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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May 14. 2021

월요 단식

하루쯤은 온전히 비워보기

월요 단식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발육 속도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현재의 몸을 완성했다. 그 후로 키와 몸무게 큰 폭 변동 없이 일정하게 유지됐다. 임신과 출산을 두 번 겪으면서 10kg가량 불어난 적이 있지만, 보통은 평균 몸무게를 유지하며 불편함 없이 살았다. 마른 몸은 아니어도 늘 '날하다'정도로는 인정받던 몸이었다. 그런데 작년 코로나를 겪으면서 오랜 세월 유지하던 몸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워킹맘으로 아슬아슬하게 삶의 균형을 맞춰오다 때마침 집에서 쉬면서 그 경계 태세가 풀려버린 탓일 수도 있었다. 한번 터진 둑에서 물은 걷잡을 수없이 흘러나왔고 긴급처방이 필요하다 싶었다. 운동은 그나마 꾸준히 홈트와 산책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었다. 운동의 강도를 더 높일 필요도 있었지만 역시나 다이어트의 극약처방은 '식단'임을 알기에 메뉴를 '저탄 고지'의 황금률, 샐러드와 닭가슴살 위주의 식사로 바꿨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이렇게나 빨리?' 할 정도로 아침 공복 상태에서 재는 체중계 위의 숫자는 전날의 수고로움을 보상하듯 야금야금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다이어트에 성공을 했음에도 이유 없는 피로감은 가시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온종일 아이들과 집에 갇혀 지내야 하는 신세에 안 아픈 이가 어디 있겠냐며 주변에서 다들 하소연을 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몸이 영 개운 않았다. 나이 탓이려나 싶어 그 피로감에 익숙해지자 하던 차에 한 지인이 '3일 단식'을 추천했다.


그 전에도 단식의 효과에 대해 지나가는 풍월로 여러 번 들은 적은 있었지만, 내게 그동안 단식은 크리스천으로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시도하는 고행이란 인식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유튜브나 초록창에 '단식'만 검색해도 단식 예찬론자들의 경험담과 정보가 쏟아졌다. 그리고 가입한 단식 카페에서 단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3일 단식'은 초보 중에도 생초보들만 하는 기간이었고, 대부분의 카페 멤버들은 10일 이상의 단식에 도전하고 있었다.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했구나. 먹방이 판을 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몇 시간씩 줄을 서며 있는 것을 숭배하는 이들 면에 10일을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며 극단의 공복 상태를 즐기는 사람들. 뭔가 혼란스러웠지만 신선했고,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



3일 단식


펜더믹 시기에 삼시 세 끼를 집에서 챙겨줘야 하는 삼식이 둘이 집에 있는데 10일 이상의 단식은 내게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단 3일 단식에 도전했다. 평소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첫날 점심까지는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앞으로 3일 단식을 하겠노라고 스스로 결심을 해서인지 늦은 점심부터 유독 허기가 심하게 몰려왔다. 배고플 때마다 따뜻한 물을 마셨지만 물을 마실수록 더 깊은 허기짐이 꼬르륵 거리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총공격을 가했다. 그렇게 오후를 버티자 신기하게 미친 듯이 몰려오던 허기가 조금씩 사라졌다. 그러다 첫날밤에 잠들기 전에 또 무차별 공격을 해왔다. 평소 야식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도 온갖 야식 메뉴들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특히 치킨과 떡볶이가. 그렇게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잠을 잤고, 둘째 날을 맞았다. 둘째 날 공복 상태에서 체중계 위에 올라갔는데 그 전날 대비 1.8kg이 감량한 무게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저 하루만 굶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이 빠지다니. 거칠게 몰려오는 허기와 힘듦이 조금은 무마된 듯했다.


둘째 날은 먹고 싶은 의욕보다 그저 누워있고 싶다는 피곤함이 더 짙었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주부로서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싶은 자괴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칼을 뽑았으니 뭐라도 잘라보자 싶었다. 겨우 둘째 날을 넘기고 드디어 마지막 날. 마지막 날은 알람도 없이 눈이 새벽부터 일찍 떠졌다. 분명 공복감에 허기짐이 느껴졌지만 둘째 날만큼 피곤함이나 무기력함은 없었다. 왠지 모를 힘이 솟는 느낌이었다. 단식 카페에서 3일째 되는 날부터는 오히려 몸이 편해지고 힘이 생길 테니 이틀만 잘 버텨보라고 했던 성지글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됐다.


