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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May 17. 2023

꾸준히 달릴 수 있는 비결

한 곡만 더,

처음으로 쉬지 않고 10킬로 달리기에 도전했다. 1킬로를 7분 페이스로 달린다고 생각하면 70분을 쉬지 않고 달렸다는 뜻이다. 달리기를 하지 않거나 나처럼 숫자와 단위에 바로 계산이 서지 않는 이들은 10킬로를 달렸다고 하면 무반응이다. 내가 예전에 그랬기에 그들의 반응에 서운하거나 답답한 심정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10킬로를 달린 나를 스스로 멋지다고 자축하고 싶다.


뛰어나진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운동 신경을 타고난 탓에 웬만한 운동은 시작하면 얼결에 잘하는 축에 속해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런저런 운동을 찔끔씩 공략하며 경험했지만 딱히 하나의 종목이 오래된 취미가 되진 못했다. 나의 성실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고 어떤 운동이든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금액을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도 크다.


코로나 시기를 맞으며 센터에서 하는 운동을 타의로 그만두면서 택한 것이 바로 달리기다. SNS에서 연을 맺은 인친님들이 달리기를 하는 것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소설가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 달리기를 예찬한 두 작가님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러너의 삶을 동경하게 됐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두 작가분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10킬로 이상을 꾸준히 달리며 정기적으로 마라톤 대회도 나갈 정도로 러닝에 진심인 분들이다. 그들의 책에는 달리기가 곧 인생이며, 소설가로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마치 달리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달리기를 찬양한다.



인친님께 추천받은 앱으로 매일 5분 달리기부터 시작했다. 5분 달리기는 점차 시간이 늘어나면서 30일이 됐을 때는 쉬지 않고 30분 달리기까지 가능해졌다. 30분을 달릴 수 있게 된 후로는 거의 빠지지 않고 매일 30분 달리기를 했다. 요즘에는 매일 달리지는 못하고 적어도 일주일에 3회는 30분씩 달린다. 달리기 한다고 하면 지인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힘들지 않아? 난 5분도 못 달리겠던데…”


매일 30분을 달리면 어느 순간에는 힘들지 않은 날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매번 달릴 때마다 힘들다. 분명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능력은 길러졌다. 전에는 5분만 달려도 숨이 턱 밑까지 차서 더 이상 달리면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공포까지 느껴져서 멈추고 달리고를 반복했다면 이제 그런 고통은 없다. 그럼에도 10분을 넘기기 전에 고통이 찾아온다. 아주 단순하게 ‘달리고 싶지 않아. 굳이 달려야 할까?’라는 마음이 밀려오는 것이다. 신기하게 10분을 넘기기 전에 그런 마음이 매번 똑같이 든다. 그런데 그 10분을 넘기면 그 뒤로 10분은 달리는 것이 살짝 편안해진다. 그때는 ‘그래, 포기하지 않고 달려보는 거야! 할 수 있어!’라는 의욕이 다시 불끈 솟는다. 그런데 또 10분이 지나면 금세 마음이 바뀐다. ‘아휴, 도저히 안 되겠다. 오늘은 이 정도만 달려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딱 10분만 더 달리면 목표한 5킬로가 끝나는데 그쯤에서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강력한 마음이 들어온다. 그때는 그 어떤 거창한 말로 나를 응원해도 달래 지지 않는다. 그럴 때 내 귀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집중한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 이런저런  음악을 선곡해서 들으면서 달렸다. 하루키가 추천한 달릴 때 좋은 재즈곡을 들어보기도 했고, 러닝 할 때 좋은 음악 리스트를 친절하게 올려준 이들의 선곡을 따라서 달려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나에게 맞는 음악을 찾았다. 그것은 90년대 신나는 댄스 가요들. 내가 중고등학교 때 줄기차게 듣고 노래방에서 불렀던 추억의 댄스곡들이다.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 벅의 ‘맨발의 청춘’ 거북이의 ‘빙고’ 코요테의 ‘순정’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등 나의 레전드 댄스 가요가 달릴 때는 최고였다. 달리다가 포기하고 싶을 때 내 귓가에서 우렁우렁 울리는 댄스곡들에 집중한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이 한 곡이 끝날 때까지만 달리자’ 그렇게 3분 30초 정도를 또 달린다. 그리고 다음곡이 이어지면 다시 외친다. ‘아, 벅스 노래잖아. 맨발의 청춘에서 멈출 수는 없지. 이 한 곡만 더!’ 그렇게 또 4분을 달린다. 그렇게 한 곡만 더를 외치면서 달리다 보면 어느새 손목 워치에 러닝 시간은 30분이 채워져 있다.


30분 달리기에서 그 이상을 달리는 것은 나에게는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 매일 익숙한 루틴을 깨는 것이 부담스러워 늘 ‘한 곡만 더’를 외치며 30분 만을 채웠다. 그러다 이번에 10킬로 마라톤에 도전하게 됐다. 10킬로를 마라톤이라 부르기에 민망하지만, 기부런을 하며 러닝메이트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5킬로와 10킬로, 그 이상도 있었지만 날마다 달리던 5킬로에서 한 단계 끌어올린 10킬로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10킬로에 성공하면 취약 계층 여성을 위해 생리대와 위생 시설 보수 비용을 기부하는 좋은 취지의 대회였다.


정해진 기간 중 좋은 날을 정해 10킬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매일 달리던 집 앞 천을 달리고 스스로 인증하는 것이지만 괜스레 긴장되는 마음이 컸다. 10킬로면 나의 페이스로는 1시간이 넘는 시간이었다. 중간에 쉴 수도 있지만 천천히 달리더라도 쉬지 않고 달려보고 싶었다. 5킬로까지는 ‘한 곡만 더’가 통했지만 1시간도 통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역시나 달리기 시작하자 10분마다 고비가 찾아왔다. ’굳이 왜 달려야 할까 ‘의 포기해도 된다는 유혹과 팽팽하게 맞서며 속으로 간절히 ’한 곡만 더‘를 외쳐대며 결국 10킬로를 채웠다. 김연수 작가가 한 말이 떠올랐다.


“달리기의 고통이란 앞면은 거울이고 뒷면은 유리로 된 이중창 같은 것이라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달릴 때는 정말이지 죽을 것 같았는데, 달리고 나면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 매번 그렇다. 그럴 때면 늘 고통의 순간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놀란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p.143


1시간을 달리는 동안 ‘한곡만 더 달리자’는 ‘한곡만 더 달렸다가는 죽을지도 몰라’로 바뀌는 고통이 있었지만 결국 지지 않고 끝까지 달리자 그 고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달리기는 글쓰기와 같다느니, 인생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느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이다든지 하는 거창한 말은 잘 모르겠다. 내가 아직 하루키나 김연수 작가처럼 글쓰기에도 달리기에도 고수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저 나는 달릴 때마다 ‘한 곡만 더’를 외치며 달린다. 그 짧은 말이 나에게 찰나의 매직을 보여준다는 것은 몸의 경험으로 분명히 인식한 진실이다.


주저앉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떠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급할 때는 ‘딱 한 번만 더’를 외치며 한 걸음씩만 더 나아갈 힘을 쥐어짜 보는 것이 실제로는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한 곡만 더’는 실상 ‘오늘 하루만 더’의 다짐과 같은 것이 아닐까. 불혹의 나이를 넘었음에도 날마다 흔들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면서도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밀려올 때, 이만하면 됐다고 타협하고 싶어질 때 자신에게 외쳐본다. “오늘 하루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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