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살던 집은 악몽의 단골소재다. 잊을만하면 그 집이 꿈에 나온다. 이사한 지도 벌써 수십 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꿈에 나와서 나를 괴롭힌다. 과거에 예전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이니까 그 가족들도 종종 등장한다. 나는 꿈속에 가족들이 나오는 것이 싫다. 내 꿈에 나오는 가족들에게서 웬만해서는 좋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힘들게 살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이게 내가 가족들에게 느끼는 본심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집은 현관문이 나무로 된 오래된 주택이었다. 손으로 잡아서 돌리는 동그란 문고리가 달린 그 문은 발로 차면 열릴 정도로 허술했고, 문고리가 헛돌아서 제대로 잠기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문고리를 고칠 생각을 안 하고 그러고 살았을까. 사실 문고리도 문고리지만 집이 오래되다 보니 나무가 마모되어 문이 제대로 안 닫히는 문제도 있었다. 심지어 비가 오고 습한 날에는 문이 전체적으로 뒤틀리기까지 했다. 문고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불안해서 못 살겠으니 보조로 안전장치라도 설치하자고 의견을 내니 모친이 그러자고 했다. 생활용품점에 가서 안전장치를 사 와서 나무문에 못을 박아서 설치했다. 기껏 해봐야 약해빠진 나무문에 못으로 박은게 다라서 악력을 가하면 쉽게 뜯길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만 해도 상황이 훨씬 나아졌다. 그 뒤로 잠깐이나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최근에 꾼 꿈에 과거의 저 집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예전 가족들이 등장하지 않고 남편이 나왔다. 그 집에서 남편과 신혼살림을 차렸다. 남편과 내가 밖에서 어떤 일에 휘말려서 안전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고, 불안에 떨며 현관문에 안전장치를 여러 개 설치하기 시작했다. 문고리를 돌려보니 역시나 헛돌기 시작한다. 어릴 때 겪었던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미칠 것 같은 순간에 잠에서 깼다. 그런 집에서 신혼살림을 차리다니 생각할수록 끔찍하다. 지금은 어른이 되었고, 결혼도 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쾌적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왜 저런 꿈을 꾼 걸까.
과거를 돌이켜보면 좋은 기억은 별로 없다. 사는 게 늘 힘들었던 것 같다. 과거는 잊고 현재에 집중하며 미래를 바라보고 싶은데, 그게 왜 이렇게도 어려운지 모르겠다. 잊을 만하면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라 현재를 잠식한다. 사소한 일상이나 익숙한 상황 속에서도 예전의 일들이 불쑥 떠올라 감정을 건드리고, 때로는 과거의 일화들이 꿈의 소재로 쓰이며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지나간 과거가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데는, 결국 감정이 가장 큰 문제다. 사건은 끝났어도 불쾌한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상상하며 불안해지는 이유도 그 감정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겪어본 일이기에, 다시 떠올리고 상상하는 일이 더 쉬워지는 것 같다.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종결된 과거의 사건들로 인해 언제까지 감정적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또 언제까지 그 고통이 현재를 갉아먹게 내버려 둬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기억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담아두거나 재생시키는 일이라면, 추억은 거기에 감정을 더하는 일이라고 했다. 어쩌면 지금은 그 기억에 어떤 감정을 덧붙일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지나간 과거는 나쁜 기억으로만 남겨두어 현재를 방해하게 해서는 안 되며, 어떻게든 추억으로 만들어서 삶의 긍정적인 방향으로 순환시켜야 한다.
그래도 차마 과거를 미화할 수 없다면, 최소한 관점이라도 바꿔야 한다. ‘지나간 과거는 현생과 무관한 전생이고, 그저 하나의 평행우주를 잠시 체험하고 와서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이 정도 내면의 재구성 정도는 할 수 있어야 과거에 휘둘리지 않고 현재에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말은 쉽다마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어쨌든 현재에 충실하고 싶고 앞만 보고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