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뒷담화

by 귀여운영웅

임신과 출산을 겪고 육아휴직을 하면서 사회활동 없이 집에서 살림과 육아만 하고 있다. 가뜩이나 친구도 없는데 직장까지 다니고 있지 않으니 사람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남편도 나와 같이 육아휴직을 시작했고 하루 종일 아이와 셋이서 붙어서 지내는데 남편 또한 나와 사정이 비슷하다. 육아휴직 초기에는 둘 다 고립감을 느끼다가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했다.


저녁에 아이를 재워놓고 남편과 함께 즐기는 취미는 '나는 솔로' 라는 방송을 보는 것이다. 솔로인 남녀가 모여서 5박 6일 숙박을 하면서, 서로 알아가고 커플이 되는 과정을 담은 리얼버라이어티 방송이다. 아주 재밌다. 사람을 직접 만나지는 않지만, 방송 속 사람들을 보다 보니 마치 대인관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외로움이 해소되고 묘하게 충족감도 느껴진다.


나는 방송을 보면서 틈만 나면 출연자들이 마치 내 지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그들의 이야기를 남편 앞에서 떠들어 댄다. 특히 출연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그 단편적인 모습으로 한 사람을 멋대로 재단하고 평가하고 깎아내린다. 뒷담화를 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누군가의 뒷담화 대상이 되고, 그걸 듣게 된다면 나는 상처받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내가 남에게 상처를 줄만 한 행동을 버젓이 하고 있다니 모순적이다. 하지만 별다른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분명 그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들인데, 방송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을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하나의 등장인물쯤으로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거나 ‘에이 저 상황에서 저러면 안 되지’ 하면서 훈수짓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뒷담화는 절대로 어딘가로 새어나가지 않을 것이고, 그 사람들은 나를 모르고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사실 나는 남편과 단둘이서만 출연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고작이지, 이런 이야기를 남편 외에 다른 사람들과 나누거나, 절대로 인터넷에 올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에 떠드는 이야기는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있다. 일단 당사자가 볼 수 있고 말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며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문제다.


나 또한 그동안 살아오면서 뒷담화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모이는 곳에는 늘 사람 이야기가 따른다. 사람이 사람 이야기를 안 하면, 이야기 소재에 한계가 있다. 서로 공감하며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줄어든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도 나오듯이 뒷담화는 아주 오래된 인간의 본능이다. 사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나누고 공감을 얻고 싶은 것이다. 의식하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내버려 두면 결국 본능대로 갈 수밖에 없다.


누군가 나를 욕해도 그 말이 내 귀에 들어오지 않고 내 인생에 타격을 주지 않는다면, 뒤에서 이야기가 돌아다녀도 상관없지 않을까 싶다. 단, 내가 절대로 몰라야 하고 눈치를 채서도 안 된다. 알고 나면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한번 떠돌기 시작한 내 이야기는 결국에는 돌고 돌아 내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게 되겠지. 만약 내가, 내 잘못에 의해 비난받았다면 반성하고 고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나에 대해서 함부로 말한 그 집단과 거리를 두고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뒷담화에는 최소한의 규칙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그 뒷담화가 당사자의 귀에는 안 들어가게 해야 한다. 계속 관계를 이어가는 사이에서는 웬만하면 뒷담화를 안 하는 게 좋다. 결국에는 돌고 돌아 그 사람 귀에 다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 뒷담화를 해야 속이 후련하겠다면, 뒷담화를 하기에 가장 안전한 대상은 믿을만한 가족뿐인 것 같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인생 동반자인 가족 앞에서나 온갖 얘기를 다 하지, 밖에 나가면 입조심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인터넷에 함부로 나쁜 글을 올리는 것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도 그리고 나에게 어떻게든 돌아올 화를 막기 위해서도 해서는 안 될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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