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부모가 흔들리지 않을 때, 아이는 달라진다.

일관성의 중요성과 구체적 방법

by 정설

대안학교를 막 시작하던 무렵, 학생들과 도봉산을 오른 적이 있다. 산 입구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출발하려는데,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어디까지 갈 건가요?”

나는 “정확히 모르겠어. 누가 힘들어할 수도 있고, 시간이 늦어질 수도 있으니, 올라가 보면서 판단하자”고 답했다.

산행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힘들다, 숨이 찬다, 어디가 아픈 것 같다”는 얘기가 터져 나왔다.

학생들은 틈만 나면 “지금 몇 시인지, 언제 내려가는지”를 묻고, 관심은 온통 ‘언제 하산하냐’에 쏠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학생들을 모아 선언했다.

“무조건 정상까지 갈 거야. 해가 저물어도 갈 거고, 힘들어도 포기 없이 오르자!”

아이들은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밀어붙였다.

속으로는 걱정도 됐다. “너무 강압적인가? 해 지면 어떡하지? 아이들이 날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뒤로는 “힘들다”는 소리가 사라졌고, “언제 내려가느냐”는 질문도 뚝 그쳤다.

아이들은 서로 대화하며 웃었고, 투덜대던 분위기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결국 우리는 무사히 도봉산 정상에 올랐다.


처음 “상황 봐서 힘들면 내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을 때, 사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여지’를 준 것이었다.

산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은, “힘들면 중간에 포기 가능”이라면 조금만 몸이 불편해도 더 힘들다고 느낀다. 알게 모르게 핑계거리를 만든다.

하지만 '무조건 간다' 는 선언은 학생들의 머리 속에 여지가 사라진다. 산행과 내 옆 사람에게 집중을 하게된다. 자연스레 산행의 즐거움이 생겨난다.


어떤 규칙이냐 보다 일관성이 중요하다

이 원리는 가정 내 규칙을 세울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본다. 규칙이 무엇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규칙의 여지없는 일관성이다.

규칙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면 사실상 규칙이 아닌 것이 된다.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어차피 안 지켜도 괜찮을 거야”라는 여지가 생기고, 그 규칙은 어느새 무력화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양치질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면, 당연히 안 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생활습관과 질서를 지키는 일은 기본적인 인간의 편의 욕구와는 거리가 있다. 즉,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힘든 경험이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오히려 힘든 과정을 극복했을 때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진다. 힘듦이 자존감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안 해도 된다’는 여지 속에 무력감만 커지면 오히려 자존감이 떨어진다.

자존감이란 자기 효능감, 자기 조절 능력과 깊이 연관된다.

예컨대 하루 1시간씩 영어 공부를 하기로 스스로 정하고, 실제로 해냈다면 “나는 계획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 효능감이 쌓인다. 반면 “오늘은 귀찮으니 안 해, 내일은 기분이 안 좋으니 쉬자” 같은 핑계가 계속되면 자기 조절 능력이 약해지고, 자존감도 낮아진다.


사람은 편한 쪽, 달콤한 쪽을 택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이를 조절하지 못하면 계획만 세우고 실천은 못 하는 상황에 빠진다. 결국 핑계를 찾고, 책임을 회피한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규칙을 지키도록 하려면, 여지없는 일관성이 정말 중요하다고 본다.


일관성이 곧 신뢰이다

일관성은 부모와 아이 사이의 신뢰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부모가 한 말을 지켜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아이와 주말에 놀러가기로 했으면 되도록 무조건 지켜야 한다. 불가피한 사정이 생겼다면 상황을 솔직히 설명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맞다.

반면 “안 된다”고 말했다면, 정말로 안 되게 해야 한다.

말로만 “안 돼”라고 하고 실질적으로 허용해버리면, 아이는 “말뿐이구나”라며 규칙을 무시하게 된다.


