좆소 풍월 10년, 암에 걸렸다.

10. 전부 더 나아지기 위한거야.

by 문정


부모님 집에는 식탁이 있고 침대가 있다.

움직임이 느리고 특히 목이 자유롭지 않은 내게, 가구가 있는 삶은 서울의 자취집과 비교할 수 없이 편했다. 본가의 일과표는 놀라울 정도로 입원생활과 비슷했다.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밤 10시면 잠에 들었다. 저녁에는 일일 드라마를 보고 아침에는 뉴스 타이틀 소리와 함께 밥을 먹었다. 아침과 점심사이에는 설거지를 하거나 이십분 쯤 청소기를 밀었다.


날씨가 좋으면 베란다의 다육이들을 구경하고 작은 화분들은 실외기 밖으로 옮겨주기도 했다. 화분들의 흙이 마르면 물을 주곤 했다. 점심과 저녁 사이에는 집 근처 마트까지 천천히 걸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다 돌아오거나, 근처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어슬렁거렸다. 아직 책상에 앉아 책을 오래 읽을만큼 목이 자유롭게 움직이지는 않았기에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책장에 기대서 두어 페이지를 읽다가 덮었다. 저녁을 먹은 이 후에는 야구를 보았다.


한적하고 조용하게 며칠이 흘렀다.


집에 온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해가 너무 밝아 눈을 떴는데 사위가 조용했다. 평소라면 일곱시부터 부엌에서 도마소리가 들리고 티비에서 아침뉴스가 나와야 정상인데 무언가 이상했다. 얼른 휴대폰을 찾아 화면을 보았다. 벌써 열시였다.


마음만 급하지 몸의 속도는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몸짓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부엌으로 베란다로 안방으로 온 집안의 방문을 열어젖혔지만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놀란 것도 잠깐 이내 헛웃음이 났다.

애도 아닌데 엄마와 아빠를 찾아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닌 것이 우스웠다.


텅빈 거실 쇼파에 앉아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우스운 건 우스운 거고 엄마가 없으면 꼭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엄마 어디야?"


전화기 너머에서 시끌시끌한 다른 목소리들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 달력을 보았다. 그리고 오늘이 오래전 부터 약속 되어 있었던 부모님의 부부동반 계모임 날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디 무슨 저수지 근처로, 제법 멀리 풍광 좋은 곳에 가서 밥도 먹고 구경도 하고 돌아온다고 이야기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 말인 즉 엄마아빠는 오후 늦게나 되서 돌아오신다는 뜻이었다.


"엄마 나 라면 먹어도 돼?"

-안 돼!


큰소리에 휴대폰을 얼른 귀에서 뗐다.


-냉장고에 닭죽 남은거 있잖아! 찬장에서 냄비 꺼내서 죽 붓고 물 반컵만 넣고 약불로 다시 데워서 먹어. 듣고 있어?


다다다다, 숨도 쉬지 않고 쏟아지는 말소리를 들으며 후회를 했다. 괜히 물어봤다. 실수였다. 물어보지 말고 몰래 먹었으면 몰랐을텐데.


"어, 어 알았어. 냄비 찾고 있어. 어, 죽 먹을게."


잔소리를 적당히 흘려들으면서도 시키는 대로 얌전히 냄비를 찾았다. 찬장 속에서 냄비를 꺼내고 당부하신대로 죽을 먹겠다고 약속까지 했음에도 엄마의 잔소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덥다고 에어컨 너무 많이 틀지 말고 목에 안 좋으니까.

"어"

-어디 나갈거면 차조심하고 목에 손수건 꼭 하고 나가고.

"알았다니까"

-죽 끓일 때 약불로 계속 저어줘야 해 타지 않게 알았지?

"알겠어"


약불로 데워야 한다는 잔소리가 두번 째 반복 되자 적당히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800리터 냉장고는 문 앞까지 빽빽하게 온갖 락앤락으로 가득차 있었다. 최소 열개는 되어보인는 락앤락과 반찬 그릇들 사이에서 엄마가 알려준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냄비에 죽을 덜고 가스불을 약불로 켰다. 그 앞에 서서 나무주걱으로 죽을 저으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엄마는 아직도 내가 초등학생 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차 조심하고 이어폰 빼고 다니고 목에 수건둘러서 수술부위 조심 하라는 잔소리를 매일 같이 듣고 있었다.

