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의 공기가 정돈되고 윤곽이 살아나자, 사장님과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성도 묘한 방향으로 변모했다. 우리는 단순히 시급을 주고받는 고용주와 알바생의 딱딱한 관계가 아니라, 매출이라는 공통의 적을 향해 같은 참호에 뛰어든 전우(戰友)처럼 가까워졌다. 손님의 발길이 뜸해지는 평일 오전 11시, 사장님은 교대를 해주러 나와서 무심한 척 캔커피 하나를 내밀며 담배 한 대를 권하곤 했다. 편의점 뒤편, 거대한 에어컨 실외기가 윙윙거리며 더운 바람을 뿜어내는 좁고 그늘진 골목길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우리는 허공으로 푸른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은밀한 '본사 뒷담화'를 즐겼다.
"본사 놈들, 이번 달에 정산금 또 교묘하게 떼어간 거 봐라. 아주 넥타이 맨 도둑놈들이 따로 없어."
"그러니까요. 저번 점포 넘길 때 보니까 재계약 조건도 아주 자기들 입맛대로 말도 안 되게 부르던데요?"
"너는 대체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 바닥 생리랑 내 속을 그렇게 귀신같이 잘 아냐?"
그렇게 묻는 그의 옆얼굴은 참을 수 없이 외로워 보였다. 30대 후반, 한 가정의 무게를 짊어진 가장.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늪처럼 빠져드는 매출 하락, 본사의 노골적인 실적 압박,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자신만을 쳐다보고 있을 처자식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 그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소위 현대 사회에서 말하는 영혼의 '번아웃(Burnout)'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알바생을 한 명 더 뽑아 가게를 맡겨버리고, 자신은 도망치듯 집으로 숨거나 의미 없이 밖으로 겉돌았던 것이다. 적당히, 입에 풀칠할 정도로만 나오는 정산금으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연명하며, 한때는 꿈이었을 가게에 대한 애정마저 스스로 놓아버린 상태였다(그것은 지금의 나의 상태와 비슷하다).
사실 스물두 살의 나는, 그의 그 무거운 무기력함을 그저 얄팍한 머리로만 이해할 뿐이었다. 속으로는 '사장이 저렇게 게으르고 열정이 없으니까 당연히 매출이 바닥을 기지'라고 쉽게 흉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내가 정확히 그 좁은 골목길의 사장님과 같은 40대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나태가 아니었다. 런닝머신 위를 뛰듯 너무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을 걷다, 결국엔 근육이 파열되어 지쳐 주저앉아버린 자의 절망이었음을. 40대 가장의 좁은 어깨를 자비 없이 짓누르는, 중력보다 더 무거운 삶의 무게가 그를 그렇게 숨죽이게 만들었음을.
하지만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나의 그 맹랑한 오지랖이 다 꺼져가던 그의 마음속 불씨에 산소를 공급했다. 아들뻘 되는 새파랗게 어린 알바생이 매일 아침 자기 가게처럼 쓸고 닦고, 단돈 천 원이라도 매출을 더 올려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도 분명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둔탁한 울림을 느낀 모양이었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 어느 날부터인가 사장님의 아침 출근 시간이 눈에 띄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야, 네가 알바면서 이렇게까지 하는데 사장인 내가 뒤에서 놀고먹으면 그게 사람이겠냐."
그는 머쓱하게 웃으며 팔을 걷어붙이고 수개월 만에 직접 대형 빗자루를 들었다. 방치되었던 창고 정리를 다시 시작했고,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쓰고 나와 머리를 맞댄 채 꼼꼼하게 발주 리스트를 검토했다. 탁하게 죽어 있던 그의 동공에, 잃어버렸던 생기와 초점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는 겨울을 앞두고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나머지 불성실하던 알바 애들, 어제 다 정리했다. 이제부터 그냥 나랑 너랑 둘이서만 이 가게 굴려보자."
