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 없는 자유...과연 행복할까?

우리는 억압을 버렸지만 그 자리엔 혼란만 남았다.

by 정설

규칙이 사라진 자리

돌이켜보면, 참 희한한 규칙들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두발 제한이 엄격했다. 남학생은 스포츠머리, 여학생은 귀밑 몇 ㎝ 같은 식으로 길이가 정해져 있었다. 교문 앞에선 늘 머리카락 단속이 이루어졌고, 교실로 교사와 선도부가 들이닥쳐 길이를 체크하기도 했다. 규정보다 긴 학생은 머리 한 가운데를 바리캉으로 밀어버리는 ‘고속도로’ 를 당하기도 했다.

군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계급에 따라 담배를 끄는 방식조차 달랐다. 상병부터는 손으로 털어서 끌 수 있었지만, 이등병과 일병은 발로 밟아 꺼야 했다. 사실상 규칙보다는 폭력과 권력, 억압이 뒤섞인 관행이었다. 대학교 연극동아리에서도 선후배 관계가 지나치게 엄격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선배를 ‘형’이라고 부르게 했고, ‘빵빠레’라는 명목으로 기합을 줄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일제강점기·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의 잔재였다.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이것이 폭력임을 자각했고, 21세기에 들어와 조금씩 변화를 시작했다. 물론 아직 흔적은 남아 있지만, 많은 학교가 두발 자유화를 도입했고, 군대 계급 문화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연극동아리 또한 점차 수평적 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다.


나 또한 이런 변화를 진심으로 반겼다. 하지만 그 와중에 놓치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나는 그동안 ‘규칙’을 곧 ‘억압’의 산물로만 인식했고, 규칙이 덜할수록 진정한 자유가 보장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규칙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자유가 아니라 혼란이었다.


규칙 없는 자유는 혼란이 된다

우린 억압을 버렸지만, 질서까지 함께 버린 건 아닐까?

학교에서 학생을 통제하려 하면 인권침해로 여겨지기도 한다. 예컨대, 수업 중 스마트폰을 걷는 조치가 “개인의 권리를 빼앗는다”는 식으로 해석된다. 물론 아무도 규칙을 완전히 없애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건 아니다. 다만 규칙의 순기능과 개인의 권리 사이에서 모두가 혼란스러워 보인다.

공공장소에선 아이들이 떠들어도 부모가 방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얼마 전 영화관에 갔을 때, 오른편에 앉은 한 가족이 떠올랐다. 아이는 엄마 품에 있다가도 앞좌석의 아빠에게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 본인들도 신경 쓰이는 눈치였지만,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규칙이 억압이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어차피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며 포기한 것일까? 혹은 아이의 욕구를 제한하는 행위가 폭력이라 여긴 걸까?


규칙은 성장이다

사실, 규칙은 필수적이다. 규칙과 질서가 있어야 비로소 개인과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다.

둘 이상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암묵적 규칙이 생겨난다. 누가 정하지 않아도, 약속 시간을 지키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질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야 관계가 발전한다.

관계를 맺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다이어트를 하기로 결심했다면, 먹는 양을 줄이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통제’가 따라야 한다. 그 통제가 반복되다 보면 자신만의 루틴, 즉 질서가 생기고, 점차 성과도 낼 수 있다. 규칙 없이 원하는 바를 이룬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질서가 생기면 안정감이 만들어지고, 결국 자유로 이어진다. 질서가 없다면 아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등만 깊어진다. 언젠가 한 신입 교사가 학교에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로 학생들에게 싫은 소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초반엔 ‘착한 선생님’이라며 환영받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실의 질서가 무너지고 갈등이 방치되었다. 결국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했고, 학교 전체 분위기도 불안정해졌다. 규칙 없는 자유는 방종이고, 그것은 결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자유로 가는 길, 질서가 우선이다

피아노를 배울 때도 처음엔 음악의 기초 질서를 익혀야 한다. 음정·박자·악보라는 틀이 있어야, 나중에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다. 아무런 지식 없이 “네가 원하는 대로 치라”고 하면, 그것은 자유로움이 아니라 단순히 방종일 뿐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선이 명확해야 아이는 마음껏 뛰놀면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규칙이나 질서가 없다면, 즐거움을 누리는 대신 불안과 방황을 겪게 된다.

실제로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 질서를 지킨다. 한 번은 유치원 아이들과 산책을 갔다가 근처 절에 들른 적이 있었다. “이곳에선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 시끄러워진다면 나가야 한다”는 간단한 규칙을 제시했더니, 아이들은 30분 동안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3~7세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었지만, 절을 나와서도 자신들이 ‘규칙을 지켜냈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물론 한두 번에 안 되는 아이도 있지만, 반복하다 보면 빠르게 배운다. 아이들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해본 것일 뿐이다.


당신의 가정엔 질서가 있는가?

당신의 가정에는 분명한 질서가 있는가?

아이들에게 꼭 지켜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질서 안에는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철학이 담겨 있는가?


우리는 더 이상 규칙 = 폭력이라는 낡은 공식에 머물러선 안 된다.

잘못된 권위주의는 버리되,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를 함께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때야말로 아이들도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어른들 역시 안정된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러면 실제로 가정에서 어떻게 규칙을 세워야 할까? 아이들과는 어떻게 협의하고 적용해야 할까?”

이런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음 에세이에서는 바로 그 가정 내 규칙 정하기와 실천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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