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사 온 과일

참 예쁘고 윤기있는 사과도 많더라고요.

by 펜슬 스커트

'사과 같은 내 얼굴 이쁘기도 하지요~

눈도 반짝 코도 반짝 입도 반짝반짝~'


어려서 자주 부르던 노래였는데, 사과는 반짝반짝하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인 것 같다.



언제나 배고픈 네 남매

2020년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일상에서 가장 큰 변화는 식생활이었다.

외식이 쉽지 않았고,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집에서 요리할 일이 많이 생겼다.

아이가 하나인데도 온전하게 아이 먹을 것을 챙겨주는 것이 엄마 역할이 서툰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밥을 하다 문득 엄마를 떠올려보았다.

엄마가 '돌아서면 설거지, 돌아서면 설거지..'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하나도 이렇게 먹여 키우기 힘든데 왕성하게 성장하는 넷이나 되는 아이를 대체 어떻게 먹여 키웠을까.


우리의 일상적인 밥상. 엄마는 갈치와 고등어를 엄청 자주 구워주셨다. 아마 그땐 그게 젤 싼 생선이었던가보다.


엄마가 사 온 사과는 비매품이었다.


엄마는 항상 뭐든 박스 때기로 사 왔다.

장에 다녀오시는 날이면 과일도 한 상자씩, 수산시장에 다녀오실 땐 엄마만한 크기의

얼음블록을 머리에 이고 돌아오셨다. 그 과일 박스만큼이나 엄청 컸던 얼음블록 안에는 오징어나 동태 같은 생선들이 얼려져 있었다.

아마도 수산시장에서 도매처럼 그런 얼음블록들을 저렴하게 파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그 크고 비린내 나는, 점점 녹으면서 더더욱 운반하기 난감해지는 그것을 버스 타고 한 시간가량 떨어진 거리에 있는 수산 시장으로부터 이고 지고 오는 것이었다.


냉장고 아랫칸 신선실에 보관된 엄마가 사 오신 과일들은 늘 항상 상처가 있었다.

사과는 절반이 물러져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토마토도 괴상하게 생긴 녀석들이었다.


엄마는 솜씨 좋게 사과의 물러진 부분들을 잘 도려내고 깎아주셨다.


신혼 때 마트를 갔는데 사과며 배, 각종 과일들이 알록달록 반짝반짝 윤기 있는 모습으로 하나씩 정성스레 노란 스티로폼 포장지에 싸여있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가 집에 데리고 왔던 '상이군인'같은 치열한 전투를 치른듯한 녀석들은 마트에 보이지 않았다.

재래시장에 갔을 때조차 그런 녀석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어려서 항상 집에 있던 과일들이 온전히 성한 모습을 갖춘 것이 너무 드물었기 때문에 어딘가에는 그렇게 무르고 상한 과일도 판매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과일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어렸을 때 사 왔던 반쯤 썩은 사과들 있잖아. 그거 어디서 샀던 거야? 요새 안 보이던데?"


"아, 그거 원래 파는 거 아니야. 못 파는 걸로 따로 놔두는 거 있는지 살펴보고 그런 것만 골라서 사 오는 거였어. 애들한테 과일은 먹여야겠고, 그때 성한 과일 먹일 정도로 돈이 어디 있었니~ 그런 거라도 사다가 먹이는 거지."


엄마가 사 오시는 과일들은 원래는 버려지는 비매품이었던 것이다.


"어머나~ 그럼 세상에 시장에서 팔지도 않는 귀한 과일을 먹고 컸네, 내가!"

하고 대답하고 우리는 함께 웃었다.


"못 생긴 거 먹으면 못난 애 낳을까 봐 걱정 많이 했지~ 그래서 상한 부분 좀 덜 한 걸로 골라오느라고 식겁했다. ('엄청 고생했다'는 경상도 사투리이다.)"




'엄마! 엄마가 사 온 비매품 사과로 비타민 보충 많이 했어요.

그리고 엄마 사랑 덕분에 동글동글 윤기 있는 사과 같은 아이도 낳았고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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