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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13. 2023

글쓰기는 가장 신성한 정신노동

나에게 글쓰기가 정신노동이라면 책 읽기는 휴식에 가깝다. 

나는 노트북에 글을 쓰다가 막히거나 써지지 않으면 머리를 쥐어뜯는 대신, 옆에 놓인 책을 펼쳐 들고 읽는다. 그러다가 다시 책을 내려놓고 글을 쓴다. 독서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면, 다시 써 나갈 에너지가 생긴다.


취재가 없거나 원고 쓸 일이 없어도, 평일에는 어떻게든 책상 앞에 앉으려 한다. 엉덩이가 붙어있어야 뭐라도 쓰긴 쓰니깐. 나중에 그 글들이 휴지통에 들어가더라도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마도 버려지는 글이 훨씬 많을 것이다. 습작한다는 마음으로 미련 없이 버린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글을 쓰는 게 싫어진다. 글을 쓰는데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지만, 정작 남는 것이 없을 때는 허무하다. 그래서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하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상업적인 글, 즉 청탁을 받아서 글을 써왔다. 원고료가 있는 글, 즉 돈이 들어오는 글을 썼다. 직업 자체가 자유기고가이니, 청탁 없이 자발적으로 글을 쓰지 못 했다. 아니 쓸 생각조차 안 했다. 나에게 글쓰기는 곧 생계였으니까. 나는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한마디로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써왔다. 

하지만 청탁 원고에 의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일감이 끊기면 자동으로 돈벌이를 못 한다. 어쩌면 나도 하루살이처럼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때그때 일감이 주어지면 취재하고 글 쓰고 원고 보내고 나중에 원고료가 들어와서 먹고 사는 체 바퀴 같은 삶.  그렇다보니 시, 수필, 소설 등 소위 문학에는 접근을 못 했다. 스스로가 문학을 쓸 역량이 안 된다고도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정말 ‘작가’로 살아가려면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글을 써야 한다고 다짐하였다.


이제 나는 처음 글을 쓴다는 각오로 책상 앞에 앉는다. 원고 청탁 없이도 그저 내가 좋아서, 내가 원해서 자발적으로 글을 쓰는 생활을 하기로 한 것이다. 어쩌면 그 출발점이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는 것일지 모르겠다.


직장에 출퇴근하지 않는 대신, 내 업무는 노트북을 켜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말이 쉽지, 사실 노트북에서 100% 글을 쓰지 않는다. 딴 짓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글을 조금 쓰다가도 인터넷 서핑하면서 뉴스 보고 정보 찾고, 유튜브 틀어놓고, 컴퓨터가 지겨우면 주방에 기웃기웃 먹을 거 찾고, 과자와 커피를 들고 책상에 다시 앉고. 머리가 좀 무거우면 노트북 끄고 침대에 누워버리고. 어느 새 저녁이 가까워지고 저녁 6시면 나도 퇴근.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신랑이 퇴근하는 시간 기다리고. 신랑과 간단히 저녁 먹고 산책하고 TV 보고 나면 

어느 새 자정이 오고 잠자리에 든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일감이 줄고 수입이 줄었고, 무엇보다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어디 회사에 다녀볼까도 생각했지만 곧 포기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글을 쓰자. 대신 좋은 글을 쓰자. 글이라도 다 같은 글이 아니다. 작가로서 나만의 정체성이 있는 글,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글, 소위 '옥고'를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자서전 대필이나 내 책을 쓸 때는, 써야 할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럴 때 나는 도시락 가방과 노트북 가방을 챙겨 들고 도서관으로 간다. 노트북 자리에 앉아 종일 원고를 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집에서는 집중이 안 돼 많은 분량을 쓰기가 힘들다. 그래서 무조건 도서관을 가고 어떨 때는 카페도 간다. 이 외에는 주로 집에서 쓴다. 


도서관에 가서 종일 글을 쓰고 집에 갈 때면, 나는 학창 시절 독서실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입시 공부를 하는 것만큼 책에 들어갈 글을 쓰는 일은 고되고 힘든 일이다. 그래도 기꺼이 즐기려고 한다. 도서관에서 종일 글을 쓸 때면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기분도 느끼니, 그리 나쁘지 않다. 단, 학창시절에는 공부한다고 돈이 들어오지 않지만, 직업상 이 일은 그나마 돈벌이를 하니, 힘든 만큼 보람도 있다. 


내가 25년간 글을 써오면서 느낀 점은, ‘글쓰기는 가장 신성한 정신노동’이라는 것이다. 

잘 썼느니, 못 썼느니, 어떤 결과나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그저 글을 쓰는 과정을 즐기면 된다. 그 가운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스스로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내 인생은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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