그는 자신의 근무 시간을 육체적 한계치까지 대폭 늘리고, 습관처럼 지각하고 핸드폰만 보던 다른 알바생들을 과감히 내보냈다. 나와 사장님, 오직 단둘이서 2교대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정예 시스템'이 구축된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마치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록 밴드처럼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내가 오전 8시에 출근해 텅 빈 진열대에 물건을 꽉꽉 채워놓고 오후 수업을 들으러 학교로 떠나면, 사장님이 바통을 이어받아 오후부터 깊은 야간까지 가게를 든든하게 지키며 본격적으로 매출을 끌어올렸다. 내가 포스기 화면의 날씨 예보를 보며 "사장님, 내일 오후부터 장마처럼 비 온다니까 우산 재고 좀 넉넉히 더 시킬까요?" 하고 제안하면, 그는 신이 난 목소리로 "그래, 비 오는 날엔 전이지! 우산 시킬 때 막걸리랑 두부 물량도 같이 두 배로 땡기자!" 하고 찰떡같이 맞장구를 쳤다. 몸은 매일 파스 냄새가 진동할 만큼 고되었지만, 10평짜리 편의점 안에는 전에 없던 활기와 에너지가 넘실거렸다. 진짜 주인이 가게에 찰싹 붙어 미소를 지으니 떠났던 동네 단골들이 귀신같이 돌아왔고, 매장의 공기가 깨끗해지니 손님들의 지갑이 열리며 객단가가 수직으로 상승했다.
"편의점은, 역시 주인이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해. 내가 그동안 너무 나태하고 어리석었어."
어느 늦은 밤, 정산을 마치고 웃으며 말하는 사장님의 얼굴에서 예전의 그 짙고 우울했던 그늘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그제야 온몸으로 깨달았다. 편의점 일의 진짜 묵직한 재미는 포스기에 찍히는 숫자를 보며 단순히 돈을 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는 이 작은 공간을 나의 정직한 땀과 애정으로 가득 채웠을 때 비로소 밀려오는 그 벅찬 감각에 있다는 것을.
징집을 알리는 우편물이 집으로 날아오기 전까지, 나는 그 작은 아파트 단지 상가의 편의점에서 '알바생의 탈을 쓴 부점장'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짧은 머리를 하고 입대를 며칠 앞두고 마지막 오전 근무를 하던 날, 사장님은 밥이나 든든하게 한 끼 먹자며 나를 근처의 낡은 순댓국집으로 데려갔다. 뚝배기에서 끓어오르는 열기 사이로 맑은 소주 한 잔을 채워주며 그가 덤덤하게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스물두 살짜리 꼬맹이, 네 덕분에 형이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났다. 다치지 말고, 몸 조심히 잘 다녀와라."
그리고 2년이라는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 낡은 군복을 벗고 다시 그 거리를 찾았을 때. 빛바랜 세븐일레븐 간판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투명한 유리창 너머 카운터 안에는 전혀 모르는 낯선 얼굴이 멍하니 서 있었다. 사장님은 이미 그 공간을 떠난 뒤였다. 동네 부동산을 통해 들리는 소문으로는, 매출을 한껏 끌어올린 덕에 권리금을 꽤 두둑하게 챙겨서 가게를 넘긴 뒤, 차를 타고 30분은 가야 하는 다른 큰 동네에서 훨씬 더 넓고 번듯한 브랜드의 편의점을 새로 오픈했다고 했다. 재계약과 본사의 횡포 때문에 지긋지긋하다며 편의점을 저주하던 그가, 결국은 다시 그 익숙한 편의점이라는 전장으로 스스로 뛰어든 것이다.
지금은 연락처도 끊어졌고, 눈을 감으면 그의 얼굴조차 희미한 윤곽으로만 남아있다. 하지만 아주 가끔, 내 가게의 구석진 곳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발견할 때면, 혹은 끝없는 반복 노동이 주는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 셔터를 올리기조차 싫어질 때면, 나는 나의 첫 번째 진짜 고용주였던 그 외롭고 지쳤던 형님의 어깨를 떠올린다. 그리고 퀴퀴한 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씩씩하게 진열대를 닦아내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스물두 살의 치기 어리고 열정 넘쳤던 풋내기 알바생의 내 모습도 함께.
장군에서 이름 없는 병졸로 강등되어 바닥을 기었던 시절. 하지만 견장과 계급장을 모두 떼어내고 맨몸으로 부딪혀본 그 밑바닥의 서늘한 경험이야말로, 20년이라는 아득한 편의점 인생을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주는 가장 단단하고 귀중한 주춧돌이 되었음을, 40대가 된 나는 이제 깊이 이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