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많으면 일어나는 일
결혼을 하고 친정에 갔던 어느 명절날 문득 깨달았다.
엄마가 내게 주신 가장 큰 인생의 선물이 있다는 것을.,
그 선물은 돈으로도 절대 살 수 없고, 엄마 아빠가 아니면 누구도 내게 줄 수 없는 선물이다.
그러니까 엄청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나의 언니들과 동생, 형제들이다.
어려서는 언제나 "내 것"보다는 나누고 공유해야 했던 것들이 지긋지긋했었는데,
나이 들고 보니 이만한 인생의 평생 친구도 없다.
형제들이 모두 무탈하게 자라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끝까지 잘 키워내신 엄마와 아빠가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누구 하나 너무 잘났거나 너무 떨어지지 않게 그저 평균의 인간들로 키워주신 부모님이 계셨기에 우리는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서로의 처지를 질투하거나 한심해하지 않고 그저 각자가 살아가는 모습을 이해하려고 하고 받아들이는 순한 성정의 아이들로 키워주신 덕분에 서로를 비난하거나 질투해서 멀어지는 일도 없다.
평생의 친구를 셋이나 만들어주신 엄마와 아빠.
우리를 키우는 동안 고단했던 부모님의 수고로움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 형제들이 느끼는 감정적인 풍요로움이 있다.
형제가 많으면 일어나는 일들 1 - 결혼 전까지
1) 나만의 물건이 없다.
자라면서 '형제가 많다'라는 건 '많은 걸 공유해야 한다', 또는 '내 것이 없다'라는 말과 동의어가 된다.
나는 쇼핑을 굉장히 좋아하고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 강한 편이다.
지금의 이런 나의 습성은 어려서의 결핍으로부터 오는 것 같다.
나는 국민학교를 다니는 내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새 가방, 새 옷, 새 신발을 거의 가져보지 못했다.
주로 작은언니로부터 물려받거나 어쩌다 엄마가 새 것을 사 오실 때는 동생이 물려받을 것을 염두에 둔 것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새 옷은 주로 검은색이거나 남색이었고 남자애가 입어도 무난한 스타일의 밋밋한 옷이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는 성인이 되어 나타나는 여러 가지 정신적인 문제들의 원인을 유년시절에서 찾고 있는데 내 경우에도 맞는 것 같다.
2) 나만의 공간이 없다.
어려서 소원은 '내 방'을 가져보는 것이었다.
작은언니가 결혼해서 집을 떠나기 전까지 나의 룸메이트는 오래도록 작은언니였다.
동거인의 존재는 공간에서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니에게 좋은 동거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언니가 큰 맘먹고 부산 깡통시장에서 사 온 소니 미니 카세트를 화장실에 들고 들어갔다가 떨어뜨려 정말 못쓰게 만들었던 것, 언니 옷을 몰래 입고 나갔다가 들켜서 혼났던 일..
언니들 덕분에 나는 언젠가부터 '옷 좀 입는 애'가 되었지만, 이미 나보다 앞선 인생을 살고 있던 언니들에게 여동생의 존재는 몹시 성가셨을 것이다.
3) 식탐이 강해진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는 먹는 것조차 경쟁이다.
같이 먹으면 또 그게 으찌나 맛있고 많이 먹게 되는지..
언니들, 동생보다 많이 먹으려고 경쟁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래도 늘 부족했지만..
4) 독립심이 약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결혼을 통해서 나만의 가정을 이루기 전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대학교 졸업반 시기, 또 서울에서 혼자 독립해서 살았던 시기였다.
언니들이 모두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나자, 집안에 텅 비었다.
물론 나는 원하는 대로 내방을 갖게 되었지만, 언니들이 사회생활을 하며 장만해온 여러 가지 패션 아이템들을 더 이상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누리던 아주 많은 것들 - 패션, 지식, 최신 정보, 연예인 얘기.. 등등에 이르기까지 - 은 언니들로부터 온 것이었다. 나는 언니들보다 어렸음에도 언니들과 같은 성숙한 여성들의 눈높이를 영위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들이 모두 떠나자 누구 하나 내가 입고 나가는 옷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지도 않았고, 논노 같은 잡지를 사오지도 않았고, 대학교 졸업하면 무슨 일이 생기는 지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때부터 정말 흉내내기가 아닌 진정한 나만의 홀로서기가 시작된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나만의 생각과 스타일을 정립하는데 또래보다 많이 더뎠다.
언니들이 갑자기 떠났던 시간이 하필 미래가 불투명한 대학교 졸업반과 겹쳐서 너무 우울하고 불안하고 행복하지 못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형제가 많으면 일어나는 일들 2 - 결혼 후
1) 부모님을 챙기기 수월하다.
내가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더라면 부모님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혼자 고민하고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기념일을 챙기는 것부터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부족한 게 있을 때 홀로 해결해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부모님 또한 지금보다 보살핌을 덜 받으셨을 것이고, 두 분 스스로 챙기고 처리하는 것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형제가 많으면 이런 부분들을 함께 나눌 수가 있다.
