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이마에 주름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는 게 두려웠다. 처음엔 잔주름으로 느껴졌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잔주름의 깊이가 점점 깊어지며 내 이마에 도장을 찍듯 기필코 세월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이마부터 보기 시작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잔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 이마를 뽐내는 이를 만나면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매끈한 이마를 가질 수 있는 거지? 보톡스를 맞았나? 필러를 채운 건가?"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도 '보톡스'와 ‘이마 필러’를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해보곤 했다. 물론 시술의 효과는 뚜렷하고 강력한 듯했다. 그러나 선뜻 용기가 서지 않았다.
신이 나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나는 '늙지 않게 해 주세요'를 첫 번째 소원으로 말할 것이다. 돈과 명예를 제일로 소원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것들을 소유한들 이 늙어가는 것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방도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나만 이 안티 에이징을 간절히 원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날마다 여자들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화장품과 액세서리, 옷들은 결국 모두 다 안티 에이징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건네며 세일즈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온갖 미디어를 통해 홍수처럼 쏟아지는 광고들은 우리를 현혹한다. "당신은 다시 젊어질 수 있다." 혹은 "당신의 젊음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라는 사탕발림 가득한 카피 문구들로 말이다. 이성적으로 안티 에이징이 불가능할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 안에 깊이 내재한 욕망은 역설적으로 그 말을 믿게 만들어버린다.
SNS에는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 박제 인간처럼 늙지 않고 팽팽한 피부와 우아함을 유지하고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많다. 거울 속 내 모습과 SNS 속 그들의 사진을 비교하면 그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것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곤 한다. 이러한 열등감을 그들은 교묘하게 잘 이용한다. 그들의 젊음과 아름다움은 그들이 사용하는 화장품과 뷰티 디바이스, 혹은 다이어트 보조식품을 통해 얻은 것이라고 감쪽같이 우리를 속이는 것이다. 그들이 열정적으로 광고하는 화장품에 우리는 또 유혹된다. "저 화장품을 쓰면 나도 저 사람처럼 젊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산 화장품들은 끝까지 다 쓰지도 못하고 또 새로운 뮤즈가 광고하는 화장품으로 갈아타며 그들처럼 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내가 그토록 나이 듦을 두려워했던 것은 외모의 변화를 거부하고 싶어서였던 것이다.
우리는 외모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나의 가치를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외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은 그 또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것에 하나를 더할 수 있는 분명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지라도 나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요소는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먼저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데 필요한 과제는, 사람들의 시선 이외의 것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함으로써 성장해야 한다.
나 스스로에 대해 스스로 칭찬을 해보자. 외모가 아닌 내가 실제로 통제하는 무언가를 칭찬해보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 집중하는 것, 배려하는 것, 창조적인 것, 너그러운 것.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얼마나 큰 노력을 쏟았는지에 대해 자신의 가치를 매겨보는 것이다.
타인과 대화를 나눌 때도 그러한 점에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하고, 타인을 평가할 때도 외모가 아닌 실제로 행동하고 노력하는 것들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기반을 두는 자존감은 위험하다. 자신이 결점과 불완전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자신을 따스하고 친절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저자 러네이 엥겔른는 여자들의 외모 강박의 심각성에 대해 경고하며 그러한 외모 강박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사람들로 이뤄진 공동체 안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수용의 메시지를 받을 때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울 앞에서 한 발짝 물러설 필요가 있다. 거울 속 내 이마의 주름과 흰머리에 대한 고민은 세상을 마주할 기회를 빼앗아버린다. 옆구리살, 셀룰라이트, 화장에 대해 걱정하느라 경제와 정치, 교육제도에 관여하기 어려워진다. 외모 강박은 이렇게 사회를 바꾸겠다는 목표에서 멀어지게 한다. 머리 스타일이 괜찮은지 걱정하느라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여다볼 여유가 사라진다. 체중이 몇 킬로그램 늘었다고 해서 스스로 가치 없다고 느낀다면 권력의 부조리함에 도전할 용기는 결코 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외모 중심의 이미지들을 차단하고,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닌 단순히 예쁘고 근사해 보이고 싶어 소비하는 외모 위주의 소비도 중단하도록 노력한다. 마흔을 앞두고 있는 지금 , 나는 나의 에너지와 초점이 정말 내 삶의 중요한 것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매일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