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시로서의 미술을 마주하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아직 시작도 안 했다면

by 싹둑

작년 12월, 겨울방학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나의 입시미술에 대한 고민은 시작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입시미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한다면 사진을 찍어 사진대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지, 내가 입시미술을 시작할 줄 나조차도 몰랐는데 대체 누가 알았겠는가. 애초에 나는 인물을 그린다 해도 전신까지 못 가 연필을 내려놓고 마는 류의 인간이란 말이다. 그림 그리기를 조금 좋아하는 정도의.


엄마는 미대 출신이다. 가끔 가다 내게 입시 미술을 할 생각이 없냐고 흘러가는 말로 묻곤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기겁을 하며 입시미술이 어렵고 힘들고 입시에 맞춰진 형태라서 싫다는 식의 말로 거절하곤 했다.


그런데 내 세상이 뒤집혔다. 어떠한 계기로 갑자기 내 목표는 미대 진학이 된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가장 최근에 친 모의고사 성적표를 들고 엄마와 함께 근처 미술학원 두 군데에 상담을 갔다.


첫 번째 학원은 원장님이 상담을 진행하셨다. 자신감이 넘치셨고 열정적이셨으며 자부심도 대단하셨다. 엄마는 여기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다음 학원 상담도 바로 연달아 잡혀있었는데 엄마는 조금 늦어도 괜찮다며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뒤로 하고 원장님과 대화를 예정보다 길게 했다.


이어 두 번째 학원으로 달렸다. 엄마는 뛸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민폐 끼치는 행위를 싫어하고 시간 약속을 안 지키는 건 민폐같이 느껴졌다. 이 학원에서는 젊은 여자 선생님께서 상담을 진행하셨는데, 첫 번째 학원에 비해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그래서 상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내용도 잘 없지만 갈 때 학원 관련 굿즈를 주셨던 건 기억난다.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엄마는 이미 첫 번째 학원에 마음이 빼앗겼고 나는 그 길로 입시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걱정과 긴장이 날 힘들게 했다. 앞으로 짧으면 1년 반, 길면 2년. 좋으나 싫으나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며칠 후에 바로 학원에 갔다. 수강생으로서 학원의 문턱을 처음 넘었을 때, 모든 게 너무나 커 보였고 긴장으로 심장이 막 뛰었다. 낯선 사람, 낯선 장소, 낯선 풍경. 입장하자마자 흑연 가루와 종이와 색연필과 물감 냄새가 뒤섞인 채 나를 훅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조차 몇 초만에 잊어버렸다.


아,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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