누구라도 먼저 부모님의 일에 대해서 상의를 시작하면 아이디어를 내고 역할을 분담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이 왔을 때 당뇨가 있는 엄마는 거의 바깥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
세 자매와 동생은 부모님의 식료품을 십시일반으로 조달했다.
엄마는 수시로 도착하는 택배에 행복했다고 했다.
2) 인생의 고민들을 나눌 수 있다.
나보다 인생을 앞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항상 배울 것이 있다.
인생은 시기별로 넘어야 할 산이 있고 해결해야 할 삶의 보편적인 숙제들이 있다.
나보다 인생을 조금 더 먼저 살았고, 이러한 인생의 숙제들을 먼저 맞닥뜨린 언니들이 있기에 나는 소위 말해 미리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느낌으로 인생의 숙제들을 조금은 더 수월하게 맞이할 수 있다.
특히 육아에서 큰 도움을 많이 받는다.
직장맘인 나의 경우 교육과 관련하여 전업주부들에 비해 정보가 떨어지는데 언니들을 통해서 꽤 많이 이러한 부분들을 메꿔나갈 수 있다.
언니들이 조카를 키우면서 성공적이었던 것이 있었던 반면 후회가 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시기에 하는 크나큰 고민이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라는 것도 언니들은 알고 있다.
나는 좀 더 늦게 태어나 동생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의 명제들에 대한 귀중한 진액을 무료로 취할 수 있다.
큰언니와는 다섯 살, 작은언니와는 세 살 터울이 나는데, 학교를 가고 각자의 사회생활이 생기면서는 이 나이 차이를 극복할 수가 없었다.
친구, 애인 그리고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더 비중이 큰, 모두 각자의 인생을 오롯이 살아내는 시기도 있다.
그러다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에 한 10-20년의 나이 터울이 어느 한 시점으로 수렴되는 중년 이후의 시기를 만나면 삶의 변화들이 느려지면서 우리는 또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의 감정들이 많아졌다.
최근 언니들은 나의 가장 친한, 좋은 친구들이면서 가장 도움이 되는 삶의 스승이 되었다.
3) 즐겁고 행복하다.
관계의 유익함과 효용을 떠나서 가장 좋은 것은 즐겁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형제들과는 언제 만나도 반갑고 무슨 얘기를 해도 불편하지 않다.
우리 형제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나 어려움이 아직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무탈함에 감사하며 평화롭고 화목한 관계의 즐거움과 행복만을 느끼고 싶다.
엄마로부터 받은 가장 큰 인생의 선물
요즘 언니들과 한 달에 한번 정도 '자매의 날'을 가진다.
주말에 함께 모여서 얘기도 하고 쇼핑도 하고 때로는 여행도 가는 말 그대로 자매가 모이는 날인 것이다.
각자 독립을 하고 인생이라는 산의 정상에 오른 뒤 이제 내려가는 길 입구에선, 중년의 우리들.
함께 공유할 것도 많고 공감할 일도 많고 서로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훌쩍 크다 못해 늙고 보니 형제자매가 많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심적인 버팀목이 되는지 깨닫게 된다.
내 일생을 통틀어 엄마에게 감사한 일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언니들과 동생을 낳아준 일이라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나의 형제들은 엄마로부터 받은 가장 크고 값진 인생의 선물이다.
어려서는 나이 한두 살 차이가 참 크다.
어렸을 적에는 그만큼 빠른 달리기로 인생을 달려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한 위아래로 한 십 년쯤 동년배의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인생에서의 달리기 속도가 이제 어느 정도 비슷해진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이 오는 나이 때에 접어들게 되면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다.
삼십 년 전에 인생을 전혀 다른 속도로 달리던 우리 자매들도 이제 나란히 뛰게 되었다.
언니들은 내가 함께 손잡고 끝까지 달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인생의 페이스 메이커이자 친구들이 되었다.
이렇게 자매들이 함께함의 감사함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우리를 키워내신 엄마와 아빠가 계시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이제 곧 팔순을 바라보시는 연세가 되셨다.
요즘 친정에 가면 아빠는 우리를 이렇게 부르신다.
"어이~ 멋진 사람들 왔구나!"라고.
부모님이 가장 험난한 코스의 인생 달리기를 하고 있던 시기에 우리가 있었다.
우리로 인해서 보다 더 어렵고 정복하기 힘든 길로 접어들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함께 달려온 그 험난했던 길을 되돌아보며 숨 돌릴 수 있는 완만한 코스 위에 함께 서 있다.
늘 거기 있어주었던 부모님들, 언니들인데..
나이가 들면서 깨달아가는 그들의 소중함의 깊이에 나는 가끔 소름이 돋는다.
이런 풍요로운 것이 나이 듦이라니! 나이가 든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
거기다 엄마가 내게 준 인생의 선물들과 함께하는 멋진 인생!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자매의 날"을 가진다.
주말에 언니들과 함께 만나서 하루 신나게 노는 날이다.
자매의 날은 중년 이후의 인생의 중요한 날이 되었다.
'엄마! 언니들과 동생 낳아주시고 바르고 예쁘게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