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에서의 인간/거인

by 철슴도치

극장판 상영의 영향인지 요즈음 「진격의 거인」이 다시 유행하고 있는 듯합니다. 본 작품의 애청자로서 예전에 인간과 거인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본 바가 있는데 ‘경계’를 핵심 용어로 삼아 글로 정리해봤습니다. 단상(斷想)을 기획했는데 예상보다 글이 길어져 레포트가 되어버렸습니다. 함께 사색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포 있으니 원치 않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누르세요!

================================스포일러 방지선========================================

----------------------------------------------------------------------------------------------------------------------------------------------------------------------------------------------------------------------------------------------------------------------------------------------------------------------------------------------------------------------------------------------------------------------------------------------------------------------------------------------------------------------------------------------------------------------------------------------------------------------------------------------------------------------------------------------------------------------------------------------------------

------------------------------------------------------------------------------------------------------------------------------------------------------------------------------------------------------------------------------------------------------------------------------------------------------------------------------------------------------------------------------------------------------------------------------------------------------------------------------------------------------------------------------------------------------------------------------------------------------------------------------------------------------------------------------------------------------------------------------------------------------------------------------------------------------------------------------------------------------------------------------------------------------------------------------------------------------------------------------------------------------------------------------------------------------------------------------------------------------------------------------------------------------------------------------------------------------------------------------------------------------------------------------------------------------------------------------------------------------------------------------------------------------------------------------------------------------------------------------------------------------------------------------------------------------------------------------------------------------------------------------------------------------------------------------------------------------------------------------------------------------------------------------------------------------------------------------------------------------------------------------------------------------------------------------------------------------------------------------------------------------------------------------------------------------------------------------------------------------------------------------------------------------------------------------------------------------------------------------------------------------------------------------

목차

1. 경계: 인간과 거인의 이항 대립

2. 경계의 헝클어짐: 지성을 지닌 거인의 출현

3. 경계의 붕괴: 거인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인간도 거인이었다!

4. 무(無) 경계: 인간/거인

함께 읽어볼 만한 글

요약

본 글은 '경계'를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용어로 잡고, 「진격의 거인」에서의 인간과 거인, 선과 악의 문제를 풀어간다. 1장에서는 인간과 거인의 차이점들을 나열하되 둘을 가르는 경계가 가치론적 측면, 즉 인간은 '선한 피해자'이고 거인은 '악한 가해자'에 있음을 강조한다. 2장에서는 물리적 크기의 차이만큼이나 심원해보였던 인간과 거인 사이의 경계가 지성을 지닌 거인을 경유하며 헝클어짐을 보인다. 3장에서는 벽 밖 세상의 진실을 마주하며 헝클어진 경계가 처참히 무너짐을 상기한다. 여기서 우리는 작품 속 충격적인 반전, "거인이 인간이었다"와 마주치는데 필자는 이를 뒤집어 "인간도 거인이었다"라는 점에 주목한다. 필자는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의 인터뷰를 참고해 거인의 본질이 의사소통의 불능과 폭력성에 있음을 주장하고, 거인의 배후(목덜미)에 늘 인간이 있듯이 인간의 심연(피)에는 늘 거인이 흐르고 있음을 논한다. 4장에서는 인간과 거인 사이의 경계 없음[무(無) 경계]에 초점을 두고 모든 인간을 인간성과 거인성을 겸비한 채 살아가는 존재, 인간/거인으로 규정한다. 이 규정 하에서 두 가지 종류의 갈등, 곧 개인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집단 간 갈등을 살펴보며 각각의 해결책을 고민하고, 독자에게 물음을 던진다.


「진격의 거인」에서의 인간/거인


1. 경계: 인간과 거인의 이항 대립

「진격의 거인」은 파라디섬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들은 큰 삼중벽으로 경계를 세우고(엄밀히 말해, 파라디인들이 세운 것은 아니다.) 거인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경계의 본질은 분리이며 이것이 옳고 그름, 우리와 그들,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별한다. 벽 안의 파라디섬 주민들은 아무 이유 없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 가련한 피해자이고, 벽 밖의 거인들은 무자비하게 인육을 섭취하는 끔찍한 가해자다. 반복되는 폭력의 장에는 늘 저항자가 나타나지만 인간과 거인의 힘 차이는 천양지차다. 힘깨나 쓴다는 조사병단이 있다곤 하지만 늘 벽 밖 탐사에서 회생불가능한 희생을 당하기 마련이었다. 입체기동장치는 골리앗을 쓰러뜨리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다윗의 돌팔매질에 불과하다. 물론 성경에서는 돌팔매질이 골리앗을 쓰러뜨리지만 여기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키가 유독 작은 다윗 중의 다윗 리바이는 예외다. 리바이 세 명이면 거인이 벽을 세운다고 하지 않는가.)

