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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Jun 30. 2023

당신이 부러울 때

질투와 배움 사이 그 어디쯤



누군가가 나에게 장점을 하나 말해보라고 한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독서를 왜 그렇게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떠오른 대답도 같은 거였다.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많이 배우는 방법이라서요.

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물론 질문을 받았을 때는 바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우물쭈물했지만 말이다.


배움을 좋아하는 것,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질투가 많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배움을 추구하는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분명 나의 경우는 그렇다. 멋지고 근사한 누군가를 보면 질투심이 생긴다. 반사적으로 생기는 감정이라 저항할 겨를도 없이 곧장 떠오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질투의 색이 만화책에 묘사되는 것처럼 흑백의 무시무시한 빛깔은 아니라는 것이다. 난 질투심이 생기게 하는 사람을 결국 좋아하게 된다. 왜 그런가 했더니 나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에 본능적으로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그를 닮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임을 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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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몇몇 친구가 있다.


중학교 1학년, 어린이에서 벗어나 이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 여겼던 그때 만난 K는 나보다 키도 작고 조용한 친구였다. 어느 날 K가 쓴 노트를 보게 됐다. 학기 초였는데 분명 같은 수업을 받고 적은 필기였는데 친구의 노트에 적힌 글은 내가 적은 필기와는 완연히 달랐다. 자세히 읽어보면 내용이 같았지만, 그의 필체와 단아한 필기로 구성된 그 노트를 차마 내 필기와 비교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큼지막하게 글씨를 잘 쓴다는 칭찬을 꽤 듣고 자랐던 나에게 K의 필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한글 엽서체와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앙증맞은 크기의 각각의 자음에는 독특한 개성이 묻어나면서도 모음이 합쳐지면서 고유의 매력 있는 필체로 만들어졌다. 수업을 들으면서 곧장 받아 적는 수업 필기를 그런 필체로 쓸 수 있는 친구가 경이롭게 보였고, 무엇보다 그 필체가 너무 부러웠다. 강렬한 질투심이 느껴졌다. 그 필체를 따라 하고 싶은 순전한 열망으로 그 친구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친구의 노트를 자주 흘끔거리고, 때로는 대놓고 노트를 빌려서 보면서 친구의 필체를 따라 했다. 현재 쓰고 있는 필체는 그때 그 친구의 필체를 따라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완전히 똑같은 복제는 불가능했지만, 친구의 필체를 배우려는 마음에 모방을 거듭하다 보니 비슷해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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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친구 S는 예뻤다. 2학년부터 문과와 이과가 나눠지면서 문과생 60명이 우글거리는 반에 처음 들어갔을 때다. 남녀공학이었지만 60명의 삼분이 이는 여학생이었는데 그 많은 아이 중에 S는 눈에 바로 띄었다. 지금 표현으로는 후광이 비친다고 하는 것이 적확했다. 검은 긴 생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왔고, 뽀얀 얼굴에 커다란 눈, 붉은 입술은 흡사 백설 공주의 묘사법을 동원해서 설명하는 것이 민망하지 않은 생김새였다. 심지어 새초롬한 표정과 곧은 자세까지도 아름다웠다. 곧바로 질투심이 밀려왔다. ‘앗, 나도 예뻤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절로 들었고, 예쁜 애랑 친해지면 예뻐질 수 있지 않겠나라는 또 나만의 억지 논리로 그 친구와 친해지려 노력했다.


실제로 S는 예뻐지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남몰래 하고 있던 아이였다. 얼굴이 예쁜 것만큼 몸도 엄청나게 말랐었는데 점심을 거의 안 먹거나 한두 숟갈만 먹었다. 그나마 많이 먹었다 싶을 때는 화장실에 가서 손가락을 집어넣어 구토를 일부러 하면서 마른 몸매를 유지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머릿결을 유지하기 위해 좋은 빗으로 머리카락을 자주 빗어야한다는 것, 좋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물을 자주 마셔줘야한다는 것, 종아리에 알이 배기지 않기 위해서 앉으나 서나 틈만 나면 알을 풀어주는 운동을 한다는 것도 알려줬다. 물론 나는 S와 친해지면서 많은 것을 따라했다. 차마 먹은 것을 억지로 토해내는 것은 못 했지만 S가 조금 먹으면 나도 따라서 조금 먹고, 머리를 빗고 있으면 그 좋은 빗을 빌려서 내 머리카락도 소중히 빗어줬다. 피부를 위해 물도 자주 마셔주고, 친구가 추천해 준 화장품도 열심히 발랐다. 친구의 표정과 곧은 자세도 따라 하려고 애썼다. 그 덕분인지 이후로 예쁘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다 S 덕분이다. 지금도 머리카락을 자주 빗고 물도 자주 마셔준다.

 

K와 S말고도 내 삶에서 질투심을 유발했던 친구들과 지인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을 향한 질투심은 그들을 따라 하고 배우고 싶다는 열망으로 바뀌며 결국은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SNS의 화려한 세상이 펼쳐지는 요즘에는 더더욱 나의 질투심이 마를 새가 없다. 그것이 강하게 휘몰아칠 때, 나는 분명 같은 자리에 있음에도 저 구석탱이로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패배감이 밀려온다.


지금도 난 누군가가 부럽고 질투 난다.

다시 저항력을 탑재하고 질투를 배움으로 바꿔봐야 할 때다. 그들의 근사하고 화려한 것 중에 내가 따라 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본다.


질투와 배움 사이 그 어디쯤, 난 이 둘 사이를 늘 배회한다. 질투의 강력한 힘이 나를 수시로 넘어뜨리지만 나는 끝끝내 일어나 배움의 길로 기어 갈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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