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공부는 왜 실패하는가?

공부의 강요와 방치의 한계성과 그 대안

by 정설

지난번 에세이에서 강요된 공부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부를 강요하면 열심히 하든 그렇지 않든 결국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했는데, 이 부분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려고 한다.

내가 학생들을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 공부는 본질적으로 굉장히 능동적인 활동이다. 수동적인 공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를 좀 더 살펴보자.


공부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과 비효율성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고 공부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하기 싫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채 책을 펼치면, 결국 ‘내가 이걸 얼마나 하기 싫어하는지’만 반복해서 확인하는 과정이 된다.

예를 들어 외워야하는 영어단어가 있다. 한두번 반복해서는 영어단어가 외워질리가 없다. 이는 정서적 타격으로 이어진다. 열심히 했건만 남는 것은 없는 느낌이 든다. 이에 따른 스트레스는 역시 공부는 싫다 라는 감정이 강화된다. 마음이 거부하는데 영어단어는 외워지기 더 만무하다.

억지 공부는 효율성면에서도 떨어진다. 억지 공부의 목적은 탐구가 아니라 오로지 빠른 완료에만 포커스를 맞추게된다. 이는 공부에 대한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하고,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그거 아는가?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공부를 잘하는 편이긴 하지만, 시간 대비 공부의 효율은 꼴찌 수준이다. 이는 억지 공부와도 연관성이 있다.

예를 들어 수학 공부를 한다고 치자. 교과서를 보면 원에 대한 개념부터 시작해 원의 성질, 둘레와 넓이, 그리고 이를 증명하는 과정이 차례로 나온다. 공부를 강요받은 학생은 이 흐름을 이해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춘다. 원의 개념은 대충 넘기고, 둘레와 넓이 공식만 외워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공부한다. 처음엔 이 방식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점점 쌓인다. 원주율이 무엇인지, 왜 그런 공식이 나오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문제만 풀어가다 보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개념이 연결되지 않으면서 벽에 부딪히게 된다. 결국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 공부는 오래 가지 못한다.


공부는 놀이인가? 일인가?

나는 ‘놀이와 일은 수단과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놀이는 수단과 목적이 일치하지만, 일은 수단과 목적이 다르다. 그렇다면 공부는 놀이일까, 일일까? 본질적으로 공부는 놀이다. 인간의 호기심과 성장 욕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학교에서의 공부는 일처럼 변했다. 목표는 대학이고, 공부는 그 수단이 되었다. 문제는 이 목표조차 학생들의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모와 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에 내면화된 것일 뿐, 스스로 간절히 원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과 수단이 불일치한 상태에서 아이들이 공부를 좋아할 수 있을까? 당연히 어렵다.


‘배움’과 ‘익힘’의 균형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학습’이다. ‘배울 학(學), 익힐 습(習)’. 이 단어 안에 공부의 본질이 담겨 있다. 공부는 배우는 것에서 시작해 익히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교육에서는 익힘이 결정적으로 부족하다.

학생들은 배우는 데 익숙하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선생님이 설명하는 것을 듣는다. 하지만 듣기만 해서는 진짜 공부가 아니다. ‘익힘’은 배우는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문제는 익히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강의를 들을 때는 어렵지 않다. 좋은 강사는 학생들이 집중만 해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도록 만든다. 하지만 강의를 듣고 나서 ‘이 내용을 설명해봐’라고 하면 학생들은 당황한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익힘은 스스로 생각하고, 반복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문제를 풀어보고, 스스로 개념을 정리해보고, 그것을 설명해보면서 익혀야 한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이 과정을 건너뛰려 한다. 실패를 마주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익힘’이 어려운 이유는 지속적인 실패 때문이다. 강의를 들을 때는 성공과 실패가 없다. 하지만 직접 문제를 풀고, 개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는 계속해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여기서 학생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1. 날개짓을 멈춘다. 반복하는 과정이 귀찮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2. 실패를 두려워한다. 계속되는 실수가 자신에게 공부 재능이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실패 속에서 배움이 있다. 한 번 날개짓을 해보고 부족한 점을 고민하고, 다시 도전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강의로 돌아간다. 강의를 듣고 이해하는 것은 쉽지만, 익히는 과정이 없으면 금방 잊어버린다.


강요된 공부는 익힘을 방해한다

공부를 강요받는 학생들은 배움도 힘들지만 익힘은 더 어렵다. 본인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다. 익힘은 본인의 적극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익힘의 과정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부에 대한 강요는 효과가 없고, 오히려 공부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렇다고 공부를 완전히 방치하는 것이 답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는 공부가 해야만 하는 일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방치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공부를 시작할까? 가능성은 있지만 확률적으로 낮다. 하지만 강요보다는 낫다. 최소한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공부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배움과 익힘의 경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쌓게 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배우고 직접 타보면서 넘어지는 과정

요리를 배우고, 실패하면서 조금씩 익혀가는 경험

관계에서 실수를 하고, 배워가면서 익히는 과정

이런 경험들이 결국 공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모든 배움은 같은 프로세스이기 때문이다. 배우고, 실패하고, 그 실패를 바탕으로 스스로 피드백을 하고, 다시 시도하고, 다시 실패하고, 다시 피드백하고..결국 자신의 원하는 것을 성취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쌓이게 되면 학습에 대한 프로세스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실패에 대한 인식전환이다. 아이들이 학습하는 과정에서 실수와 실패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 부모의 실패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수다.


대화의 중요성

마지막으로, 부모가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화에서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정답을 주는 것’이다. 이는 잔소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대신 아이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고 나서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라든지, 뉴스에서 본 사회적 이슈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것이다. 때로는 부모가 고민하는 문제를 아이에게 털어놓는 것도 좋다. “나는 이런 고민이 있는데,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라는 질문을 던지면 아이는 적극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사고의 과정이 공부에서도 큰 힘이 된다.


강요된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고 익히는 공부. 그것이 진짜 공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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