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 처우 개선을 바라며
요리에는 영 마음이 가지 않는다. 결혼을 안 했다면 결코 스스로 요리를 자처했을 리 없을 것이다. 내 가족과 좋은 음식을 나누고 싶다는 그 바람 하나로 요리한다. 요리 자체를 즐기고 좋아하는 이들을 보면 경외감마저 든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해준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요리를 하는 것보다 삼시 세끼를 무슨 메뉴로 구성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더욱 힘들다. 인터넷에서 좋은 메뉴 리스트로 식단을 짜서 그대로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며칠 못 가서 포기한 적도 있다. 결국은 아이들이 좋아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몇 가지 메뉴를 돌려가며 만드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학교에서 점심 한 끼를 해결하고 와주는 것은 엄마로서 받는 엄청난 은총 아니겠는가.
어릴 때 엄마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쌌던 그 정경이 떠오르곤 한다. 우리가 자는 방 옆에 붙어 있는 부엌에서 칼로 도마를 두드리는 리드미컬한 소리에 슬그머니 눈이 떠지고 미처 다 깨지 못한 아득한 정신은 미닫이문 틈새로 풍겨오는 국 냄새에 서서히 깨어지곤 했다. 내가 중학교 무렵에야 급식이 우리 삶에 정착했으니 그전까지는 매번 엄마의 도시락을 받아 학교에 갔던 것이다. 뚜껑이 잘못 닫혀서 김칫국물이라도 새면 집에 가서 엄마에게 볼멘소리로 잔뜩 짜증을 냈던 철없는 시절이었다. 당시 엄마들도 학교에서 급식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을까. 진정 피부로 밀접하게 느껴진 여성 혁명이었을 것이다.
"숨 막히는 급식실, 골병드는 노동자"라는 피켓을 들고 학교 급식실 환경 처우를 요구하는 급식실 노동자들을 뉴스로 보는 순간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내 삶이 편하고 즐거웠던 동안 누군가의 희생과 애씀을 그새 잊고 살았던 것이다.
급식실 노동자들의 폐암 발생률은 비슷한 성별과 연령대와 비교해 35배에 달한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급식실에서 갑자기 쓰러진 조리사가 8일 만에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급식실 환기 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기도 하고 적합한 기준을 충족하는 학교도 드물다고 한다.
급식실 개선에 더 마음이 갔던 것은 현재 친정엄마도 조리사로 종사하기 때문이다. 일터가 학교는 아니지만 한 건설회사 직원들의 점심을 준비하는 식당에서 메인 조리사로 일하고 계신다. 처음부터 조리사를 하셨던 것은 아닌데 이전 직장에서 엄마의 성실함과 요리 솜씨를 알아본 분이 그 회사에 엄마를 추천해서 일을 시작하셨다. 타고난 요리 감각이 있는 분이지만 대량으로 음식을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 처음 시작할 때 가족들 걱정이 컸다. 늘 긍정적 마인드로 주어진 일을 너끈히 헤쳐 나가는 엄마는 이번에도 역시나 씩씩하게 주변의 인정을 받으며 잘 감당하신다. 그러나 종종 "불 앞에서 일하는 거 힘들어... 오늘은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더라..."라는 소리도 종종 하신다. 뜨거운 여름날 불 앞에서 튀김이라도 해야 하는 날은 정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이 힘들다는 소리도 하셨다. 걱정하는 자식들에게 곧 정리한다고 하시지만 엄마를 믿고 맡겨주는 식당 사장님과 조리실 직원들, 그리고 엄마 요리가 너무 맛있다고 해주는 회사 직원들 때문인지 쉽게 결정을 못 하고 계신다.
엄마의 상황이 이러하니, 급식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얼굴과 눈빛이 그저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야 고작 학교와 교육청 게시판에 급식실 환기시설을 확충해달라는 글을 쓰는 것뿐이지만 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무엇보다 나의 안락함 뒤에는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애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어떤 순간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실상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으며 나는 그저 때와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이라는 진실을 놓치지 않아야겠다. 한 끼를 위해 수고해주는 이들에게 진정 감사한 마음으로 소중하게 먹을 줄 아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