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자고 그러셨던 거예요?
대체 그 대를 잇는다는 게 뭐가 중요한데?
불과 30-40년 전의 일인데도 진짜~ 까마득한 옛날 같은 일들도 참 많다.
'세상에 그랬었나?'싶을 정도로 어떤 생각이나 상황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왜냐하면 너무 현재와는 달라서 현실감이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대를 잇기 위해서 아들을 낳아야 된다'라는 그 사고가 너무 낯설다.
엄마가 출산을 하던 시기엔 그랬었던 것 같다.
'남아 선호 사상' - 오! 이 말도 진짜 못 듣게 된 지 오래되었는데- 이런 단어가 존재했었다..ㅎㅎ
남아선호 사상이 얼마나 강했으면 '잘 키운 딸 하나 열아들 안 부럽다'라는 표어가 있었을 정도였다.
아빠는 9남매의 장남이었다.
장남이 대를 잇기 위해서 아들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은 그 집안의 어떤 존폐를 의미하는 것처럼 엄중하고 신성한 가치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다.
으리으리한 종갓집도 아니고 대단히 명망이 있어서 동네에서 떠들썩하게 유명한 대궐 집도 아닌, 아니 뭐 집안의 부를 떠나서 집안의 대를 잇는다는 게 중요한 건가?
조상을 기억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진짜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을까?
실제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못한, 그 관념적인 사고가 지금은 참 믿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당시엔 그런 시대였다.
맏며느리는 아들을 낳아야 하는 시대.
아들을 얻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들
엄마는 아무 비빌 언덕 없는 가난한 시댁과 섬유회사에서 경비를 서는 쥐꼬리 월급의 남편을 모시며 아이를 넷이나 낳았다.
요즘 같으면 가진 것도 쥐뿔 없는데 쉽게 할 수 없는 의사결정이다.
엄마는 맏며느리로서 아들을 반드시 낳아야 하는 미션이 있었는데, 둘째까지 내리 딸을 낳고 말았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둘째를 낳고 나서 출산을 멈출 계획이었다고 한다.
둘째 언니가 아들이었거나 엄마의 원래 계획대로 '딸이라도 괜찮아'에서 그쳤더라면 지금의 나와 내 동생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딸을 둘 낳고 할아버지의 압박에 못 이겨 셋째를 임신했을 때 공교롭게도 엄마의 손아래 동서도 동시에 임신을 했다.
엄마가 먼저 두 달 먼저 출산을 했는데, 그게 나였다.
한동안 할아버지는 나를 보기도 싫다고 올 때마다 찬장 천장에 방치해두었다고 했다.
손아래 동서는 한방에 아들을 생산했다!
집안의 분위기는 갑자기 화사해지며 모든 이목이 보송보송 귀여운 고추를 달고 태어나신 왕자님께 몰렸다고 했다.
엄마가 딸 셋을 낳는 동안 시댁으로부터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환대를 손아래 동서가 받는 기분이란 참 묘하게도 불편하고 우울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일순간 엄마가 아빠와 만든 사랑의 결실인 세 딸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우리는 축복받고 사랑받았어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늘 '딸 셋'이라는 이유로 어려서는 많이 위축되었었다.
엄마는 또다시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엄마는 필살의 의지로 다시 임신을 했고 드디어 아들을 생산했다.
'셋이나 넷이나 그게 그거지'라고 생각했을까?
동생이 다행히 아들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가족은 일곱 식구가 되었을까?
나와 두 살 터울이 있는 동생은 천만다행으로 아들이었고 엄마는 동생 덕분에
'대를 이을 귀한 아들을 생산한 대견한 맏며느리'의 위치를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대를 이어야 했던 맏며느리의 운명은 우리가 모두 독립해서 나가기 전까지..
40년가량이나 엄마에게 몹시도 무거운 삶의 무게가 되었다.
엄마가 요즘 며느리였다면 절대로 넷이나 낳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 하나를 온전히 성인으로 길러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투자가 필요한가.
돈 투자, 시간 투자, 감정 투자에 이르기까지... 아이는 송아지처럼 태어나고 얼마 안 있다 벌떡 일어나서 스스로 끼니를 때울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한다.
사람만큼이나 자립적이지 못한 영유아 시기를 보내는 동물은 없다.
아들을 얻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엄마의 선택은 꽤나 큰 희생이 따르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도 애 넷은 흔치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어딜 가더라도 우리 가족은 주목받았다. 대식구니까..^^
결혼하고 3년만에 큰언니를 낳았다고 했다. 밤톨 같은 아이를 안은 20대의 예쁜 엄마와 아빠가 계신다.
작은언니를 낳고 몇 달 안 지났을 때의 사진. 이때까지만 해도 엄마의 가족 계획은 완성형이었다...
드디어 내가 태어났다. 엄마는 2년 터울로 아이를 낳았는데 나와 작은 언니만 3년 터울이다.
나를 가질 때 그 만큼 고심했다는 뜻인데.. 또 딸이라 얼마나 실망했을까.
드디어 네 남매. 여섯 식구가 완성되었다.
아들을 낳음으로써 엄마의 출산은 드디어 끝이 났다.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나는 시골 할머니들로부터 '터를 잘 팔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내 존재에 대한 가치가 아니라 동생을 삼신할미로부터 잘 점지받도록 내가 미리? 뭘 잘했다는 얘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