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가내수공업 공장이었다.
엄마의 다양한 부업
애를 넷이나 키우면서도 엄마는 한시도 쉬지 않았던 것 같다.
항상 집에는 부업거리로 집안이 어수선했다.
엄마가 했던 부업들 중 기억나는 걸 정리해보자.
* 김수순 여사의 부업 리스트
1. 인형 눈 붙이기
말 그대로 인형의 눈을 붙이는 알바였다. 집에 가면 언제나 칼칼한 본드 냄새가 나던 기억이 있다.
본드도 환각제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언니들이 본드 냄새 너무 맡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주의를 주던 기억이 난다. 아 근데 요즘엔 참 본드 쓸 일이 없구나. 세상 많이 변했다.
2. 인형 솜 넣기
머리, 팔, 다리 각각 재단된 원단이 따로 오고 거기에 넣을 솜이 이따만치 큰 비닐에 넣어서 따로 온다.
집에 가면 집구석구석에 뭉쳐진 솜들이 굴러다녔고 가뜩이나 좁은 집은 솜으로 가득 찼다.
엄마는 인형의 머리 부분이며 팔다리에 솜을 빵빵하게 넣고 바느질로 쓱싹 입구를 막았다.
합체하면 귀여워질 인형 한 개의 부품들이 완성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귀여운데.. 엄마를 도와줄 생각은 그때는 못했다. 엄마 미안.
3. 우유배달
엄마가 굉장히 오랫동안 그래도 제대로 했던 알바였다.
똑똑히 기억나는 것은 초등학교 입학을 했을 때도 엄마가 이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엄마가 집에 도착한 다음에야 등교를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집에 나보다 더 어린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매일매일 아슬아슬하게 땀냄새, 우유 비린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매일매일 학교에 지각할까봐 가슴 졸이던 생각이 난다.
나름 대단한 스트레스 였었다.
집에 어느 날 침대와 피아노가 배달되어 왔는데, 엄마가 우유 배달해서 산 침대라고 했다.
엄마가 부업으로 장만한 피아노 앞에 옹기종기 모인 4남매.
크리스마스쯤이었나 보다. 트리 장식이 온 집안 곳곳에 있다.
뒤처리가 두려워서 이런 퍼포먼스를 잘 안 하는 나와 다르게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크리스마스 때 집안을 꾸미게 하셨다. 두 분 에너지가 대단했던 것 같다.
4. 선거운동과 다단계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는 선거운동도 하러 나갔던 것 같다.
노태우 대통령 선거쯤으로 기억하는데, 민정당 선거운동원으로 동원되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청군, 백군 응원하는 기분이었는데, 엄마가 열심히 하는 쪽이 우리팀인줄 알았고 나도 맘으로 응원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무던히도 열심히 살았던 그 시절 엄마들
우리 엄마뿐만 아니라 많은 아줌마들이 산업 역군이 되어 가내 수공업을 했다.
친구 집에 갔더니 접시가 수북이 쌓여있는 것이다.
이 아줌마는 접시에 무늬 스티커를 붙이는 일을 했다.
물을 잘 묻혀서 정말 얇은 스티커를 떨어지지 않게 접시에 붙여서 문양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것도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때 우리 동네에서는 일하러 나가는 엄마는 거의 없었다.
모두들 경단녀 또는 경력을 가져보지도 못한 여성들이었고 이런 단순 노동으로 가계 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엄마의 사회활동은 부업에만 그치지 않았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녹색 어머니회"로 이어졌다.
나는 내가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기록들을 살펴보니 엄마하고는 게임이 안된다.
내가 졌다.
'엄마, 대체 무슨 에너지로 그렇게 온갖 일을 다 했던 거예요?'
하긴 울 엄마는 애들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먹고살기 바빠서 그랬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엄마도 엄마의 삶이 필요했고 엄마 나름대로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단한 일상의 시간들을 이겨나갔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