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베트남
올해 3월 호치민 여행을 다녀왔다. 호치민 시내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버스와 자동차 그리고 오토바이가 마구 뒤섞인 도로 위 풍경이었다. 쉴 새 없이 달려드는 오토바이 탓에 짧은 거리의 도로조차 건너기 어려웠고, 이 혼돈의 도로가 너무도 생경해 처음 봤을 때는 휴대폰 카메라부터 손이 갔다.
그런데 내가 더 놀라웠던 건, 위험천만해 보이는 도로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족들이 내가 그들에 대해 갖고 있던 스테레오 타입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어린아이를 다리 사이 혹은 뒤에 앉혀놓고 타는 부모들,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내달리는 여성 등, 이곳에선 남녀노소 누구랄 것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다. 오토바이는 이들에게 마치 자전거만큼 안전하고, 자동차만큼 흔한 교통수단인 것처럼 보였다. 이 때문인지 베트남에는 택시 대신 오토바이를 호출할 수 있는 앱도 존재한다.
호치민 여행 첫날, 나는 도로 위를 빽빽하게 내달리는 오토바이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떠나기 전에 꼭 한 번 타고 싶다고, 아니 타야겠다고.
여행지에서 로컬 체험을 하는 방법은 사실 단순하다. 위에서 내가 한 결심대로 현지인들이 많이 하는 것을 그냥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 그런데 말이 쉽지, 나처럼 도전정신이 한 스푼 정도 가미된 사람이 아니라면, 낯선 세계에서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 더욱이 짧은 여행 기간이라면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도 빠듯해서 현지 문화를 즐길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을 때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그건 대중교통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다. 나의 지난 ‘뚜벅이’ 여행 경험들을 돌이켜볼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만큼 로컬 체험하기 쉬운 방법도 없는 것 같다. 대중교통은 우선 이용객 대부분이 현지인이다. 한국의 지하철이나 버스를 떠올려봐도 대부분의 승객이 한국인 것처럼. 크게 취향을 타거나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면서 손쉽게 현지인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 수 있다. 사실 나는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대중교통을 타고 현지인들 틈에 섞여 찬찬히 둘러보면 그 지역민들 특유의 분위기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이들의 물가와 생활 방식, 문화를 체감할 수 있다. 그리고 가끔씩 뜻하지 않게 선물 같은 풍경을 마주치기도 한다.
호치민에서도 나는 주로 걷거나 대중교통(버스)을 이용했다. 아마도 베트남 자유여행을 하는 많은 한국 관광객들은 가장 편리하고 익숙한 교통수단인 택시를 많이 이용할 것이다. 한국보다 물가도 저렴해서 여러모로 안 탈 이유가 없다. 하지만 택시만 탄다면 이 지역의 ‘실제’ 물가를 체득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호치민의 버스비는 6000동인데 (약 300원), 나는 버스를 타기 전까지 이 곳의 물가가 이렇게까지 저렴한지 미처 몰랐다. 그건 주로 검색을 통해 가게 되는 음식점들이 관광객 물가에 맞춰져 있어서 그럴 것인데, 아무리 음식값이 한국보다 싸다 한들 현지 물가보다는 상당히 높게 책정되어 있다. (물론 택시도 마찬가지다) 물가를 체감하고 나니 나는 더더욱 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교통체증이 심한 호치민에서는 버스가 택시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실제로 더 빠른 느낌이 들기도)
호치민 버스에서는 직원이 버스 요금을 직접 걷으러 다니는 진귀한 광경도 볼 수 있다. 버스를 타보지 않는다면 이런 흔치 않은 장면을 놓칠 수밖에 없다. 수금하는 직원에게 요금을 건네면 직원이 영수증을 주는데, 요금을 먼저 확인하고 싶다면 영수증을 먼저 받고 거기에 쓰여있는 금액을 줘도 된다.
버스 카드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겐 특히 이런 아날로그 방식의 버스는 처음일 것이다. 나도 예전 우리나라 버스의 토큰이나 안내양은 어렴풋하게 들어봤지만, 이런 걸 직접 겪어본 적은 없어 새로웠고, 과거로 시간 여행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여행할 때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는 건 반갑고 즐거운 일인데, 버스는 분명 호치민 여행의 묘미였다.
버스는 지도 앱 (구글맵)에 목적지를 찍으면 어디서 타야 하는지 손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버스가 매 정류장마다 정차하지 않을 수 있어 버스가 오는 걸 발견한다면 운전수가 볼 수 있도록 가급적 손을 흔드는 게 좋다. 버스를 탄 뒤에는 급하게 막 출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어느 정도 균형 감각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뭔가 체계가 잡히지 않은 듯한 이 거친 운행 방식이 처음엔 불편했지만, 타면 탈수록 어느샌가 지역 특유의 색깔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현지화가 된 걸까..)
호치민에서의 셋째 날 밤, 나는 그렇게 고대하던 오토바이를 타게 됐다. 2군 지역(호치민은 숫자로 지역을 구분한다)에 놀러 갈 때 앱을 통해 탔는데, 호치민에서는 버스가 늦은 밤까지 운영하지 않아서 오토바이를 타기 위한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다.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아 밤의 호치민 거리를 가르는 기분은 가히 최고였다. 적절히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쌌고, 호치민의 곳곳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와 차 안에서 창을 통해 바깥을 구경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이래서 오토바이를 타는 건가 싶다)
돌아올 때 오토바이에서 본 정경은 호치민 여행을 통틀어 나의 베스트 씬으로 뽑는다. 저 멀리서 호치민의 랜드마크 빌딩, ‘랜드마크 81’이 눈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여러 개의 빛나는 점들을 온몸에 휘감은 높다란 빌딩. 마치 호치민 시내가 하나의 커다란 갤러리고, 그 건물이 거대한 예술 작품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 날 이후 랜드마크 81은 내 가슴속에 호치민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호치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자 내 최고의 순간.
호치민에서 나는 대중교통인 버스와, 대중교통은 아니지만 베트남에서 가장 ‘대중’적인 교통인 오토바이를 모두 타보았다. 여타 관광지나 음식점들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현지인들을 많이 봤고, 이 곳 특유의 문화를 경험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풍경들을 마주했고, 여행 최고의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다른 여행지들에서도 대중교통과 얽힌 좋은 기억들이 많다. 제주도 버스에서 본 사람들의 따뜻한 웃음, 샌프란시스코 트램에서 맞은 시원한 바람, 뉴욕 지하철에서 봤던 멋진 춤 퍼포먼스 등. 이래서 내가 여행을 가면 꼭 대중교통을 타보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로컬처럼 여행하기. 거창하게 보다는, 그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어쩌면 여행자를 뜻하지 않게 최고의 순간으로 데려다 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