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헤어진 날 엄마도 울고 쌤도 울었다.
엄마가 반려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
형제가 넷이나 되었지만 우리는 모두 반려동물을 좋아했다.
어디선가 데려와서 중간에 키웠던 강아지나 고양이가 몇 마리 있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처음에는 정말 강하게 반대를 했었는데, 엄마가 진심 동물이 싫어서라기 보다는 아픈 상처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다.
원래는 엄마도 동물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똑똑하고 명민했던 하얀색 진돗개, 쌤
쌤은 부자 외할아버지가 분양받아 보내주신 강아지라고 했다.
엄마에게 강아지의 족보까지 함께 주셨다고 하니 검증된 혈통이었을 것이다.
진돗개는 충성심이 남다른 견공으로 유명하다.
300km나 떨어진 길을 7개월 동안 헤맨 끝에 스스로 주인을 찾아온 '백구'의 이야기는 몹시 유명하다.
진도에 동상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까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정말 존경스러운 존재인 것 같다.
백구의 이야기는 동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우리집에도 할머니의 백구 못지않게 똑똑하고 명민했던 진돗개가 있었다.
이름은 "쌤"이었다.
쌤은 집에서 대장처럼 보이는 아빠를 몹시 잘 따랐고 아빠가 조련하는대로 여러 가지 신기한 재주 - 말하자면, '손'하면 손 주고, '앉아'하면 앉고.. 그런 것들이었는데 동물이 말귀를 알아듣는다는 게 신기했다 - 를 부리는 재간둥이 었다.
우리 집 개였지만 몸집이 큰 쌤이 나는 무서웠고 실제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집 개든, 들 개든 개들이 입마개나 목줄 없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했었다.
유치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쌤을 만나면 무서워서 피해다뎠던 기억이 있다.
여하튼, 쌤에게 우리 사 남매는 그저 그냥 서열이 낮아서 무시해도 되는 작은 인간들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쌤을 곱게 목욕시키던 날
엄마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잊혀졌던 옛 기억을 생각해낼 때 정말 기쁘다. 내 안의 보석 같은 시간들을 되찾은 것 같은 느낌이랄지...
우리 집은 양옥 2층이었다. 그리고 1층의 넓은 마당을 함께 사용할 수 있었는데, 샘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앞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유치원 다녀올 때 쌤이 자기집에 있는 지 조심스럽게 살핀 다음 후다닥 올라가곤 했었다.
그날은 휴일이었던 것 같은데, 엄마가 1층 마당에서 큰 대야를 놓고 쌤을 정성스럽게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2층 계단 절반쯤 내려온 자리에서 쌤을 목욕시키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내가 있다.
진도의 '백구'처럼 엄마는 그날 쌤을 시장에 내다 팔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이 넷에 쌤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부담되었고 돈이 필요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할아버지 집에 다시 돌려주고 돈을 좀 받아오면 안되었던 것일까.
엄마도 울고 쌤도 울었다.
엄마는 시장에서 선생님을 팔았다고 했다.
족보까지 갖춘 개여서 더 좋은 가격을 받으려고 보신탕집 말고 개를 전문적으로 사육하는 사람에게 팔았다고 했다.
선생님을 시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때 엄마도 울고 선생님도 울었다고 했다.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동물들도 모두 상황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희로애락의 감정도 느낀다.
쌤도 엄마와의 마지막 이별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엄마는 그 이별이 너무 아프고 슬퍼서 다시는 개나 고양이 등 정을 줄만한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울면서 생각했다고 했다.
반려견을 키우고 있는 현재의 내 입장에서는 엄마의 선택이 원망스럽고 너무 아프다.
그렇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키우던 식구 같은 개를 팔 생각을 했을까..
쌤을 팔고 엄마에게 남았던 슬픈 트라우마도 이해해보려고 한다.
동물이었지만 여하튼 식구였는데 살아있는 생명을 온전하게 거두지 못했다는 자책은 이후 엄마와 아빠에게 오래도록 남았던 것 같다.
우리 남매들 성화에 못 이겨 강아지나 고양이를 여러 차례 키웠지만, 엄마나 아빠는 별로 정을 주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에게 반려 동물은 마음속 쌤이 아니었을까..
쌤을 그렇게 열심히 훈련시키고 데리고 다녔던 아빠는 그 후 어떠한 강아지도 훈련시키지 않았다.
내가 만약 가난으로 인하여 키우던 반려동물을 누군가에게 팔거나 줬던 기억이 있다면, 나도 엄마와 아빠 같은 마음으로 내내 살았을 것 같다.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없었던 가난, 소중한 것의 희생 위에서 자란 우리
나는 요즘처럼 재테크 지상주의인 시기에도 여전히 돈 모으고 부자가 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고 서툴다.
내 어린 시절 너무 가난했지만 행복했기 때문에 크게 결핍을 못 느끼면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우리 집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그런 것들은 전혀 모르고 천진하게만 자랐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 내가 직접 물건도 사보고 가계를 운영해보니, '우리 집에 참 부족한 게 많았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가난했지만 우리를 최선을 다해서 키워주신 부모님이 계셨기에 그저 철없었던 기억으로만 남은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행복의 기준이 돈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가족이 살아온 인생이 증명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극단적인 가난은 피하고 싶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가난은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우리 가족의 삶 어느 한 지점에서 식구처럼 아끼던 반려동물이 희생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소중한 생명의 희생 위에서 우리 남매는 어려움을 버티며 자랐을 것이다.
우리의 가난, 그 어느 한 고비를 넘기는 데 도움을 주었던 쌤을 위해서 오늘 기도한다.
엄마는 가끔 쌤 얘기를 한다.
엄마 가슴에도 쌤을 팔아야 했던 선택이 황망하고 가슴이 아파서일 것이다.
소중한 것의 희생 위에서 이렇게 무탈한 성인으로 자라났으니, 그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도록 언제나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른으로, 가끔은 여전히 어리석고 세상 물정에 밝진 못해도 소중한 것을 잃지 않을 정도로는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가는 어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