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올린 글은 지명과 인물명 풀이해보기입니다.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는 정말 디테일한 사람이라 인물이나 지명을 설정하는 데도 공을 들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실제로 이름들의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보시면 인물들이나 지역 이름이 인물의 특성이나 작품 속 메세지들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소름이 돋는 경우가 적지 않답니다. 제가 아는 선에서 몇 개 늘어놓아보겠습니다. (다른 거 아시는 분들 알려주세요!) 몇 개는 작가의 의도와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 봄직하고, 일부는 꿈보다 해몽처럼 보이실 수도 있겠지만 진짜 작가가 의도했느냐가 제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각설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지명
1. 파라디: 낙원, 천국
다 아실 것 같으니 설명 생략.
2. 마레: 바다
마레는 라틴어로 바다(Mare)입니다. 벽 안 주인공들이 벽 밖에 바다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마주친 것은 다른 바다, 마레였죠. 여기까지도 나름 많이 알려져 있어 아실 분들은 아실 것 같으니 후딱 넘어갑시다.
3. 에르디아: 땅
에르디아는 가타카나 エルディア로 표기됩니다. 종성 발음이 거의 없는 일본어 특성상 에르/에루디아로 발음되는데 그 까닭에 일부 사람들은 에르디아를 Er(u)dia로 알고 있지만 Eldia가 공식 명칭이라고는 합니다. 이 때문에 에르디아를 땅으로 보는 제 해석이 힘을 조금 잃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er이나 el을 구분하지 않고 발음하는 경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여 에르디아를 E'r'(u)dia로 봐도 괜찮지 않겠냐고 생각해보면 재밌는 해석이 생겨납니다.
<진격의 거인>은 이따 다시 보겠지만 작품 인물의 이름들 대부분을 독일어로 짓고, ost도 독일어 투성이랍니다. 이외에도 독일어와 <진격의 거인>은 연관성이 큰데요. 어쨌든 독일어에서 Erde는 땅을 의미한답니다. 아시다시피 에르디아인은 유미르의 백성들이죠. 유미르의 백성은 누구입니까. 거인의 피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거인을 만드는 유기생명체의 별명이 무엇이었죠? 바로 '대지의 악마'입니다. 대지의 악마와 계약한 유미르의 후손들의 민족이름이 땅을 연상시키고, 그 대척점에 놓인 적국이 마레(바다)라는 사실은 우연으로 여기기에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인물명
1. 에렌 예거(Eren Jäger): 성인 + 사냥꾼
예거(Jäger)는 독일어로 사냥꾼을 뜻한다는 걸 홍련의 화살 ost 시작 부분에서도 보셨을 겁니다. 진격의 거인에서 사샤 아빠의 입을 빌려 숲이 증오, 보복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잔혹한 세계를 은유하고, 사냥꾼이 숲에서 사냥을 한다는 걸 염두에 두면 생각해 볼거리가 많이 드실 겁니다. 추가로 Eren은 터키어로 (종교적) 성인을 뜻한다고 합니다. 작가가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에렌을 성인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재밌습니다.
2. 지크 예거(Zeke Jäger): 에스겔 + 사냥꾼
지크는 돌을 던져서 사냥하는 원시적인 사냥꾼이었죠. 뭐, 후에 불임화 계획을 생각한 걸 보면 마냥 사냥꾼이라고 볼 수 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지크의 성보다는 이름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지크(Zeke)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선지자 또는 예언자 에제키엘(Ezekiel, יְחֶזְקֵאל)의 줄임말로 알려져있습니다. (통상 천주교에서는 에제키엘, 개신교에서는 에스겔이라고 번역합니다.) 히브리어 에제키엘은 "신이 강하게 하신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지크가 뇌창으로 몸이 박살났을 때, 에르디아의 신적인 존재 유미르가 좌표라는 성스러운 공간에서 몸을 빚어주는 모습은 창세기 2장에서 진흙으로 야훼가 사람을 빚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며 "신이 강하게 하신다"가 지크라는 이름과 갖는 연관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3. 프록 폴스타(Floch Forster): 운, 요행 + 산림 지킴이
프록 폴스타, 개인적으로 정말 이름을 잘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프록은 가타카나 フロック로 표기되는데 이게 후루꾸와 정확히 같은 표기입니다. 후루꾸는 당구 같은 스포츠를 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주 쓰는 단어로 운, 요행을 뜻하죠. 프록은 엘빈의 스스메 작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정말로 운이 좋은 캐릭터였습니다. 폴스타는 Forster인데 독일어로 Forst는 산림을 의미하고, 이에 따라 Förster는 산림지킴이를 뜻합니다. (ö에서 움라우트를 빼고 o를 써도 Forster는 산림 관리권 소유자를 뜻합니다.) 가비를 죽이지 않고 숲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샤 아버지와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모든 걸 되갚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숲을 지켰던 인물이 바로 폴스타였죠.
4. 프리츠(Fritz): 평화로운 통치자
독일어로 프리츠는 프리드리히(Friedrich)의 줄임말로 많이 쓰이는데요. 프리드리히는 어원상 평화로운 통치자를 뜻합니다. (https://www.etymonline.com/word/Frederick)
5. 아커만(Ackermann): 농부
아커만은 독일어 Acker(밭)에다 Mann(사람)이 합쳐져서 농부를 뜻합니다. 농부라고 하면 별 감흥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사 ackern이 밭을 갈다 또는 쟁기질하다를 뜻한다는 점에 주목하면 쟁기질하는 사람인 아커만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합니다. 쟁기질은 말 그대로 땅을 갈아엎는 행위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땅이 에르디아를 의미할 수 있다는 걸 봤습니다. 상상력을 발휘해 은유적으로 해석하면 아커만 일족은 에르디아의 지배적 질서(땅의 자연적 질서)를 거역하고, 뒤집어엎는 전복적인 존재입니다. 유일하게 아커만 일족의 기적만 조종하지 못하고, 미카사 아커만이 대지의 악마를 막았다는 걸 생각할 때 시도해 볼 만한 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