작품 초반부에서 인간과 거인은 여러 가지 차이를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대체적으로 인간은 지성을 지녔고, 거인은 지성이 없다. (“대체적”이라고 한 이유는 다들 알다시피 지성을 지닌 거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훈련장에서 감자를 대놓고 먹는 사샤 브라우스와 작중 바보 코니 스프링거는 지성이 없다.) 즉, 인간은 목표를 설정하여 행위하고, 자신의 벌거벗음을 자각하여 수치심을 느낄 줄 알며,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반면 거인은 스스럼없이 벌거벗고 다니며, 감정과 신경체계가 없는 듯하며, 의사소통과 조직체계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의도나 목적도 없이 생래적인 본능과 섭식의 욕구로 인간을 찢고, 씹고, 삼킬뿐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점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파라디섬 사람들은 선한 피해자, 거인은 악한 가해자라는 것이다. 이 차이는 물리적 힘의 차이만큼이나 극심하고 좁혀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2. 경계의 헝클어짐: 지성을 지닌 거인의 출현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인간과 거인의 경계는 헝클어지기 시작한다. 그 충격적인 조짐은 에렌 예거의 거인화로부터 싹을 틔워 여성형 거인에게서 줄기를 뻗는다. 여성형 거인은 기존의 거인들과 다른 면모들을 보였다. 아르민이 뒤집어쓴 모자를 열어젖힐 정도로 신경이 발달해있고, 인간을 보이는 대로 집어삼키지 않으며, 죽일 필요가 있는 또는 죽이고 싶은 사람만을 골라 쥐불놀이 등의 방식으로 살인을 자행했다. 그녀는 오로지 에렌 포획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할 줄 알고, 언어를 이해한다. (라이너가 애니의 손에 에렌의 좌표를 칼로 새겼던 것을 기억하라.) 경계의 흐려짐에 대해서는 짐승 거인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말을 집어서 던진 후, 짐승 거인이 미케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은 - “그 무기는...뭐라고 부르나요?” - 시청자들을 아직도 전율 돋게 한다. 인간의 전유물인 언어(logos)가 거인에게서 나타남은 나타남은 거인이 인간과의 경계를, 단순히 영토가 아닌 존재론적인 경계를 강력하게 침범하는 사건이다. 이처럼 신체적 요소를 제외하고는 거인보다 인간을 더 닮은 듯한 지성적 거인들의 존재는 에렌의 거인화와 맞물려 파라디인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암시한다. 지성을 지닌 거인이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유미르, 라이너, 베르톨트를 통해 파라디인들에게도 사실로 확증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1.에서 살펴본 경계가 헝클어짐을 본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이 헝클어짐이 선악의 경계를 서서히 흩트려놓는다는 것이다. 여성형 거인인 애니가 리바이와 미카사에게서 에렌을 빼앗기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 베르톨트와 라이너가 전사로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 유미르가 모든 이야기를 듣고 베르톨트와 라이너에게로 향하는 장면 등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시청자들은 묻게 된다. 끔찍한 가해자는 왜 이리 구슬프게 우는가? 악한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던 라이너와 베르톨트는 왜 그런 행위를 했으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가? 거인이긴 하나 파라디인의 편이라고 볼만한 유미르는 어째서 가해자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듯해 보이며 순순히 그들을 따라가는가?

3. 경계의 붕괴: 거인은 인간이었다. 그리고... 인간도 거인이었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충격적인 사실들이 더해진다. 하나는 지성적 거인뿐만 아니라 무지성 거인마저도 인간이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벽 바깥에도 인간이 존재했는데 이 바깥 인간들이 거인들을 이용해서 벽 안 인간들을 공격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과 저들 거인이 아니라 우리 인간과 저들 인간의 갈등이라는 사실은 파라다인은 물론 시청자들까지도 경악시켰다. 그리고 이 경계의 붕괴는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대지의 악마와 유미르의 계약, 마레와 에르디아 제국 세계관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왜 벽을 부순 거인들을 객관적으로 악마라 부르기 어려운지 알게 되고 2.의 끝부분에서 던진 물음들에 대한 답을 얼추 알게 된다. 그리샤 예거의 지하실과 에렌의 기억 등을 통해 파라디섬도 이 세계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많은 이들은 벽 밖의 세계관을 통해 거인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각광받아 마땅한 지점은 “거인이 인간이다”라는 명제의 역, 곧 “인간이 거인이다.”라는 것이다. 이사야마 작가는 <마음대로 독서 전설> 창간호 인터뷰를 하며 취객에게서 거인을 봤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가 본 취객이라는 거인은 두 가지로 특징지어진다. 의사소통의 불능과 폭력성이다. 우스꽝스럽게 생기고, 덩치가 크며, 생식기가 없고, 목덜미에 급소가 있고 하는 것들은 부수적인 것들로 던져져도 좋다. 작가가 목격한 거인의 본질은 이 두 가지다. 흥미로운 문제는 이것들이 인간에게서도 똑같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취객에게서 거인을 봤다는 작가의 인터뷰는 인간과 거인이 실상 같은 존재임을 일찌감치 알려준 셈이다. 결국 인간에게 보이는 소통 불능과 폭력성의 극대화가 인간의 물리적 극대화, 거인으로 현현한 것일 뿐이다.

