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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May 23. 2023

어떻게 육아가 힘들기만 하겠어요.

비공식 육아 예찬글

얼마 전에 네일숍을 방문했을 때이다.


케어를 받는 동안 시선 앞에 놓인 아이패드에서는 최신 예능이 틀어져 있었다. 손님들과 필요 이상의 대화는 하고 싶지 않다는 분명한 의도로 받아들여야 할 터. 침묵하며 예능에 집중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일이었다. 화면에 나오는 ‘나 혼자 산다’의 전현무의 일상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관리해 주는 사장님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이 엄마시죠? 아이는 몇 살이에요?”

처음 물어본 사적인 질문이었지만 귀찮기는커녕 찡하게 반갑기까지 했다.


“네, 큰애는 13살이고 둘째는 10살이에요. 벌써 이만큼이나 키웠네요. 사장님은 미혼이시죠? “


“아, 아니에요. 저도 결혼한 지 5년이나 됐어요. 아직 아이는 없지만…”


이쯤에서 “네” 하고 대화를 마무리하는 것이 미덕이었겠지만 아줌마의 오지랖이 발동하고 말았다.


“당연히 미혼인 줄 알았어요. 아이 낳을 계획은 있으세요?”


“아, 아니요. 이제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려서 아이 낳는 것이 무섭네요. 지금처럼 둘이 편하게 살고 싶어서 계획 안 하고 있어요. “


“그렇구나. 아이 키우는 거 많이 힘들죠. 그래도 낳아서 키우면 너무 예쁜데….”


하고 싶은 말은 더 많았지만 여기까지만 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주변 친구들도, 관리를 받으러 오는 손님들도 죄다 아이 키우는 고충과 경제적 부담을 하소연해서 도저히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는 사장님의 말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쯤에서 멈춰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관리를 받는 내내, 그리고 집에 와서도 사장님의 말이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았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렵고 힘들다. 체력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 일이 분명하다. 한 지인이 말한 것이 생각난다. 타고나기를 성품이 이타적으로 보너스 점수를 받고 난 사람이 있고, 이기적으로 이미 마이너스로 깎여서 난 사람이 있는데 자신은 후자라 아이를 키우는 것도, 부부관계를 지켜내는 것도 모조리 힘들다고. 애초에 보너스 성품을 갖고 태어난 엄마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진심으로 공감했다.


엄마이지만 여전히 내가 우선이고 꺾이지 않는 이기심과 마주할 때마다 좌절하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아이가 어떤 말을 해도 두 귀를 쫑긋하며 들어주고, 아무리 잔소리해도 바뀌지 않는 습관도 끝까지 기다려 주는 엄마들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 아이들은 저런 엄마를 갖지 못한 것에 괜스레 미안해지기까지 하며 애초에 나란 사람은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는 극단의 생각도 수없이 했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며 많은 엄마들을 만나면서 알았다. 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우아한 엄마들도 나만큼이나 좌절하고 힘들어하고 무너지는 순간들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로 산다는 것은 그만큼 보이지 않는 무적의 힘을 지닌 존재와 매 순간 싸우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아무리 힘을 내보려고 해도 그와 상대도 되지 않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적과 싸우는 무력한 마음이 수없이 드는 그런 일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수없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위대한 순간들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을 간과할 수 없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육아가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일상에서 벗어나 네일 케어를 받는 사장님에게 아이 키우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 불평하고, 육아맘 동지들에게 내 아이의 부족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을 잔뜩 흉볼 때가 많지만 사실은 그런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순간에 아이로 인해 우리는 벅차게 기쁘고 행복하다.


엄마들을 대표해서 말하고 싶었다. 아이 키우는 일이 마냥 힘들고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누리는 행복한 순간이 훨씬 많다고. 한 존재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이토록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위대한 육아의 기쁨을 자랑하고 싶었다. 분명 많은 엄마들이 그러한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으며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렇기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을 너무 겁내지 말라고, 그것은 분명 위대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진심을 담아 건네고 싶었다.




가장 찬란한 꿈을 꿨던 20대, 금요 철야 때마다 교회 바닥에 무릎 꿇고는 간절하게 부르짖던 것이 있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활자로 써놓으니 민망하기 이를 데 없는 워딩이지만 당시에 난 진정한 믿음과 열정으로 그렇게 꿈꿨다.


40대가 된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내 마음 하나도 제대로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무시로 깨닫는다. 비록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인물은 되지 못했지만 나의 눈빛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가슴으로 품어줄 때 완전한 평온한을 얻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두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한 사람. 엄마란 이름으로 강력한 힘을 지닌 사람이 됐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분명 두 아이의 세상을 함께 품고 있음이 확실하다. 두 아이가 살아갈 세계가 엄마인 나로 인해 살아봄 직한 근사한 곳이라고 느끼게 해 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조금은 동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 그것이 곧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나는 감히 말해보련다. 이 위대한 일에 동참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날마다 들려오는 심각한 저출산 시대의 우려감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렇게 비공식 육아 예찬 글을 쓰는 것이지만 또 누가 아는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참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자꾸자꾸 말하다 보면 네일숍 사장님의 입에서 “아이 키우는 게 그렇게 행복하다면서요?!”라는 말로 바뀔는지.




둘째가 써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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