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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도리 Apr 18. 2023

공간으로 쟁취하기.

공간을 통제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자. 

목표했던 일들을 시작도 못하고, 마음을 접었던 적이 있는가?

계획했던 일들이 마구잡이로 틀어져서  형태가 알아볼 수 없는 

UFC선수의 뭉개진 얼굴처럼 된 적이 있는가?


나 또한 목표와 계획에 차질이 자주 일어나서 실패를 경험한 적이 많다.


새해를 맞이한 20대의 봄, 새로 산 수영복을 방문에 걸어두었다.

주방에서 무를 썰고 있는 엄마를 향해 의미 심장한 웃음을 날렸다. 


"엄마, 나 이번여름에 10KG 빼고, 캡틴 아메리카처럼 초콜릿 복근 만들어서 해수욕장 갈 거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매미가 울어대는 계절이 찾아왔다. 


그 해 여름에 나는 당당히 경포대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이 두렵지 않았다.

구명복이나, 도넛 같은 튜브도 필요 없었다. 

자신 있게 풍~덩 푸른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왜냐고? 


"살은 10KG 더 늘어 있었다. 내 뱃살 자체가 도넛이었다. 내 뱃살이 튜브였다."

초콜릿 복근은 맞았다. 다만, 여름철 뜨거운 볕을 받은 초콜릿처럼

흘러내려 있었다. 

 

멋진 작품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피카소의 '우는 여인'이라는 작품처럼  

조각나고 파편이 되어 있었다. 


피카소 [우는 여인]

무엇을 계획하던 '작심삼일'이 일상다반사가 되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고민한다.  


강력한 의지는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원대한 계획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첫걸음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 해답은 분명 '공간'에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공간을 '통제' 하는 것에 있다.

공간의 목을 주먹으로 움켜쥐고 강력하게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통제하지 못한 공간은 금방 누더기 옷이 돼버린다. 

덕지덕지 더러운 패치들이 덧붙여 있는 누더기옷. 


공간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정주하는 한 분명 살아있는 생명이 된다.

거기다 뉴턴의 제1법칙처럼 관성까지 관여한다. 


집에서 계란 볶음밥을 해 먹으려고, 재료들을 꺼내놓고 다져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들들 볶아, 맛 좋은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멈춰있던 싱크대위 공간은 시장통의 장날처럼 북적인다. 

배부르게 먹고 난 후 접시를 휙~ 개수대에 집어던진다. 

때마침, 친구가 커피를 먹자고 나를 불러낸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집 앞 커피숍으로 달려 나간다. 


3일이 지난 후 나는 그대로 쌓여있는 접시들과 식기들을 보았다. 

내가 치우지 않으면 화석처럼 굳어 언제까지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것이다. 


이게 관성이 아니고 무엇인가? 


미진이는 다이어트를 해서 남자 친구를 사귀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어떻게 하면 미진이가 목표를 위한 공간을 통제할 수 일까?


미진이는 2가지 방법을 통해 성공 15kg을 감량할 수 있었다.  


첫째, 냉장고를 베란다로 옮길 것. 

둘째, 냉장고를 비울 것.

셋째, 배달 음식 어플을 지울 것


음식을 꺼내기 위해서는 저 멀리 있는 베란다까지 기꺼이 가야 하고, 

친히 냉장고님께 까지 가서 문을 열어보아도, 음식이 없기에 별 소득이 없다. 

그렇게 미진이는 음식에 대한 욕구가 싹 사라진다. 

 핸드폰에 텅 빈 배달 어플을 보니, 화 마저 난다. 

이렇게 마지막 남은 저항의지 마저 강하게 부러트리고 나니,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손자병법에 따르면, 이미 계산을 통해 승패를 점쳐보고, 반드시 이길 싸움만 하라고 손자는 얘기한다. 

우리는 계산한다.  


방문 앞 주방의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냉장고를 여는 순간 이미 미진이는 다이어트에서 진 것이다.




나는 얼마 전 소방안전관리자라는 자격증 공부에 합격했다. 

나이 서른이 넘어가니 자리에 가만히 엉덩이를 붙여 앉아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저녁 술 약속, 최민식 형님의 [카지노] 등을 한번 클릭하는 순간

나의 여유 시간은 훨훨 날아갔다. 


침대에 누워 "나 오늘 참 열심히 살았지? 딱 10분만 보고, 공부하는 거야!"