거인 기원의 핵심에는 이 두 가지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부족들은 다른 부족들을 침략하며 노예로 삼고 혀를 뽑아갔다. 여기에 어떤 소통이 있었겠으며, 얼마나 잔혹한 폭력이 있었겠는가? (특히 혀뽑음은 의사소통의 부재와 폭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행위다.) 최초의 거인이 되는 유미르는 그 노예 중 하나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압제자의 수장 프리츠 왕이 노예들 중 돼지를 놓아준 사람이 있다며 그들을 한 곳에 불러 모은다. 프리츠 왕은 자수하는 자가 없다면 모든 노예의 눈 한 쪽을 뽑는다고 했다. 그러자 노예들은 범인으로 유미르를 지목한다. 혀가 없는 유미르는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 다시 한 번 의사소통은 없고, 폭력이 침묵의 자리를 메운다.프리츠 왕은 사냥개와 활잡이들에게 사냥당하는 처형을 유미르에게 언도한다. 화살을 맞고 죽을 고비에 선 유미르는 미지의 거대한 나무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대지의 악마와 조우하며 시조의 거인을 만들어낸다. 인간 속에 이미 존재하던 거인의 성질, 다시 말해 소통 불능과 폭력성이 물리적 거인을 낳은 것이다. 이 거인은 다시 프리츠에게로 돌아가고 그는 거인을 활용해 다른 부족들을 손쉽게 정복한다. 이 피흘림의 역사, 소통의 부재와 폭력성으로 대변되는 인간 속 거인은 벽 밖이건 안이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 모습을 드러낸다. 마레 제국의 파라디 침략, 마레에 의한 에르디아인의 낙원행, 파라디에 의한 레벨리오 습격 작전과 땅울림 등 의사소통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폭력들이 대화한다. 층층이 쌓여가는 단절과 폭력, 더불어 진행되는 기술의 발전은 끝내 ‘너를 제거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멸종하고 말 것’이라는 믿음을 만들어내고야 말았고, 세계는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의 딱지를 어느 한쪽에 붙이기에 너무도 복잡했다. 벽 바깥을 자유로운 바다로 부르던 아르민의 말과는 달리 세계는 안개, 어둠, 뒤엉킨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이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에렌이 세계에 절망한 이유는 단지 벽 바깥 바다 너머에 인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들이야말로 진정한 거인이었고, 이 거인이 증오의 숲을 빽빽이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인의 배후(목덜미)에 늘 인간이 있듯이, 인간의 심연(피)에는 늘 거인이 흐르고 있다.


4. 무(無) 경계: 인간/거인

이로써 글의 제목이 ‘「진격의 거인」에서의 인간과 거인’이 아닌 ‘인간/거인’인 이유가 드러났다. 인간과 거인은 이항 대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두 가지가 얽히고설킨 존재인 까닭이다. 이제 이 경계 없음을 바탕으로 개인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집단 간의 갈등을 바라보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해보자.

개인 내부에서의 갈등은 인간성과 거인성의 충돌로 이에 대한 대처법은 비교적 명료하다. 인간 속에 있는 거인성을 죽이고, 인간성(거인의 성질이 소통 불가능성과 폭력성이라면 인간의 성질은 소통 가능성과 비폭력성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이는 아르민과 사샤의 아버지에게서 발견된다.)을 살리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유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거인성의 소멸이 엄연히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양자를 모두 갖춘 자만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순수악(완전한 거인성)과 순수선(완전한 인간성)으로 대표되는 두 본성 사이 어딘가에서 이리저리 오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천태종의 개조(開祖)인 지의는 부처조차도 근본과 원리에서 악을 없앨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는가. “일천제(一闡提)는 수선(修善)을 끊은 것이나 성선(性善)이 남아있고, 부처는 수악(修惡)을 끊은 것이나 성악(性惡)은 남아있다.”

