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이라는 직물
후...
그렇게 나는 그렇게 인생의 정리 정돈을 통해서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고 있었다.
사무실을 정리해서 모든 짐을 창고로 옮겨왔는데,
창고에는 내가 싸놓은 또오~옹 이 더욱더 많았다.
저 몇십 톤의 짐들을 보는 순간!!
이건 마치 넘을 수 없는 에베레스트산 같은..
도저히 풀 수 없는 매듭을 발견했다.
이곳저곳에서 남은 자재, 공사 폐기물, 각종 장비, 사무실에서 가져온 짐들까지..
1톤 트럭으로 서른대 정도의 분량은 충분히 될 법한 양이였다.
언제부터 내 인생이 꼬인 실타래처럼 엉켜버렸을까?
저 많은 양의 짐을 멍하게 보고 있으니, 문득 화문석이 생각난다.
강화도의 특산품 중 가장 오래고, 희귀한 것이 바로 화문석(花紋席)이다.
화문석은 일종에 수초를 건조하여 만든 돗자리이다.
한국판 라탄이라고 할까? 화문석은 '왕골'이라는 소재로 만드는데, 그냥 겉보기에는 흔하디 흔한 수초같이 생겼다. 주로, 논바닥에서 자라는데, 손으로 잡아당기면 내 손에 피를 볼 정도로 질긴 식물이다.
화문석은 신라시대 그 이전부터 만들었는데, 박경리 작가의 [토지]에 등장할 정도로
친숙하다.
옆집 할머니네 가면, 항상 안방 머리맡에 화문석을 짜는 일종의 베틀이 있었다.
여러 개의 추가 달려있었고, 추에 왕골이 묶여 있어
추들을 넘겨가며 꼬아 패턴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그 짚풀 내음을 맡으며 멍하게 구경을 하고 있으면 시간이 참 잘 갔다.
가로 골과, 세로 골이 만나서 직교되는 과정 속에서
화려한 화문석이 태어났고,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것에 감탄을 했다.
더욱이 화려한 수가 놓인, 돗자리 정도의 크기의 화문석이 완성되기까지는
최소 몇 달 동안의 수작업이 필요했다. 도안을 생각해서 한 골, 한 골 엮어가는 과정이 필연적이다.
지금 생각하면 가학적이라고 표현될 정도의 인고의 시간을 직조를 하며 보낸 것이다.
그래서 화문석은 단지 돗자리가 아니다. 왕골이라는 질긴 풀에서, 자기만의 패턴을 담아 작품으로 만드는 아트(art)였다.
가로줄을 씨줄, 세로줄을 날줄이라 부른다.
이 세상의 모든 직물은 그렇게 씨줄과 날줄이 만나 직교되어 만들어진다.
이렇게 심연의 바닥까지 내려오니, 내 삶이 왜 꼬였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게 그 당시 최선이었다" 라고 자기위안 하며
인생을 고심하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막 살다 보니
마구잡이로 얽혀버렸고, 결국 이 지경까지 와버렸다.
다시 한번 무릎을 탁!
"이럴 땐 과감히 실타래를 불태워 버리자!"
인생 정리가 쉽지 않을 때는, 인생 소각도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시작했다.
[인.생.소.각 작전]
정리가 불가능한 것들은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차 없이 내던졌다.
사무용품들을 당근마켓에 올렸다.
1년간 한 번도 안 입은 옷도 의류함에 모두 버렸다.
연락처를 지우고, 사진첩을 지웠다. 바탕하면을 지웠다.
잉여 자재들을 버렸다. 하루 8시간, 정리하고 버리는 과정을 2달 동안 반복했다.
인생을 소각해 버릴 수 있는, 나는 운이 좋을지도 모른다.
암석처럼 삶이 단단해져 버려서, 더 이상 정리를 할 수 없는 지경의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니까..
때뭍은 인생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휴지통에 파일을 밀어 넣는것 처럼,
간단하게 인생을 지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무실 정리 1개월, 청소만 2개월 총 3개월. 3개월 동안 정말 지긋지긋하게 청소만 했고
공장의 소유권 또한 모두 정리했다.
그렇게 무사히 인생소각 작전이 끝났고, 드디어 하얀 바탕의 도화지를 손에 움켜쥐었다.
우리의 삶도 조금 거창하게 부르자면,
삶(life)이라는 씨줄과 운명이라는 날줄을 엮어 '인생'을 직조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 작품을 그릴 도화지가 마련되었으니, 이제는 연필을 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