마트에 갈 때, 도서관에 갈 때마다 매일 잔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진짜 집에 왔다는 그런 감상적인 말은 취소해야겠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도록 조심히 살아야겠다고.


-


다시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수술한 지 2주가 지났고 경과를 보기위해 이비인후과와 외과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다. 병원 진료 일정에 맞춰 엄마와 함께 서올로 올라왔다. 이제 어려운 일은 없으니 괜찮다고 몇 번 이야기 했지만 부모님은 확고했다. 처음 암을 발견할 때 부터 수술까지 한 번도 병원에 같이 가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동행해야한다는 게 특히 엄마의 뜻이었다.


예약 당일, 병원 진료 전에 피검사가 있었다. 예약 시간보다 두시간 먼저 병원에 가서 피를 뽑았다. 피를 뽑고 진료까지 남는 시간동안 점심을 먹기로 했다. 병원 밖의 여의도는 어느 덧 한 여름이었다. 30도에 달하는 빌딩 숲 사이를 걸으면서 엄마는 자꾸 내 가방을 빼았으려 했다. 무거운 걸 들면 좋지 않다면서.


점심을 먹고 진료 시간이 되어 병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엄마가 또 가방을 달라고 해서 지갑이나 신분증을 자꾸 꺼내야 하니 내가 들어야 한다고 우겼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음성(목소리)검사와 함께 성대에 문제가 없는지 체크했다. 소리를 확인하다 보니, 검사실에는 혼자 들어가야 했다. 문 밖에서 엄마는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코 끝이 찡해져서 인쇄된 문장을 읽는 동안 코를 훌쩍였다. 바로 이어서 교수님의 진료가 있었다. 코로 기구를 집어넣어 성대를 확인했다. 다행히 성대의 손상은 없었다 아직 고음이나 큰 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특히 목소리가 완전히 쉬어있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잡아 두었던 외과 진료시간이 다 되었다. 이비인후과 진료가 끝나지마자 수납을 한 후에 다시 외과 진료실로 이동해야 했다.


"잃어버리면 못 찾아. 잘 따라와야 해."


엄마의 손목을 잡고 혼잡한 병원 로비를 가로질렀다.


외과 진료에서는 피검사 결과와 수술 부위를 확인했다. 수술 부위는 덧 나지않고 잘 아물고 있었다. 떼어낸 왼쪽 갑상선에서 발견된 결절은 1센치미터였고, 조직검사 결과 암이 맞았다. 추가로 전이된 부분은 없어 보였으며 예방차원으로 왼쪽 림프절까지 절개하였다. 수술 전에 들었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되었으니 이 후에는 내분비내과에서 진료를 보면 된다고 하셨다. 교수와의 진료를 마치고 전공의에게 흉터 관련해서 추가로 설명을 들었다. 절개방식으로 수술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흉터관리를 하면 좋은지와 처방받은 연고에 대해서 주의 사항을 안내 받았다.


길고 긴 병원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로비의 수납처에서 수납과 보험 신청에 필요한 서류들을 모두 발급 받았다.


아침 10시부터 움직여 병원의 모든 일정을 마친 시간은 오후 4시였다. 눈 감으면 그대로 잠 들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로비 의자에 앉아있다가 걸음을 재촉했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와 에어컨을 켰을 때는 다섯시가 넘어있었다.


내가 에어컨 아래 누워 숨을 고르는 동안 엄마는 가방만 내려두고 저녁 준비를 하겠다며 분주했다. 문 앞에 놓인 엄마 가방을 치우고 바쁘게 오가는 엄마의 발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씻고 내 가방에서 연고를 꺼내 거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아직도 피가 맺힌 것처럼 보이는 수술 부위에 조심 조심 연고를 발랐다. 전혀 힘을 주지 않고 최선을 다해 조심하고 있는데도 손가락이 스칠때마다 상처 주위가 찌릿하며 욱신했다.


"에이씨. 다 괜찮다는데 왜 아프지."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 올랐다. 부엌을 오가던 엄마가 어느새 내 뒤에 있었다.


"낫는 중이라 그래. 더 나아지려고 그러는 거야."


나지막한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거울 속 수술부위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새빨간 그 것은

상처였다가 흉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말대로 나는 더 나아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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