셋째 날 몸무게를 쟀을 때 최종적으로 단식 전보다 3kg가 빠져있었다. 출산 이후론 최저 몸무게였다. 그렇게 난 3일 단식에 성공했고, 단식의 맛을 아주 조금 맛볼 수 있었다. 3일째부터는 이후 10일을 넘어가도 그리 어렵지 않다고들 했지만 그렇게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고, 다음 날부터 나는 보식으로 죽부터 시작해서 클린식과 일반식으로 점차 일상생활을 회복했다.


월요 단식


3일 단식으로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경이로운 몸무게를 기록했지만 이후 일반식으로 돌아오면서 조금씩 내 평소 몸무게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다만, 단식을 하면서 그전에 느끼지 못했던 극한 공복감에 살짝 매료됐다. 힘들지만 그 극한의 체험을 그저 밥을 먹지 않는 행위를 느낄 수 있다는 쾌감도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 종종 하루 단식 도전했다. 3일 단식에 비해서 하루 단식은 아주 쉬웠다. 처음에는 점심부터 공복감이 심하게 밀려오지만, 정기적으로 하루 단식을 하다 보니 그 공복감을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조금씩 다다르게 됐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단식을 하는 거 규칙적으로 요일을 정해서 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가장 적절한 요일은 '월요일'이었다. 주말에는 아무래도 평일보다 과식을 하게 되니 이왕이면 월요일로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월요일은 한주를 시작하는 첫 날로 단식에 경건함의 의미를 부여하기 적절했다.



월요 단식을 하면서 나 개인적으로 바뀐 것들을 정리해봤다. (단식의 효능과 필요에 관한 정보는 차고 넘치기에 순수 경험적인 것 위주로 말이다.)


1. 월요일에는 그 누구도 만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월요 단식을 하게 되면서 월요일에는 약속을 잡지 않다. 팬더믹이 일상화되면서 서서히 지인들과의 모임이 많아졌고,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브런치 약속이 수시로 생기게 됐다. 단절됐던 인간관계에 너도나도 목이 말랐던 차에 보복 소비를 하듯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서 서로 밀린 안부를 묻고 수다를 떨었다. 소소한 우정을 쌓아가는 행복한 일이지만 그만큼 내 안의 에너지도 고갈되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쯤은 그 누구도 만나지 않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아야 한다.  채우기에 급급한 삶에 일주일에 하루는 온전히 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식을 핑계로 월요일 딱 적절한 'me time'이 됐다.



2. 한 주간 먹을 건강한 식재료와 식단을 준비하게 된다.


단식을 하면서 그 하루만큼은 뭘 먹을지, 언제 먹을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지 않아도 된다. 먹어야 하는 의무로서 자유함을 만끽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일은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를 고민하게 되는데, 하루 동안 기꺼이 비운 내 몸에 이왕이면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보상심리로 과식을 하는 과도기를 겪지만 결국은 비워진 내 몸에 과식보단 근사한 식사를 주고 싶어 진다. 그럼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사게 되고, 그것으로 만들 질 좋은 음식을 고민한다. 단식을 하면서 진정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놀라운 변화였다.


3. 삶의 감사거리를 찾게 된다.


공복의 느낌에 익숙해지고 내 몸을 그것에 길들게 하는 것이 점점 쉬워진다. 그리고 놀랍게도 단식하는 날은 낮에 피곤함은 사라지고, 명료함이 또렷해지면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스스로 음식을 통제할 수 있다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밀려오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불평과 비교의식에서 해방된다. 그리고 내가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더 깊이 감사하게 된다. 허기짐과 음식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나'라면 그 무엇도 할 수 있으리라는 강력한 믿음이 생겨난다.


4.  다이어트 효과가 나타난다.


이것은 확실하다. 주말, 극강의 먹부림을 감당하느라 고생한 내 안의 장기들을 쉬게 해주는 보상은 확실하다. 하루 단식 후 다음날 몸무게를 쟀을 때의 그 희열 덕분에 계속 월요 단식을 유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난 앞으로도 월요 단식을 계속 감행할 예정이다. 40을 맞기 전에 그 누구에게도 추천할만한 나만의 삶의 루틴이 하나 있다는 것에 괜스레 자부심이 밀려온다. 월요 단식, 꼭 해보길 추천한다!


그는 돈이 줄어들어도, 상황이 나빠져도 흔들리지 않았다.
시련과 어려움이 오더라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손해를 보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비결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다.

"나는 사색할 수 있습니다.
 나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나는 단식할 수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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