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규정하지 마라

모든 학생은 성장을 원한다.

by 정설

A라는 학생이 있다. 예전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과도하게 신경쓰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교사나 부모, 친구들과도 거의 대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고, 친구들과 마음껏 웃으며 대화를 나눈다.


B라는 학생은 한때 무기력 그 자체였다.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도 어머니가 직접 옷을 입혀줘야 할 정도로, 하루 대부분을 누워 보내곤 했다. 과제도 거의 하지 않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베이스를 치며 리듬을 타고, 요리를 즐기고, 과제도 스스로 해오는 모습이다.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모여 큰 변화를 이루었다.


C라는 학생은 분노 조절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 때문에 친구들과 자주 다투고, 감정 기복이 심해 학교 생활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에너지가 넘치며,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0년 넘게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만난 모든 학생들은 본래 성장을 원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모습이 어떻든, 그들 모두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물론 그 변화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피나는 노력과,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학교에는 일반 학교에서 전학 온 신입생들이 종종 있다. 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은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왔지만,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어떤 사연이든, 모든 학생은 성장을 원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 성장에 발목을 잡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을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무기력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무기력한 사람이라고, 분노를 터뜨린다고 해서 분노 조절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공부를 잘 못한다고 해서 자신을 멍청한 사람이라고 규정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자기 규정은 그 자체로 무기력함을, 분노의 폭발을, 학습의 한계를 불러온다. 자신을 한계짓는 그 틀 안에 머물러버리면, 더 이상 변화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자주 말한다.

“너를 규정하지 마라.”

무기력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너 자신이 무기력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고 해서 너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분노를 터뜨린다고 해서 분노 조절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교사로서 나는 자주 고민한다. 이 학생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때로는 그 고민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를 버티게 하는 생각을 붙잡아 본다. 모든 학생은 본래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설사 자신조차 깨닫지 못하더라도, 그 마음은 그 안에 반드시 숨어 있다. 그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고, 다시 한 번 어떻게든 해답을 찾으려 노력한다.


여담으로 때로는 변화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내 자신에게도 조언을 건넨다.

“나를 규정하지 마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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