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 저장된 신랑의 이름은 "내편"이다. 결혼 12년 차, 아직까지는 나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는 내편. 나는 그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묻는 것이 있다.
"자기야, 나 사랑해?"
그의 대답은 "응, 그럼"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말한다. "사랑한다고 말을 해줘야지, 응이 뭐야.."
그러면 로봇처럼 다시 말해준다. "응, 사랑해." 부부만 있는 은밀한 공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시시때때로 그에게 뜬금없이 물어본다. 마트에서 함께 쇼핑카트를 밀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갈 때도 불쑥 묻는다. "나 사랑해?" 우리 앞 뒤로 다른 이들이 옴팡지게 붙어 있는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기어코 "사랑해"를 듣고야 만다. 그가 제법 자연스럽게 "사랑해'라고 응수하면, 나는 한술 더 떠서 "뽀뽀해줘"를 요구하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를 더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회사에 있을 때이다. 여전히 회사에서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꼬박꼬박 집순이인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주는 고마운 신랑에게 통화 끝자락에 나는 또 묻는다. "자기야 나 사랑해?" 그럼 그는 급 조심스러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응, 당연하지." 그럼 나는 또 "사랑해"를 말해달라고 때아닌 기교를 부린다. 분명 그 사람 주변에 공대 출신 회사 동료들이 우글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이 너무 즐겁다.
나는 왜 이리도 그에게 듣는 "사랑해"라는 말에 집착할까.
아내바보인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해서는 아니다. 부부가 나이가 들면서 "사랑해"라는 고백을 건네기 위한, 어색함을 깨야하는 용기가 필요해지는 것이 싫어서이다. 연애할 때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서로 사랑을 속삭이지 않았던가. 매일 전화로, 문자로, 메일로 그리고 만나서 눈빛만 마주치면 수시로.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부부간에 "사랑해"라는 말은 낯간지럽고, 뭔가 이벤트 할 때만 쑥스럽게 건네는 특별한 말이 되는 것을 보는 것이 서글펐다. 난 부디 그렇게 나이 들고 싶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들은 사실 꽤 한정적인 몇 단어만 반복적으로 쓴다고 한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할 때, 미국 원어민 교수님은 회화 학원 같은 데 가서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하지 말라고 충고하셨다. 결국 쓰는 단어와 문장만 계속 반복할 뿐이라고. 진짜 영어를 잘하고 싶으면 부디 원서를 읽으라고 당부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현재 내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를 시킬 때 교수님의 조언을 잊지 않고 적용시키려 노력한다.
우리 부부 사이도 분명 한정된 몇 단어로 늘 비슷한 대화가 오고 가겠지만, 그 한정된 단어 속에 "사랑해"가 빈도수 높은 단어로 들어가길 바란다. 알랭드 보통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우리가 불만 목록을 노출할 수 있는 사람, 인생의 불의와 결함에 대해 누적된 모든 분노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단 한 명을 만난 축복받은 여자이다. 나의 온니원인 그에게 물론 세상의 모든 분노와 불평을 주로 터뜨리곤 하지만, 그에게 나는 "사랑해"란 말도 원 없이 퍼부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다.
마흔이 되고, 그 이상으로 나이가 듦에도 나는 그에게 하루에도 수시로 사랑을 퍼부으며, 또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이고 싶다. 내일은 또 그를 어떤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갈지 벌써 두근두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