누군가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덤벼드는 것이 옳으냐며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다. “어차피 1등을 할 수 없다면 아예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 좋지 않은가?” 아니다. 손을 놓을 바에는 중간이라도 가는 게 좋다! 우리는 타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앎에도 이해를 시도하며 상대를 알아가고, 절대무오한 진리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앎에도 책을 놓지 않으며 배움을 쌓는다. 인간성에의 추구도 그와 같다. 완전한 인간성이라는 지점에 죽을 때까지 도달할 수 없대도 점근선처럼 끝없이 그곳을 향한 추구를 이어 나가는 데에는 가치가 있고 진보가 있다.*

집단 간 갈등은 다루기 훨씬 까다롭다. 나만 인간/거인이 아니라 우리도, 그들도 인간/거인이기 때문이다. 증오와 보복이 꼬리를 무는 작중 세계관 속에서 모든 집단은 거인의 척수액에 깊이 젖어 있다. 그러나 집단의 차원에서도 순수한 거인은 없다. 그런 집단들도 자신의 구성원들을 아끼며, 때로는 타 집단의 성원을 환대할 줄 아는 인간성을 간직하고 있다. 집단이 폭력을 행사하게 된 근저에는 항상 서사가 있었다. 이것들을 알아차리게 되면 폭력과 저항,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는 불분명해짐을 넘어 사라짐에 가까워진다. 끝내 개인 내부에서와 같이 집단 사이에서도 순수한 선과 악을 가려내기란 불가능해진다. 그렇기에 “우리가 먼저 당했다.”, “우리가 더 당했다.”라는 문법은 각 집단 구성원들에게 쉽게 호응을 얻고, 복수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더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당하고 말 것이라는 불안은 집단을 거인이 되도록 부추기며, 갈등 해소를 위한 대책 선택을 난제로 만든다. 작품에서는 3가지 해결책이 그려지지만 어느 것 하나 개운하지 못하다.

(1) 중성화 계획을 시행하는 것이 옳은가?(나는 안락사보다 중성화 계획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재생산권의 박탈에 더해 모두가 거인으로 살아가는 지옥에서 우리만 거인이 되길 포기한다는 것이 현명한가? 폭력 앞에서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일은 간디 같은 성인만이 생각해 볼 법한 것 아닌가? 아담의 원죄를 이유로 후손인 우리가 왜 순교해야 하며, 우리의 순교가 폭력을 멈춘다는 보장이 있는가?

(2) 땅울림을 전체 인류에 대해 시행하는 것이 옳은가?: 병력을 갖춘 소대가 쳐들어왔다고 핵폭탄을 장착한 군단으로 무장해 인류 전체에 대해 앙갚음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3) 땅울림을 실험적으로 활용하고, 땅울림이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섬의 군사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이는 동시에 시조 및 왕가 혈통의 거인을 계승해야 하는가?: 섬 속에서 해방을 기다리며 소수에게라고 해도 거인을 재생산하는 번식 기계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가당한 처사인가? 설령 동의한다 해도 전쟁을 잠시나마 지연시키는 세력균형론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박노해 시인은 “한 시대의 악이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던 시절”은 “괴롭고 행복한 시대”라고 말한다. 벽 밖 거인만이 거인이었던 시절이 파라디섬에게는 괴롭지만 그나마 행복한 시대, 곧 파라다이스였을지도 모른다. 선과 악이 선명하게 대결하지 않는 세상의 진실은 그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을 공산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진격의 거인」의 세계관이며 이것은 잔혹하지만서도 솔직하게 우리네 세계의 진짜 모습을 반향한다. 작품만큼이나 현실 세계는 어지럽고 복잡하다.

나는 에렌이나 조사병단이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결단을 내렸어야 하는가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을 내놓지 못하겠다. 작중 ost ‘악마의 아이(悪魔の子)’를 부른 히구치 아이는 “세계는 잔혹하다. 그럼에도” 사랑하라고 말한다. 거인이 되지 않기 위해 인간은 에렌 크루거의 말대로 “인류를 사랑”해야 할 것이고, 사샤의 아버지 말마따나 “숲 밖으로” 떠나야 한다. 그러나 먼저 거인이 되어 먹지 않으면 먹히는 상황, 달리 말해 먹잇감(das Essen)과 사냥꾼(der Jäger)의 지위를 놓고 눈치 게임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인간성의 외침은 과연 어떻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발휘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독자들에게 맡기며 글을 갈무리한다.


이 글이 「진격의 거인」을 읽고 본 분들의 고민과 사색에 한 주름의 깊이라도 더 새길 수 있길 바랍니다.




* 악(거인성)의 지양과 관련해 앞서 본 지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그는 우리에게 내재한 악에 대해 인지하고, 비불(非佛)의 측면에 대한 집착까지도 버릴 때 통합적인 존재가 되어 악행을 실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악마에게 공포의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 먹이를 주며 다루는 것이 가장 높은 경지”인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의 다른 차원을 보게 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