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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디 Feb 18. 2022

미국 주재원 준비 통보

이 시국 미국이요?


 미국? 지금 이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에 미국? 코로나19로 사망자 1위인 미국?


 미국 주재원 발령을 받았다고 주변인에게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1. 축하한다. 아이들 영어 교육은 공짜로 시키겠네.

 2. 이 시국에 미국? 코로나는 괜찮은 건가?

 3. 좋겠다. 부럽다. 나도 가고 싶다.




코로나 19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미국 주재원 발령 소식은 조금 부러움을 사는 소식일 수도 있다. 회사가 미국 보내준다는데 가야지. 근데, 1월 1일 발령이라면서 9월에 알려주는 건 무슨 경우인지...? 내가 너무 회사를 오랫동안 안 다녀서 세상 물정에 어두운지, 나와 두 명의 아이는 ‘중요한’ 남편에게 ‘딸린 식구’이고, 회사가 남편을 미국에 보내는 데 귀찮지만 처리해줘야 할 숙제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미국 주재원은 4년을 기준으로 발령을 내는데, 나에겐 4년을 준비하기엔 3개월이 턱도 없이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주재원 소식을 알려주면서 번복될 수도 있지만, ‘가족은 순리대로’ 따르면 된다는 말을 듣고 나는 몹시 분개했다. 우리 셋은 1인분 취급도 못 받고, ‘번복되면 어쩔 수 없고 뭐~’ 같은 쉬운 말로 우리가 앞으로 만날 4년이 쉽게 왔다 갔다 했다.


첫째 아이가 한국 나이로 8세가 되는 해는 굉장히 중요한 해인데, 학교를 들어가기 전 한글을 떼야하고, 초등학교라는 인생의 거대한 터닝포인트를 마주해야 하는 시기다. 소식을 듣고 그 중요하다고 생각한 시기를 미국에서 나 홀로 감당해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니 조금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주재원의 아내는 독박 육아가 국룰). 둘째는 어차피 돌아와도 미취학이니 사실상 포기 상태고.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내 앞날을 걱정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내가 어떻게 아이를 키울지, 그곳에서 적응을 잘할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내년부터 무슨 일이라도 할 참이었다. 30대 중반의 여성에게 아마도 지금이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벗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4년을 보내고 오면 나는 40을 앞둔 기혼 여성이 된다. 40에는 신입사원은 좀 어렵지 않을까...?라는 답답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남편의 커리어는 앞으로 빛날 것이다. 앞으로 미국에 관해서라면 회사에서 어정쩡하게라도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다. 임원까지는 못돼도, 어쨌든 정년은 채울 것이다. 미국에서 어떻게 지내든지 간에, 회사 내에서 남편은 “미국 갔다 온 사람”이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차치하고, 아이들은 미세먼지 없는 자연환경 속에서 거닐고 뛰놀 수 있을 것이다. 영어도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재원 생활의 특혜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전형적인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미국 주재원 소식으로 나는 남편의 빛나는 커리어와 아이들 양육을 위해 본격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경력단절 여성의 삶을 앞두게 됐다. 4년이다. 지금도 너무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 한국에 4년 만에 돌아와서 한동안 헤맬 것이다. 나는 40을 눈앞에 두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이미 경력단절 여성으로 살고 있는 나에게 4년의 추가 공백은 나를 사회에서 완전히 매장시킬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누구도 내 인생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내 길은 스스로 찾아야지.


아무도 걱정해주지 않는 내 4년의 인생을 걱정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내 앞에 놓인 수많은 과제를 제쳐두고, 지금부터 4년 동안 내가, 내 인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내가 어디에 있든 할 수 있는 것은 글쓰기 하나다. 내 마음과 내 글은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그러면 지금부터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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