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재능이라고?
엄마는 책 한 권을 찾기 위해 쓰레기를 뒤졌다. 손이 더러워지고 추운 겨울바람에도 빠르게 손을 놀렸다. 입에서는 끊임없이 욕이 터져 나왔다.
“썩을 년. 어떻게 저런 애가 내 뱃속에서 나왔는지.”
산더미 같던(사실 쓰레기가 가득 담겨있던 커다란 스무 개 남짓의 비닐봉지들이 있었는데 그만큼 엄마의 심리상태는 작은 일을 크게 보고 있던 상태였다) 쓰레기를 뒤지다 드디어 검은 양장본으로 된 두꺼운 책을 찾아냈다. 그리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장을 빠르게 스르륵 넘겼다. 500페이지중 220페이지가 찍힌 책갈피에 하얀 편지 봉투가 있었다. 책을 덮고 엄마는 책을 한 손으로 꽉 잡고 집에 들어왔다.
“어쩌겠어. 뭘 모르고 그랬는데.”
엄마 얼굴에는 세상에 있는 다른 엄마들처럼 다시 부처님 미소가 피어났다.
나는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엄마 얼굴을 보고는 안심이 들었는데 난데없는 등짝 스매싱을 당하고 보니 살짝 부아가 치밀었다. 뭐 그래도 엄마 일이 잘 해결되었으니 다행이었다. 안 그랬으면 죽을 때까지 이름 대신 ‘썩을 년’으로 불렸을 거다.
사건의 시작은 내 재능 때문이었다. 내 최고의 재능 중 하나가 ‘버리기’다. 오래전 그날 평소 잘 하지 않던 청소를 이례적으로 했다. 나는 빗자루로 방을 쓸어내고 구석구석 잘 펼쳐진 옷들을 접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있던 책장에 눈길을 옮겼다. 이미 읽은 책들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 아깝지만 버리자. 한 번 읽은 책을 또 읽겠어?’
몇 권의 책이 비닐봉지 속 쓰레기 속에 파묻혔다. 그때는 재활용 개념이 없어 무작정 버리는 쓰레기는 한꺼번에 모두 집어넣었다. 문제의 책도 내겐 쓸모없는 책으로 분류되어 과감히 봉지 속에 고꾸라졌다. 청소를 끝내고 뿌듯한 마음으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 책이 없어진 걸 발견하셨다.
하얀 봉투 안에는 15만 원이 들어있었다.
“앞으로 물어보고 버려. 아무거나 막 버리지 말고.”
엄마는 내게 한 마디 던지고 저녁을 준비하셨다. 내게 주어진 버리기 재능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도 그 재능으로 좁아터진 집구석이 조금 여유가 생긴 건 맞다. 친구들 책상에 흔히 있던 소풍과 수학여행 기념품이 우리 집에는 없었다. ‘하면 된다’가 휘갈겨진 액자, 전국 관광지에서 사 온 출처를 알 수 없는 열쇠고리, 음각된 나무 필통, 심지어 작은 동자승 인형까지 친구들 집에는 전시되어 있었다.
내 재능은 현재 트렌드인 미니멀리즘에 딱 맞다. 책꽂이에 책이 넘쳐나기 시작하면 ‘앞으로 읽겠지?’에 속하거나 ‘꽂혀 있으면 책 좀 읽은 티가 나는 책’, ‘안 읽어도 지식인의 냄새가 나는 책’, ‘죽기 전 한 번은 읽겠지’로 분류되는 책은 살아남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은 재활용으로 버린다.
그런데 남편 대학 전공 책을 ‘다시는 보지 않을 책’으로 분류해 과감히 버렸다가 ‘과감히’ 이혼당할 뻔한 적도 있다. 그 이후로는 내 책 이외에는 함부로 건드리지는 않으나 책꽂이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남편 책, ‘죽을 때까지 결코 다시 보지 않을 책’들을 볼 때마다 생체리듬이 바뀐다.
휴대폰에 가끔 불필요한 앱과 넘쳐나는 데이터를 청소하라는 문구가 뜰 때가 있다. 그럴 때 갤러리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과 문서함, 앱을 정리한다. 휴대폰에 여유 공간이 생긴다. 내 마음과 몸도 너무 지저분해서 휴대폰을 정리하듯 정기적인 청소가 필요하다.
머리와 마음을 정리할 때는 글쓰기가 가장 좋은 방법이다.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마음의 방을 하나씩 열어 보고 쓸데없는 생각들을 털어낸다. 쏟아져 나오는 생각을 한 줄로 잘 맞춰서 적당한 단어로 정렬하고 하나씩 필요와 불필요로 구분한다. 아쉬운 듯 남으려 하는 생각과 감정은 다시 한 줄로 줄을 세워 변호할 기회를 준다. 그리고 마음을 잘 어루만져 주고 안녕을 고한다. 오늘도 글을 쓰며 내 마음을 정리 정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