휴대폰의 넷플릭스 어플을 누르는 순간 

자격증을 따려는 전쟁에서 나는 이미 진 것이다. 


계산을 해보니, 나는 방에 들어가는 순간 마이클 펠프스처럼 

침대로 다이빙하는 습성이 있었다. 언제나 나는 다이빙을 했다.   

한번 침대에 눕는 순간, 아마존의 늪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도저히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배수의 진을 쳤다. 


그래서 일이 끝난 후 나는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침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나의 오로지 나만을 마주 보는 공간을 만들었고, 

그 이름을 쿠리(Coorie)라고 지었다. 


쿠리(Coorie)는 "몸을 웅크린 채 구석에 누워있는 것, 안락하고 따뜻한 느낌." 

이라는 의미의 영국 말이다. 


아침, 저녁으로 쿠리로 향했고 

결국, 내 손에는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이 들려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나의 쿠리에 앉아있다.  


장도리의 쿠리(coorie)




마치, 콜로세움 안의 글래디에이터처럼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에 나는 검투사가 된다. 

이 공간에서 매일 칼부림을 한다. 

그 칼끝이 가리키는 곳이 공부이고, 취미이고, 글쓰기, 친목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사랑을 하려면, 사랑하는 이가 있는 장소로 가야 한다.

돈을 벌려고 하면, 부자와 자본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인기를 얻고자 한다면, 카메라가 있는 곳으로 향해야 한다. 

외로움을 없애려면 군중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원하는 것이 있는 공간'으로 향해야 한다. 

하지만, 원하는 곳이 있는 공간에 가도,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우리가 향한 공간에서, 우리는 대부분 상황과 공간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공간은 내가 만든 상황과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무는 손자병법 제4편 형(形)에서 이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 

그는 강조한다. "먼저 이겨놓고 싸우라"


이를 풀이해 보면, 전반적이 득실을 계산해 놓고, 때를 맞춰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전쟁을 하라는 의미이다.  


내가 만들지 않은 공간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뛴다.

날뛰는 망아지를 보고, 우리는 우왕좌왕하다가 뒷걸음치다가, 떠밀려서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일본의 막부시대를 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자신의 공간 이외에서는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자신의 성으로 가신들을 불러 대의를 논하였고,

그곳에서 히데요시를 뭉갤 수 있는 신기에 가까운 방법들을 고안해 냈다. 

그렇게 이에야스는 일본 열도의 통일을 이룩하고, 메이지유신 전까지 260년 간의 태평성대 시대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정재계 통수권자들이나, 해외의 대통령들, 많은 위인들도 

자기가 통제하는 공간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그들은 언제나 '홈그라운드'에서 싸운다. 


푸틴은 각국의 정상들이 취임할 때마다. 

그들을 크렘린 궁으로 초청한 후 회담시간에 늦게 등장하며

각 국의 정상들을 강제로 기다리게 한다. 


실제로,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푸틴을 4시간 기다렸다.

일본의 아베 전 총리는 2시간을 기다렸다. 

로마의 교황 프렌치스코는 1시간을 기다렸다. 

우리나라의 이명박, 김대중 전 대통령도 40분 기다렸다. 

이렇게 푸틴은 자신의 시공간을 통제함으로써 상황을 지배한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곤욕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것을 간파하고, 맞불을 놓았다. 

자기는 더 늦게 나타나는 것이다! 

 



공간은 비단, 큰 일을 진행할 때뿐만 아니라,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당신은 '케렌시아'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나의 심신을 케어하고, 영혼을 정화해 줄 수 있는 안락한 공간

그곳을 '케렌시아'라고 부른다.


케렌시아(Querencia)는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의 장소를 의미하는 단어로 ‘바라다’는 뜻의 동사 querer(케레르)에서 나왔다.


투우 경기장에서 소가 위협을 피하고 지친 심신을 달래는 곳을 케렌시아라고 부른다.


자신만의 책상, 단골 카페의 구석 자리, 우리 집 홈 카페 등 

심리적 안정감과 정신적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모든 곳이 바로 케렌시아다. 


우리는 우리만의 케렌시아를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만, 재충전된 기운을 갖고 세상에 맞서 싸울 수 있으며

에너지를 모아, 원하는 목표를 향해 정진할 수 있다. 


다시금 되새김질해 본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우리는 반드시 공간을 통제해야 한다. 

홈그라운드에서 싸워야 한다. 

우리만의 케렌시아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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