한 번은 공원 바닥분수 공간에서, 아이가 물에 흥분해 거칠게 뛰어놀고 있었다. 바닥이 미끄러워 위험해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주변에 피해를 주고 있었다. 어머니가 “하지 마”라고 몇 번 말했지만, 아이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뛰어 놀았다. 어머니도 멀리서 말만 몇번 할 뿐 아이가 말을 듣지 않자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일관성 없는 제재는 아이가 전혀 행동을 바꿀 이유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부모가 “하지 말라”라고 말만 반복해도, 아이는 “어차피 큰 문제가 없을 테니 계속해도 되겠지”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이런 의문이 들수 있겠다. 엄마가 여러차례 하지말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말을 듣지 않은 건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관성을 유지한다 말인가? 경험상 다음 세단계를 거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1. 아이를 불러 눈을 보고 단호하면서 진지하게 이야기 한다.

뛰어놀고 있는 아이에게 멀리서 "하지마"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게감이 약하게 느껴진다. 이보다는 아이를 불러 얼굴을 마주봐야한다. 그리고 단호하면서 진지하게 이야기 해야 한다. “이렇게 거칠게 뛰면 다른 사람에게 물이 튀거나 부딪힐 수 있으니, 위험하고 폐가 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실 이 단계에서 대부분 해결이 된다. 마주보고 진지한 말은 그 자체로 무게가 실리게 되어 아이가 지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2. 그래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경고를 준다.

그럼에도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한 번 더불러 말을 했는데 어겼다며 경고를 줘야한다. 그리고 또 이럴 경우 이 공간에 있는 것은 다른이에게 계속 피해를 주는 것이니 집에 갈거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3. 또 그런다면? 말한대로 집에 가면 된다.

말을 했는데도 계속 똑같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귀가한다. 부모가 “말한 대로 행동”하면, 아이는 ‘어, 이건 진짜구나’ 하고 느낀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것이다. 절대 큰 목소리로 화를 내지 않아야 한다. 그건 부모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일이다. 감정적이지 않고, 단호하게 이 3단계만 거쳐도 효과가 크다.


지금이 가장 빠르고, 쉽다

유치원·초등학교 시절이면 규칙이 빨리 정착되고, 어릴수록 흡수가 빠르다. 그렇다고 이미 놓쳤다고,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가장 빠른 시점이다. 지금부터라도 일관된 규칙을 적용하는 편이 훨씬 낫다.


특히 중·고등학생쯤 되면, 아이가 이미 자유로운 습관에 젖어 있고, 본인의 생각 또한 뚜렷한 편이다. 그만큼 에너지가 많이 들며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많은 대화가 필요하며 동기부여를 잘 시켜줘야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하진 않다. 모든 아이는 성장을 원하기 때문이다.


어떤 규칙을 세워야할까?

지금까지 규칙에서 일관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였다. 어떤 규칙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일관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칙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영역을 나누면 규칙을 세우는 단계가 보이며 “이건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과 “이건 스스로 결정할 자유”를 구분하기 쉬워진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세가지 정도로 구분한다.

1. 생활습관 영역

가장 기본적인 영역이다. 어릴 때는 특히 생활습관을 잘 잡아주는 것이 좋다. 규칙을 지키기 쉽기도 하고, 좋은 습관이 자리 잡아야 더 높은 단계가 나아갈 수 있다. 생활습관은 밥 먹기 전 손 씻기, 밥 먹은 뒤 양치, 집에 돌아오면 신발 정리, 자기 장난감 정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

2. 관계 영역

누군가에게 불편함이나 피해를 주느냐 마느냐로 판단한다. 가장 엄중하게 다뤄야할 영역이기도 하다. 때로는 따끔하게 혼을 낼 필요도 있다.

3. 취향 영역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개인의 취향은 철저히 존중해야 한다. 이를 규칙으로 적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예를 들어 아이의 용돈을 어떻게 쓸지는 취향의 영역에 가깝다. 부모가 보기엔 쓸데없는 것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존중해줘야 한다. 이건 단지 관점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결국 “여지 없는 규칙”이 있어야, 아이가 스스로 조절하는 힘을 기르고 자존감도 키운다.

하지만 모든 걸 규칙으로 억누르려고만 하면, 부모와 아이 사이에 불필요한 충돌이 생긴다. 취향의 영역에선 존중과 자율성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취향과 존중을 어떻게 구분하고, 무엇까지 허용해야 할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규칙과 존중은 서로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갈 때 아이가 행복하고, 부모와의 신뢰도 돈독해질 거라 믿는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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