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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Apr 06. 2021

마흔 맞이 인간관계 정리법

-그림책에서 얻은 지혜, 나만의 색깔 찾기-

아이들이 어릴 적에 네덜란드 출신의 그림작가, 레오 리오니의 <A color of his own>란 그림책을 참 좋아했다.


어린 시절 동물을 좋아했던 레오의 그림책에는 주로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그림책에서는 카멜레온이 주인공이다. 주변 환경에 따라 자신의 색깔이 따라서 변하는 것을 자각한 카멜레온은 어느 날 '왜 나는 나만의 색깔이 없는 걸까'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모든 동물들은 자신의 고유한 색깔이 있는 것 같은데 자신만 매번 상황에 따라 색이 변하니 고심할 법한 질문이다. 어렵게 찾은 방법은 늘 푸르러 보이는 초록 잎사귀 위에만 있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초록잎은 계절이 변해감에 따라 노란색으로, 붉은색으로 그리고 때로는 검은색으로 변하고 만다.





아이들의 그림책에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던져진다.


Won't we  ever have a color of our own?"


20대를 거쳐 30대 후반을 지나오면서도 나는 카멜레온과 같은 질문을 늘 품고 살았던 것 같다.


"왜 나는 나만의 색깔이 없을까?"


나는 분명 이런 사람이야라고 규정짓고 싶은데 어떤 환경에 처하는지에 따라, 그리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시시각각 그 색이 달라지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익숙한 친구들 앞에서는 소심하고 조용한 존재였던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느닷없이 앞서서 스피치 역할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집에서는 책임감에 쩌든 맏이의 모습을 근근이 하고 있었는데, 남자 친구들을 만나면 부모님께 마냥 귀여움만 받고 자란 응석받이처럼 행동하는 모습이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도대체 넌 누구냐?" 란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나만의 색깔이 정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흔을 코앞에 둔 현재까지도 난 내 색깔을 딱히 규정짓지 못하는 변화무쌍한 카멜레온인 듯했다. 누구의 앞이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내가 튀어나오니  온전한 내 모습을 스스로도, 그리고 타인에게도 이해받기 어려웠다.


현재 시점에서 레오의 그림책을 다시 펼쳐본 것은 도무지 결론이 어떠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서다.

부러 도서관까지 가서 그림책을 다시 빌려서 결론을 읽어봤다. 마흔을 앞두고 정체성에 고민을 하고 있던 내가 애써 찾은 방법이 그림책 찾기라니. 성경에도 하나님의 비밀을  어린아이들에게 드러내 보인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리 유치하다고만 치부할 수 없다고 자위했다.



오랜만에 꺼내든 그림책에서 던져준 결론은 또 완전히 새로웠다. 전에 내가 읽고 기억하고 있는 그 책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자신만의 색깔을 갖지 못해 고심하는 카멜레온에게 또 다른 카멜레온이 찾아온다.

그 친구 카멜레온은 그보다 더 현명하고, 나이가 든 카멜레온이다. 그 카멜레온은 자신의 색깔을 갖고 싶어 하는 친구에게 제안을 한다.


"Why don't we stay together?"


"앞으론 나와 함께 있자. 그러면 우리 둘은 늘 같은 색깔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한다.




아, 그렇구나. 그렇지.


상황에 따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변함없이 늘 꼿꼿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은 어쩌면 사회성이나 눈치가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거나 완전히 이기적인 사람일 때만 가능하다.  상황과 사람에 따라 유연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사회화를 거친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기에 그 사람에 맞춰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누구를 만나느냐는 내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카멜레온과 그 친구 카멜레온의 색이 같은 색으로 바뀌는 것만큼 내 정체성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따라서 바꾸고 싶은, 닮고 싶은 이들과 만나고 싶다.


그동안 어쩔 수 없이 만나서 영향을 주고받았던 이들을 떠올려보면 죽기보다 따라 하고 싶지 않은 유형의 사람들도 참 많았다. 특히나 엄마란 직위를 부여받으면서 아이 친구들 엄마와의 만남에서 난 유독 피로감과 어려움을 느끼곤 했다. 그 모임을 가지 않으면 나만 핫 새로운 정보의 근접에서 멀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고, 우리 아이만 피해를 볼까 봐 전전긍긍했다. 막상 그 모임 속에는 시기와 질시, 공허한 비교감으로 인한 낭패감만 가득했을 뿐이데 말이다.


마흔을 앞두고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나의 카멜레온 친구를 정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상황에 따라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내 모습을 달리 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랑하고 싶은 이들을 만나면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난 어느새 그들에게, 그들은 나에게 물들게 될 것이다. 나와 같은 색으로 물든 그들을 마주 보며 진짜 내가 누구인지 점차 알아가게 될 것이다. 것이 오롯이 딱 한 명뿐이라도 그것으로 서로의 정체성은 더욱 선명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제는 나도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나도 되지 않을까. 서른아홉 해를 살면서 충분히 만나기 싫은 이들과도 얼기설기 엮여 살아다.


과감한 인간관계 정리가 필요한 때이다. 흔을 바로 앞둔 이 시점이 딱 시의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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