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비속어 사용으로 굳어진, 정갈하지 못한 언어습관

비밀; 사랑할 때 우리가 감추고 있는 속마음

by 박철우

잦은 비속어 사용으로 굳어진
정갈하지 못한 언어습관


한여름, 조그맣게 입을 벌린 플라스틱 뚜껑 사이로, 열기가 모락모락 삐져나오는 커피를 좋아한다. 땀을 추적추적 흘리면서도 손에 뜨거운 액체를 들고 걷는 모습은 언제나 구경거리지만, 그 시선들에 대해서 다분히 개의치 않는다. 다만, 커피 주문하는 때 ‘아메리카노 한 잔 부탁합니다’고 말하면 종종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오는 상황이 벌어져, 에스프레소가 내려오는 시간을 한 번 더 기다리는 마음은 다분히 번거롭기도하다.

한여름에 마시는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언제부터 좋아했냐고 묻는다면, 달력을 뜯어낼 적마다 그 애정은 진해져 가는 중이라고 답할 것이며,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겉과 속의 온도 차가 큰 사람이 싫어서라고 답하겠다.

무더운 날씨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의 역할은, 태양빛에 노출된 팔은 뜨겁게 남겨둔 채, 보이지 않는 속의 온도만 낮추게 되는데, 이때 안쪽에서 느껴지는 허한 기분이 싫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안에 감춰진 것들을 중시한다. 화려한 옷으로 꾸민 사람보다 소이 너드(nerd)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좋다. 사회성이 조금 떨어져도 어떤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운동 경기에 참여하거나 응원하는 것조차 어려워도,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속을 밀도 있게 채우고 있는 사람이질 않던가.

찬바람, 아이스크림과 아이스커피. 한여름에 속을 달래주는 차가운 물성들은 자꾸만 나를 겉모습만 화려한 사람으로 이끄는 것 같아 꺼려지는 것이다. 천천히 따듯한 물성을 좋아하게 된 이유, 여전히 삶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을 드러냄으로 해서 급속도로 냉각되는 나의 자존감의 온도를 뜨겁게 데워보려는 노력이다.


한겨울, 패딩 점퍼와 그 위로 두 번 돌려 매듭지은 목도리를 하고선, 한 손에 들린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마저 장갑도 끼지 않아 손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냉기를 저들도 느끼는지, 자꾸만 시보리 안으로 손을 숨기려는 부자연스러움을 이해하지 못한다(우린 조금 다르니까).

차가운 것에 한 번 더 차가운 것을 끼얹으면 추운 상태가 되는데, ‘춥다’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몸서리친다. 커피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말 속에서 등에 차가운 것이 내려앉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다.

의견을 전달하는 속도가 빠른 사람,
그래서 화가 난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
신경의 예민함을 톤의 높낮이로 변주하는 사람,
잦은 비속어 사용으로 정갈하지 못한 언어습관을 지닌 사람.

처음 보는 사람과도 거리낌 없이 말을 주고받는 나로서도, 이들과의 대화는 상당한 피로감을 느낀다. 하물며 그 상대가 감정의 저변까지 공유하는 연인이라면, 둘은 자주 다투고 자주 소홀해질 것이다.

대화를 하는 때, 마음을 전달하는 언어의 표면이 너무 거칠면, 그 이면에서 숨쉬기 마련인 ‘진심’의 밀도가 희석되어 버린다. 그래서 안 된다.

언어는 풍성해질 때 그 맛이 배가 되는, 아주 값비싼 향신료다.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은, 오지에 흩어져 있는 향신료를 모으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함께 공유하게 될, 두 사람의 시간을 조금 더 농밀한 요리로 차려내는 것이다. 풍성해진 식탁 앞에서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감정을 나누게 될 것이며, 그 풍요로움 앞에서 장소와 시간의 의미를 잃고 오롯이 두 사람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성큼 다가온다.

매거진의 이전글공감되지 않는 이야기, 건성으로 듣고 싶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