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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슴도치 Sep 23. 2024

삶의 다른 차원을 보게 하는 사람

1년 만에 존경하던 사람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 연이 끊긴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어떤 책을 읽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군대에 있는데 요즘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성경, 논어, 맹자, 불교 경전 등을 읽고, 사적인 글을 쓰고, 명상을 수행하며 지낸다고 했다.* 그와 대화를 나눌 때면 삶의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흐르기를 멈춘 것 같기도 하고, 매우 빨리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은 어느 때보다 고요하면서도 끊임없이 역동하며 정중동靜中動의 역설적인 상태에 젖어든다. 대화의 주제**가 가져다주는 특별함 때문도 있겠지만 다른 이들과 이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고 이런 감각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최소한 나에게) 삶의 다른 차원을 열어젖히고 거기로 고양시켜 주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와의 대화는 안식을 가져다주고, 며칠 간이나 깊은 여운과 울림을 남기며, 지성의 탐구에 새로운 자극을 준다. 얼른 전역해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독일/프랑스, 대륙/영미, 서양/동양, 철학/종교, 계戒/정定/혜慧를 가리지 않고 진리를 좇는다는 점이다. 비록 우리의 관심주제가 완전히 같지 않고, 많이들 싸우는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달리 하기도 하며,  종종 그에게서 결함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에게서 총총하게 비추이는 진리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은 나에게 귀감이 된다.        


** 우리 대화의 주제는 거의 항상 진리이다. 진리라는 거창한 말을 쓰는 것이 민망하지만 이 말을 대신할 수 있는 낱말을 찾기란 쉽지가 않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단적인 예로 며칠 전 우리는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라는 말의 의미, 기적이나 합일과 같은 신비주의적 체험이 형이상학적으로 대단한 지위를 가질 만한 것인가와 같은 주제로 대화했다. 너무 오랜만의 대화였고 그것도 카톡을 통한 대화였던지라 잠깐 언급하고 지나는 데 그쳐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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