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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Apr 24. 2023

안부 묻는 사이

시어머니는 오랫동안 장애인 활동 보조 일을 하셨다.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하셨으니 족히 15년은 넘으신 것 같다. 초기에는 몇몇 아이들을 함께 보셨지만, 연세가 있으신지라 지금은 한 친구만 돌보고 계신다. 공교롭게도 그 친구는 나와 동갑이다.


결혼 전부터 시댁 식구들이 그 친구의 이름 석 자를 자주 말하곤 해서 얼굴을 본 적이 없을 때도 익숙했다. 결혼 후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남편은 매번 똑같이 물었다.


“안태현(가명)은 잘 있어요?”


원체 말수가 없으신 어머니는 남편의 질문에도 그저 “응, 잘 지내지!” 하셨다. 만날 때마다 안부를 묻는 안태현의 존재가 나도 궁금했다. 더구나 나와 동갑내기라고 하니 더더욱 말이다.


결혼하고 큰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시댁에서 제법 가까운 거리에 살았다. 시부모님이 어렵지 않았던 나는 남편의 퇴근이 늦으면 가끔 혼자서 어머니를 만나러 가곤 했다. 함께 근처 시장에 걸어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주로 나 혼자 떠들었지만), 시장에서 마트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한 물가에 놀라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루는 남편이 또 늦는다고 해서 예고 없이 혼자 시댁으로 넘어갔다. 집 현관에서 낯선 신발을 봤고, 내가 들어가자 어머니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에고, 어쩌나. 지금 안태훈이 와있어. 복지관 가는 날인데 무슨 행사를 한다고 해서 못 가고 집으로 데리고 왔지.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그날 처음으로 안태현을 만났다. 그동안 남편과 어머니의 대화에서 안태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내 맘대로 그를 상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나와 동갑이란 것을 알았음에도 나는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그 누군가를 그려놓고 있었다. 작은 방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안태현은 말 그대로 그냥 아저씨였다. 당시 내가 아직 30대가 아니었기에 그를 아저씨라고 칭하기에는 실례일 수도 있었지만 내 상상 속 소년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너무 큰 어른이 앉아 있었다.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그의 정확한 장애 명을 몰랐고, 어머니도 그저 ‘자폐아’라고만 말했었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은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생리적 욕구는 표현할 수 있었고, 이름과 사는 곳, 부모님의 전화번호도 기억할 수 있다고 했으니 7세 수준의 지능은 지니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린 자폐아 친구들을 돌보는 일은 연세 있는 활동 보조원들에게는 퍽 힘든 일이다. 아이들이 불시에 차도로 뛰어 들어가거나 거리에 주저앉아 생떼를 부리면 도저히 그 힘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어머니도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었지만 그런 아이들을 맡을 때는 여러 번 큰 곤욕을 치러서 힘들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이유로 안태현을 전담으로 맡았다고 하셨다. 안태현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었지만 돌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반면에 성인 남자이기 때문에 젊은 활동 보조원들이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어서 어머니가 맡게 되신 것이다. 안태현 어머니도 어머니를 신뢰해서 쭉 어머니가 맡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안태현은 글도 잘 읽었다. 방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었지만, 그 손에는 커다란 신문이 들려 있었다. 신문 기사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두 눈으로 열심히 신문을 읽었다. 어머니는 내가 오자 찬거리가 없다면서 시장에 다녀온다고 하셨다. 안태현과 둘이서만 남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금방 올 것이고 곧 아버지도 들어오시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곤 나가셨다. 나는 거실에 앉아 방 안에 앉아있는 안태현을 봤다. tv를 틀어놓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경계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안태현이 갑자기 일어났다. 뚜벅뚜벅 방에서 걸어 나오더니 익숙하게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순간 심호흡을 크게 했다. 잠시 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세면대에서 물 트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손도 야무지게 씻는 모양이었다. 그는 나오더니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보던 신문에 눈을 고정했다. 나는 그가 나온 화장실로 쪼르르 가보았다. 무슨 큰일이 벌어질 것도 없음을 알면서도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얼핏 봤을 때는 화장실은 평소와 같은 그곳이었다. 그런데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원래 놓여있던 쓰레기통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오른쪽 구석에 놓여있던 쓰레기통이 엉뚱하게 샤워기 옆에 놓여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별일 없었지?”

“네, 근데 안태현이 화장실 갔다왔는데 쓰레기통을 저기에 뒀어요.”

“아, 쟤는 우리집에 오면 그러더라고. 자기네 집 쓰레기통은 저기에 있는 건지, 자기만의 규칙이 있나봐”


어머니는 곧 저녁을 했고 나와 안태현을 차례로 불렀다.

“안태현, 밥 먹어!”

“네”

그는 씩씩하게 대답하더니 차려준 밥상 앞으로 앉아 야무지게 밥을 먹었다. 늘 더 먹고 싶어해서 안태현의 어머니는 적당량만 먹게 해달라고 당부를 했다고 한다.

“안태현, 더 먹고 싶어?”

“네”

나는 그에게 묻고는 밥솥에서 주걱 가득 밥을 퍼서 그에게 줬다.

“안태현도 엄마가 없을때는 더 먹는 재미가 있어야죠!“

나의 말에 어머니는 웃으셨다.

“안태현이랑 친해져나봐!”

“히히, 어머니, 우리 동갑이잖아요. 원래 친구에요!”




지금도 시댁과 먼 거리에 살고 있지 않다. 시댁이  지방에 있는 이들에 비하면 꽤 자주 가는 편이지만 신혼 때만큼은 아니다. 여전히 어머니가 좋으면서도 그 간격이 좁혀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며느리가 불편할까 봐 먼저 연락 한번 하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면서도 친정엄마께 하는 만큼 자주 전화를 드리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문득 마음에 땅거미가 내려앉듯 어둠이 밀려올 때 어머니가 생각난다. 함께 시장을 거닐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날 속상하게 했던 남편 흉도 허물없이 말할 수 있었던 그때가 문득 그립다. 이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와의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졌음에 무엇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섭섭함과 애절함이 밀려온다. 그럴 때는 고민하지 않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어머니, 별일 없지요?”


특별히 할 말이 없을 때는 중간중간 침묵의 단절이 오가기도 한다. 서서히 고부간의 침묵도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가는 사이가 되길 바라며 더 자주 전화를 드리겠노라 다짐하곤 한다. 어머니는 지금도 안태현을 돌보는 일을 하신다. 난 침묵을 깨며 친구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안태현도 잘 지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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