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e Jul 16. 2023

여행이란 그런 것,

헬싱키로 가던 밤 비행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 좌석 주변의 자리는 거의 텅텅 비어있었고,

나는 눕코노미 당첨이라며 속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기내용 캐리어에 집어넣은 짐들은 이륙 후 여유롭게 꺼내야지 하고

자리에 앉아 쉬려 하는데

한 여자분이 내 옆자리에 책을 올려놓고 앉으려고 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눕코노미가 아니네 하는 마음으로 멍하니 있다가

양해를 구하고 선반에 올려놓은 캐리어를 꺼내 담요 등을 꺼냈다.


다시 자리에 앉자 그녀가 의자에 위에 올려놓은 여행책 세 권이 보였다.

독일, 영국, 스위스 가이드북이었는데

어찌나 많이 읽었는지 조금은 오래된 흔적이 보이는 책들이었다.


- 영구, 독일, 스위스 핫한 곳들은 다 가시네요?

내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었고

그녀는 웃으면서 너무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 떨린다고 했다.


잠시 후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 어디로 가세요?

- 저는 헬싱키 잠시 있다가 파리로 넘어가려고요

그리고는 잠깐의 스몰토크를 나눈 후 그녀는 나에게 고백이라도 하듯 이런 말을 했다.

- 사실은 제가 이제 막 돌 지난 아이를 두고 여행 가는 거예요. 자꾸 눈에 밟혀서 옆에서 제가 울고 있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그녀는 그런 말을 하면서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어제까지도 콧물 흘리며 열이 나던 아이를 두고 여행 가는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너무 가고 싶은 여행인데 설렘과 미안함이 교차하고 있겠지.


다행히 비행기가 이륙 후 그녀는 비어있는 뒷자리에 앉았고

나는 편안히 누워서 헬싱키까지 갈 수 있었다.

이따금 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목적지 도착.

나는 그녀에게 좋은 여행을 하라고 한 다음 밖을 나갔다.


잠시 후 누군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좀 전에도 인사를 한 우리였는데 그녀는 마음이 심란해서였는지 아는 사람을 또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나는 혹시라도 그녀가 울까 봐 다른 여행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환승 게이트로 나는 도착게이트로 가기 전까지.


그녀는 아이 이야기를 하며 나에게 그랬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서 너무 죄송하다고. 주책맞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원래 여행이란 게 그런 거 아닌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얼마 전 헤어진 연인 이야기, 미안한 부모님 이야기, 얄미운 친구들 흉, 지랄 같은 직장상사에 대한 헌담.

친한 사람에게는 쉽게 꺼내지 못할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거.

어차피 다시는 못 볼 사람이라는 생각에

인금님 귀는 당나귀처럼 속 시원하게 쏟아버린 후 미련 없이 각자의 여행을 하는 거.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의 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