란 생각이 먼저 떠올랐지만 부드럽지만 묵직한 어투로 말씀하신 선생님의 명을 감히 어길 용기가 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다음 주부터 나는 도서관 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도서관에 도착하자 다행히 나 혼자서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담임선생님이 맡고 있던 동아리 <문예반> 선배들도 함께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하라는 대로 도우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당시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책을 분류하고 책장의 먼지들을 닦는 일을 했다.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다. 그런데 선배들은 책을 정리하면서 책에 관한 이야기나 작가에 관한 이야기로 서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자기들끼리 웃곤 했다. 당시 그들이 나눴던 이야기에 대한 구체적 기억은 없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에 점점 나도 스며들고 있었다. 선배들이 나눈 많은 책 중에 <데미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처음으로 ‘나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히 차올랐다. 작가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헤르만헤세.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이야기가 더 알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인생책인 <데미안>을 만났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먹먹한 감동과 설명할 수 없는 희열을 처음으로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도서관에서 나만의 ‘데미안’을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을 아셨을까. 데미안을 읽은 후, 나는 헤르만 헤세의 또 다른 작품도 읽기 시작했다.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클링조어의 마지막여름>. 당시 15살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난 책 속에 곧 빠져들어 그들과 깊이 침잠하여 도서관에서 오직 홀로 심오한 세계를 향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즐겼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퍼지는 그 향기가 너무 좋았다. 도서관 회백색의 음습한 벽 냄새마저 사랑스러웠다. 난 월요일 오전뿐만 아니라 수시로 도서관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 지독한 사춘기의 열병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어른의 세계를 설핏 맛보면서 그 열망이 더욱 커졌다. 나는 무채색의 나만의 공간, 도서관에 가서 다른 책을 보며 식히곤 했다. 도서관과 책의 냄새를 사랑하게 된 그때, 난 처음으로 나의 내일을, 나의 어른 세계를 동경하며 꿈을 꾸게 됐다. 지금도 현재가 두렵고 무서울 때 난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 냄새에 흠뻑 심취한다. 나만의 비밀 공간 속으로.
-심사평-
<도서관, 그 음습한 냄새에 취한 순간>을 읽는 동안 마치 일본 청춘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장면 장면이 영화처럼 재생되면서 공감각적으로 다가오는 글이었어요.
방황하는 학창시절에 꾸짖거나 가르치려 하시지 않는 선생님의 조언으로 책과 가까워지고, 그를 통해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나가는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전해줍니다. 그 경험을 이렇게 글로도 완성하신 걸 보니, 독서에 이어 글쓰기도 글쓴이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는 건 아닐지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쓰다보면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거나 이야기를 과장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글쓴이께서는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친절하게 사황과 감정을 전달하는 글을 쓰셨습니다. 그래서 글을 읽는 내내 마치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을 보는 거 같이 편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