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잘 즐겼다!

배드민턴 세계선수권 여자 단식 우승, 안세영 선수

by 세리

스포츠 경기를 즐겨보지는 않지만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다. 흡사 인생의 압축판이 경기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경기를 볼 때마다 실감한다. 단순히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경기를 보고 있으면 절로 깨닫는다. 남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인지 선수들의 표정과 힘겨운 몸짓에서 절절히 밀려온다. 끝끝내 자신의 길을 굳의 의지로 힘써 나가 싸우는 것을 보며 감동한다.


대중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 게임에서 그토록 열정을 내뿜으며 살아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열정을 쏟을 곳을 찾지 못해 삶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지루한 하루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막상 열정을 찾은 그 일에서도 시간이 흘러 그것이 사라지면 그 일은 힘겨운 짐짝을 얹고 가는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온 열정을 쏟아부어 한계를 극복하고 승리까지 거머쥐는 스포츠 선수를 보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한 희열감을 준다.


엊그제 열린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도 그러했다. 21살 안세영 선수는 남녀를 통틀어 한국 배드민턴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 단식 부문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안세영 선수/출처:연합뉴스



축구나 야구, 그 밖의 종목은 눈으로 경기를 볼 뿐 직접 하는 일이 없으니 영화 장르로 치면 SF물을 보는 감상 수준이지만 배드민턴은 좀 다르다. 요즘 두 아이들과 배드민턴 치는 재미에 푹 빠져있기도 하고 동네 공원에 가면 가장 흔히 보이는 생활 체육이 배드민턴이니 이것의 장르는 밀접 현실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로맨스와 배우들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로맨스의 간극에 놀라며 하염없이 빠져드는 꼴이다. 분명 나도 즐기는 운동인데 선수의 그것은 몇 차원이나 끌어올린 수준이니 일단 경기하는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경기를 주도하는 선수의 거침없는 경기력에 출구 없이 빠져든다. 안 선수는 공격의 틈을 찾으면 그것을 비집고 들어가 빠른 속공을 날리고, 온몸을 날려 스매시를 받아내는 수비력도 보여줬다. 경이로운 집중력이었다.



안세영 선수는 결승전에서 두 세트를 42분 만에 끝내고 우승을 거머 줬다. 그리고 관중들을 향해 박수를 유도하는 제스처는 흡사 그곳을 자신만의 단독 콘서트장으로 느낀 듯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언론과 한 인터뷰는 더욱 볼만했다. 뒤에 관중을 배경으로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처럼 마이크를 잡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즐기니까 다 잘 되는 것 같아요. 정말 잘 즐겼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보통 스포츠에서 우승한 선수들의 소감은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감독님과 다른 선수들 덕분입니다.”는 식의 겸손을 잔뜩 품은 진부한 어구의 나열들인데 안세영 선수의 소감은 남달랐다. 겸손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승리의 감정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경기에 온전히 집중했다는 선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보여준 소감이었다. 그녀의 눈빛과 표정, 그리고 당당한 태도가 잊히질 않는다. 진정 자신이 하는 운동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구나를 온몸으로 내뿜었다.


잘하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안세영 선수는 보여줬다. 안선수가 진정 행운아인 것은 그녀는 자신이 잘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법까지 깨달은 경지에 다다른 선수란 것이다. 물론 그 행운은 절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잘하기까지도 오랜 훈련이 필요했을 것이고,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열정이 사라지면 짐짝처럼 느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그것을 극복하고 끝끝내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선수가 됐다. 스포츠 선수들은 그런 면에서 인생의 중요한 법칙을 몸으로 실제적으로 배운다. 그리고 몸으로 배운 것은 아마 평생 그 삶에 각인되어 잊히지 않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스포츠가 위대한 것은 많은 말이 아닌 경기로, 선수의 스토리로 대중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준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위해 열정을 쏟아야 할지 막막한 이들에게 안세영 선수는 몸으로 만들어낸 스토리로 알려준다. 그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어떤 삶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얼마 전에 읽은 조지 쉬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에서 저자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심장 전문의로 살다가 44세에 달리기 선수로 살겠다고 선언한 저자는 자신은 나이와 싸우지 않았노라고 말한다. 자신이 맞서 싸운 것은 지루함, 반복적인 일상,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위험이었다고.


안세영 선수를 생각하고 나의 오늘을 마주하며 생각해 봄직한 조지 쉬언의 질문을 남겨본다.


“저는 두 가지 사실만 알 뿐입니다.
첫째, 언젠가 나는 죽을 것이다.
둘째, 지금 나는 죽지 않았다.
묻고 싶은 건,
이 두 지점 사이에 있는 저는 지금 뭘 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최대의 난제, 브런치'컨셉'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