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새로운 학교에 오면서 예기치 못하게 사람들과 얽혀들었다. 새로운 사람들, 더구나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관계는 늘 어렵다.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는데 이번 학교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학교를 보낼 때 나의 다짐을 지속하기 위해서도 학교 안으로 조금씩 깊이 들어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얽혀든 관계 속에서 온갖 다채로운 감정들이 얼기설기 뒤섞였다. 한 학기를 보내면서 두 아이는 매일 만나는 친구 간에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났고, 하교 후에 미주알고주알 말해주는 두 아이의 수많은 감정을 함께 공감하며 기쁨과 슬픔, 서글픔과 화남의 변주를 반복했다. 아이들과 대화하며 그 끝은 감사로 끝내곤 했지만 석연치 않은 감정은 아이들보다 도리어 엄마인 내 안에 씁쓸한 잿더미처럼 남았다.
내 아이에게 수많은 감정을 겪게 하는 아이들의 엄마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쉽게 답을 낼 수 없다. 혹자는 절대로 아이 친구 엄마가 내 친구가 될 수는 없다고 단언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아이를 떠나서 엄마들끼리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둘 다 일리가 있고, 나름의 경험과 근거에서 나온 결론일 것이다.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둘째 아이는 둘째 아이대로 여러 일을 겪으며 엄마들과 관계를 맺어야 할 일이 생겼고, 나는 마치 내가 처음 입학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탐색전을 벌이는 마음으로 4개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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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보다 조금 이른 여름 방학을 맞았다.
방학식 날, 며칠 동안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치지 않고 내렸다. 아침에는 둘째 친구 엄마와 커피를 마셨다. 참 짧은 시간에 이다지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구나 싶은 나눔의 시간이었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를 내가 정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이 사람과는 이만큼의 거리를 유지해야지, 하는 것은 애초에 나란 사람에게 불가능했다. 그저 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만 낼 수 있다면 그다음은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자연스레 스며들며 저마다의 관계를 만들고 함께 걸을 길을 낸다. 그동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오후에는 아이들 픽업하면서 갑작스레 차가 고장이 나서 정비센터에 차를 맡기고 혼자 카페에 있었는데 첫째 친구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들 방학식 날인데 한 학기 동안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서 내가 생각이 나서 안부 전화를 한 것이라 했다. 차가 고장 나서 맡기고 혼자 카페에 있다고 하니 그럼 그곳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다정한 이가 또 내게 다가왔다. 그가 내준 용기로 눅지고 우울했던 마음에 맑은 기운이 퍼져왔다.
큰아이 친구 엄마 중에서 동갑내기를 만나기 쉽지 않았는데 이 엄마는 나와 동갑이었다. 00 엄마,라고 부르던 호칭을 이름으로 부르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편히 말도 놓자고. 그가 건넨 손을 잡고 나도 용기를 내서 말해본 것이다. 처음으로 아이 친구 엄마를 진짜 내 친구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에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얼마나 밝게 웃으면서 좋아하던지. 자기도 그러고 싶었지만 먼저 그렇게 하자는 용기를 못 내고 있었는데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상하게 뭉클했다.
사람으로 인해 지칠 때도 있지만 역시나 사람으로 받는 위로와 사랑이 가장 큰 법이다.
서로에게 얽혀드는 것, 점점 혼자 있는 것이 편하고 복잡한 관계는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얽혀듦의 기쁨과 행복을 놓치고 있었구나 싶다. 그저 이미 주어진 관계에만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했다. 또 누군가에게 스며들어 함께 하는 것에 주저했던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다정한 이들. 그들이 아이 친구 엄마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용기를 다시 내본다. 더 깊이 사랑할 용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