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언어, 스킨십
비밀; 사랑할 때 우리가 감추고 있는 속마음
몸의 언어,
스킨십
연인의 애무는, 깊고 깊은 우울마저 소독해낸다.
산문집 「마음사전」에서 시인 김소연은 소독이라는 말로 스킨십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아! 나는 저 근사한 말을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문장을 읽는 순간 뺏고 싶은 기분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고, 노트 안에 적어두었다 오늘에서야 한번 써먹는다.
스킨십에 관해서 쓰기로 마음먹고 집어든 펜 앞에서 나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스킨십을 좋아한다. 잘 익은 벼를 보고 나쁜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스킨십은 이유 없이 좋은 거다.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노래방에 따라가서 쭈뼛거리는 것으로 보는 이들까지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며, 이 글을 읽어주는 독자에 대한 예의도 분명 아닐 것이다(목차에서 바로 넘어오신 분들도 계실텐데). 할 수 있다면 가장 적나라한 표현으로 연인의 애무를 받는 때 느껴지는 직감과 육감을 표현하고 싶지만, 이 책이 대중서가 되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써, 영감 정도에서 마무리짓기로 하자. 청소년들이여. 눈을 감고, 페이지를 넘기자(그럴 일 없겠지만).
당신 머리에서 폭발한 것들을 사랑해.
다시 한 번 시인의 말을 빌린다. 이 구절은 「마음사전」에서 김소연 시인이 짤막하게 인용해서 수록한, 김행숙 시인의 시「이별의 능력」의 부분이다. 시인은 그런 맥락에서 썼던 문장이 아닌 것으로 기억하지만, 나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야릇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밤이 오면, 당신 머릿속에서 새어나오는 야릇한 상상들을 좋아해. 사람은 누구나 기다리는 게 있고, 그 기다리는 것으로 강렬한 저녁을 만든다.
인생에서 겪고 싶은 사랑은 많지만, 인생은 한 개라는 한계를 뛰어넘고, 당신의 애무는 온전히 지금의 사랑에 충실하도록 나를 길들인다. 활활 남김없이 나를 태우겠다고 옮겨 붙는 그 불덩이 앞에서 시간을 잊고, 장소를 잊는다.
정성이 담긴 연인의 애무가 사랑에 일으키는 파문은 실로 엄청나다. 그 뜨거움으로 어지러웠던 경험이 있다면, 그 중독성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마지막으로 시인의 말을 빌리도록 하자. 그럴 의도는 없었겠으나, 시인의 문장은 스킨십의 관해서만큼 내가 생각을 정리하는데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
스킨십은 중요하다. 하지만 누구나 다 같은 걸 바란다고 믿는다면, 스킨십은 육체적 쾌락과 타락으로 변질될 뿐, 영혼의 무엇까지 건드리지 못한다. 애무가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연인의 만족이 무언지를 골라내는 일이 먼저다. 그녀에게 전기를 주는 것, 열기를 뿜어도 불에 데거나 탄 자국 같은 것이 생기지 않는, 전기가 전율로 느껴지도록 하는 타이밍을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나 기다리는 게 있고, 우리는 그 기다림으로 한동안 설레인다. 나의 느낌, 나의 속도에 맞춰 다가오는 그녀의 입술은 깊고 깊은 우울마저 소독해낸다. 점선으로 만나 실선처럼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완벽한 애무는 연인에게서 차곡차곡 받은 애정을 밑천으로 하고 우린 이것을 자존감이라 부른다.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만 강한 연인을 만난다면, 그렇게 오래 서서 그를 이해하려 모든 감각을 동원해도 가슴 한 가운데 파묻힌 그의 입술에서 거부감만 느낄 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랑은 이 해독 불가능한 암호를 판독하기 위해 조만간 또 다시 어딘가를 떠돌려고 할 것이다.
멀리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