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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21. 2023

허주희의 人 인터뷰 14. 정지선 셰프

“나는 여성 셰프 아닌, 중식 전문 셰프입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 앞에 커다란 무쇠 손잡이를 한 손으로 휘휘 흔드는 모습. 힘 센 남자가 하기에도 버거운, 중식 요리를 여자가 한다면 어떨까? 중식 요리계에 여성 셰프가 떴다. 서울 동교동 중식당 ‘중화복춘 골드’의 총괄 세프로 있는 정지선 셰프를 만났다.



언제부턴가 ‘쿡방(요리방송)’이 방송계에 대세로 떠오르며 ‘요리사’로 불리던 ‘셰프’도 인기 직종으로 부상하였다. 각종 쿡방에 등장해 연예인 못 지 않는 인기를 누리는 ‘스타 셰프’도 많이 생겼다. 그런데 방송에 등장하는 셰프는 대부분 남성들이다. 원래 ‘요리’는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는데, 직업인으로 남성 셰프가 많은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런 가운데 눈에 띄는 여성 셰프, 그것도 중식을 전문으로 하는 이가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20여 년 경력의 중식 전문 요리사, 정지선 씨가 그 주인공이다. 중식계의 대부라 불리는 이연복 셰프는 “요리 분야에서도 중식은 여성들이 버티기 힘들어 여성 셰프가 매우 드문데, 정지선 셰프는 그 선을 넘어설 정도로 보기 드문 실력파”라고 말했다.



중식 셰프라고 해서 체격이 클 것이라 예상했는데, 막상 만나본 정지선 셰프는 보통 체격에, 외적인 면모는 지극히 여성스럽다. 그는 요리에 입문하던 시절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고등학생 때 취업을 고민하다가 우연히 뷔페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요리를 배우는 게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그 때 요리학원 다니면서 한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졸업 후 정식으로 그 뷔페식당에 취업했는데, 막상 주방에서 일하니 생각보다 너무 힘들더라고요.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다 사회생활은 다 힘들지 않겠느냐, 내가 가장 흥미 있어 하는 요리를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혜전대 호텔조리학과에 진학했어요.”

한식, 양식, 일식도 있는데, 남자들도 힘들다는 중식 요리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혜전대 야간반에 다니면서 우연히 중식당에 취업하였어요. 그 때 불을 다스리는 중식 요리의 화려한 세계에 눈을 떴어요. 내 진로는 이제부터 중식이다 생각했지요. 이후 현지에서 중식 요리를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고 졸업식 끝나고 바로 중국행 비행기를 탔죠. 맨땅에 헤딩하듯 언어와 싸우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중국 요리를 맛보고 배우고 경험하면서 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3년간의 중국 유학생활은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중식 셰프이자, 오너 세프인 그는 20년이 넘은 시간 동안 중식에 몰두하였다. 

하루하루 전쟁터와도 같은 주방에서 불과 씨름하고 여성 셰프라는 편견을 극복하며 수없이 자기 자신과 싸워온 세월이었다. 주방에는 활활 타는 불, 뜨거운 기름, 펄펄 끓는 물, 날카로운 칼 등 곳곳이 위험 요소로 포위돼 있다. 조금만 한 눈 팔거나 실수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그래서 어느 곳 보다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한마디로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예전에 한 호텔 중식당에서 일할 때 그는 실수로 면 뽑는 기계에 손가락 한 개가 말려들어가며 큰 부상을 입었다. 하마터면 절단 될 뻔한 위급 상황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아픔보다, 사고가 알려져 혹여 후배들이 요리를 두려워할까봐 그게 더 신경 쓰였다. 당시 수십 바늘을 꼬맨 손가락을 내보이며 “지금은 자국이 많이 희미해졌다.”고 털털하게 웃는다.


“특히 요리 분야에서 ‘나는 여자야’라는 느낌을 가지면 일을 못합니다. 어떤 일이든 남녀의 차이가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만 있을 뿐이죠. 물론 체력에서는 남자가 우세하지만 대개 섬세함과 감각적인 면은 여성이 유리하죠. 이는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 누가 강한 의지와 열정, 끈기로 최선을 다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그동안 방송에 간간히 출연하기도 한 그는 “방송 출연 후, 학생들이 이것저것 질문하는데 중식 요리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져 요리사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차이나는 요리’라는 요리책과 ‘딤섬의 여왕’이라는 요리책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요리책 제목 그대로 그는 '딤섬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딤섬 전문 요리책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맛있는 중식 요리를 즐기는 비법 한 가지를 들려주었다.


“중식은 소스 배합에 따라 맛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요. 저는 원재료의 맛은 그대로 살리면서 여기에 맞는 소스를 배합해 나만의 소스를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소스는 한 숟갈 넣을 때와 반 숟갈 넣을 때 맛이 어떻게 다른지, 배합을 해가면서 내 입맛에 맞는 최적의 소스를 만들면 더 맛있는 중식 요리를 경험할 것입니다.”


“앞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여성 셰프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정지선 셰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자신의 길로 만들며 묵묵히 나아가는 그의 뚝심과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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